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사업방식을 둘러싼 혼선이 울산지역 조선업 노동자들의 고용 불안을 키우고 있다. 방위사업청은 이달 중 KDDX 사업방식을 수의계약·경쟁입찰·공동설계 가운데 하나로 결정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대통령의 방산·군수 비리 근절 발언 이후 사업자 선정 구도가 한화오션 쪽으로 기우는 듯한 흐름을 보이면서, 현대중공업과 협력사 노동자 2100여명이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HD현대중공업 노조는 이날 소식지를 통해 “(KDDX 사업이) ‘과거의 불법’과 ‘오늘의 노동자 생존권’이 구분 없이 뒤엉킨 채 정책적 혼선이 계속되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특정 기업에만 유리한 방향으로 기울어지는 것처럼 보인다”고 비판했다. 노조의 이러한 입장 표명은 최근 이재명 대통령의 “군사기밀을 빼돌린 곳에 수의계약은 이상한 소리”라는 발언 이후 노동자들의 고용 불안 우려가 더욱 커진 데 따른 것이다.
KDDX는 7조8000억원 규모의 대형 함정 건조 사업이다. 개념설계는 한화오션이 했지만, 기본설계를 담당한 HD현대중공업이 관행상 상세설계 및 선도함 수주가 유력했다. 그러다 군사기밀 유출 사건에 휘말리면서 2년째 사업자 선정이 지연되고 있다.
노조의 우려는 단순한 이해관계를 넘어선 문제다. 기밀 유출과 같은 불법 행위는 법적·행정적 제재로 처리하면 될 일이지, 이를 이유로 기업 전체를 배제하거나 일감을 축소하는 방식으로 귀결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대규모 국책 방산사업이 정치적 해석에 따라 방향을 틀게 되면 그 충격은 곧바로 노동자의 생계로 이어진다.
정부가 공정성과 투명성을 강조하는 것은 타당하다. 그렇지만 공정성은 계약방식에만 적용되는 원칙이 아니다. 같은 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어떤 환경에서 일하고 어떤 부담을 안게 되는지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특정 업체에 대한 징벌적 인상이 형성될 경우 결국 그 부담은 노동자들의 몫이 된다. 국가가 책임져야 할 영역은 법적 처벌과는 별개로 산업 기반과 일자리의 안정이다.
KDDX 사업은 국가 안보와 산업 경쟁력, 노동자의 삶이 동시에 영향을 받는 중대한 정책 결정이다. 기밀 유출 사건은 사법 절차와 보안 제재로 마무리하되, 사업방식 결정은 산업현장의 파급력과 고용효과를 종합적으로 따져야 한다. 국책 방위사업이 조선업의 불안정성을 다시 키우는 방향으로 흘러간다면 그 피해는 국가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것이다. 정부는 노동자의 일자리가 흔들리지 않도록 책임 있는 결정을 내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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