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분옥 시조시인의 시조 美學과 절제](93)어져 내 일이야-황진이(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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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분옥 시조시인의 시조 美學과 절제](93)어져 내 일이야-황진이(1505~?)
  • 차형석 기자
  • 승인 2025.12.1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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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루지 못한 사랑과 떠남의 계절

어져 내 일이야 그릴 줄을 모르다가
이시라 하더면 가랴마난 제 구태여
보내고 그리난 정을 나도 몰라 하노라
<해동가요>

▲ 한분옥 시조시인
▲ 한분옥 시조시인

다가설 수 없는 사랑도, 구원의 선율로 듣는 계절이다. 사랑은 인류에게 영원한 구원인 동시에 때론 절망이다. 숭고한 사랑은 차가운 계절 속에서 침묵의 선율로 귀에 들리다가 가슴으로 들린다.

누군가를, 무엇인가를 애타게 기다리다가 끝내 이루지 못한, 체념한 듯한 통한에 가을이 저문다.

사랑이란 그런 것이다. 애타게 기다릴망정 보내야 할 때는 보내고 돌아설 줄 아는 사랑이 진정한 성숙 된 사랑일 것이다. 순정과 눈물, 비애의 단조로 노래할망정 보내야 한다면 보낼 줄 아는 심정을 황진이는 읊조린 것이다. 제 구태여 보내고 그리는 정, 그게 진정한 사랑인 것이다.

사랑에는 가시보다 더 아픈 절망이 있음을 아는 황진이었다. 가지 말라고 붙잡으면 가지 않을 님이건만 가고 오는 정이야말로 흐르는 계절과 같이 우주의 섭리라서 돌아설 줄 아는 것이다.

가을이면 어김없이 만추를 노래한, ‘브람스의 교향곡 제4번 E단조’로 나의 가을을 채운다. 가슴 조이듯 휘몰아쳐 가는 긴박함, 영혼의 눈부신 선율은 감동 없이는 들을 수 없다. 영화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의 배경음악으로 쓰인 제3악장은 더욱 절망적인 느낌이다. 한숨짓는 듯한 목관 악기의 쓸쓸한 선율이 사랑을 노래하고 있다. 숭고한 사랑, 고독이 늦은 가을 나의 창가에 와서 머문다.

조용한 아다지오의 멜로디가 들릴 듯한. 계절은 성숙 되어 이젠 저물어가지만 그 많은 열매가 익어가는 계절이 아니라, 모든 생명이 조락하는 계절이다.

황진이는 조선의 유명한 학자 화담 서경덕을 사모했지만 끝내 사랑을 이루지는 못하였다. 처음부터 화담의 가슴에도 황진이를 향한 연정이 피어났던 것이다. 천하일색에다 명 시인이었던 황진이를 향한 화담의 예기치 못한 감정은 아니었을 것이니까. 그러나 화담은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며 진이와의 만남의 인연을 시조와 학문으로 성숙시켰다.

황진이 또한 화담의 제자가 되어 받들어 더욱 고귀한 신의를 쌓았던 것이다. 사랑이란 제 구태여 서로 매달리는 것만이 성사는 아닌것이니까.

한분옥 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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