“합하, 포르투갈은 아직 스페인의 속국이옵니다. 그래서 해외 무역을 통해서 국력을 키우고 있는 중입니다. 조선은 지금 외국과의 통상을 거부하는 쇄국정책을 쓰고 있습니다. 포르투갈로서는 조선의 시장이 아까운 것입니다. 조선인들은 손재주가 뛰어나고 머리가 좋아서 일본국의 지배를 받게 된다면 상공업을 크게 부흥시킬 수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세계적으로 명국의 도자기가 일등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조선의 도자기 기술이 더 앞서 있습니다. 조선인들의 손으로 생활에 필요한 물건들을 만들게 해서 구라파에 내다 팔면 막대한 이익을 볼 것입니다. 포르투갈의 세바스티앙 왕조는 그것을 노리는 것입니다.”
“그대는 내가 기리시탄을 탄압한 것에 불만이 많을 게야.”
“아니옵니다. 합하께서 조선을 정벌한 후에 그곳에 기리시탄의 뿌리를 내릴 수 있게 허락하신 것만으로도 감읍할 뿐입니다.”
“이번에는 확실하게 일을 처리해서 조선팔도 중에서 남쪽 삼도인 경상, 전라, 충청을 우리의 영토로 만드는 데 일등공신이 되도록 하게.”
“합하, 통제사 이순신의 제거 공작을 반드시 성공해서 2차 조선정벌의 초석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이번에는 가토가 제일대를 맡고 그대는 제이대를 맡게 될 게야. 더 할 얘기 없으면 이만 가봐.”
“예, 관백 합하.”
고니시가 밀담을 나누고 나오자 히데요시의 호위무사인 것처럼 보이는 자가 그림자처럼 그를 따라붙었다.
“장군, 잘 하시었습니다.”
“누구?”
그의 물음에는 관심도 두지 않는다는 듯이 무사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고니시는 잠시 멍하니 서 있다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서둘러 대마도로 향했다. 그곳은 사위인 종의지가 섬 전체를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고니시가 가장 믿고 쉴 수 있는 곳이었다. 이번 작전이 어떤 의미인지 아는 그이기에 천하의 고니시도 긴장을 하고 있었다. 선상에서 보는 석양의 저녁놀은 언제 보아도 아름다웠다. 그는 인간의 저녁도 저렇게 아름다웠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의 손에 묻힌 피를 한데 모으면 연못 하나는 충분히 만들 정도로 그는 지금까지 너무 많은 사람을 죽였다. 그런데 어쩌면 또 다시 그만큼의 피를 그의 손에 묻혀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좋지만은 않았다.
아무리 관백의 명령이라고는 해도 죽은 자의 귀까지 잘라서 바친 그의 행동은 인간으로서 할 짓이 아니었다. 전장에서 십자가 군기를 내세우고, 세르페데스가 군막에서 매일 미사를 올리기는 하지만 그런다고 과연 고니시 자신이 조선 백성에게 지은 죄를 용서받을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확신은 없다. 사람을 죽여 놓고 미안해한들 그 사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관백인 히데요시 말고도 자신에게 전쟁을 주문하고 명령하는 사람들이 더 있기에 어쩌면 그에게 있어서 전쟁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인지 모른다. 피할 수 없으면 부딪혀서 해결해야 하는데, 최선이 무엇인지는 도무지 생각나지 않는다.
글 : 지선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