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을 맞아 ‘달력’을 키워드로 한 뉴스들이 연일 쏟아져나오고 있다. 예컨대 은행 달력 품귀현상으로 달력을 구하기 위해 은행에 줄을 선다는 소식이다. 이제는 달력도 사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는 것을 강조하는 기사도 있다. 대기업의 주문량이 줄면서 전체적으로 달력 발행 부수가 줄었다는 소식으로 달력의 품귀현상을 바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한편으로는 특이한 달력들이 출시되어 흥미를 끈다는 소식도 있다.
예전을 기억해 보면 벽에 걸린 커다랗게 숫자가 쓰인 달력에 동그라미로 그 특별한 날을 표시하는 것이 기념일을 표시하는 유일한 수단이었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스마트폰에 일정을 표시하고 알람까지 맞춰두면 틀림이 없이 표시되는 시대가 되었다. 그리고 각종 SNS에서는 물어보지 않아도 생일을 알려준다. 또 다른 기억으로 교과서 커버로 달력을 사용하던 때가 떠오른다. 달력을 뒤집으면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가장 저렴한 두꺼운 흰 종이가 되니 열심히 반복해 교과서를 봐야 하는 아이들은 이 달력이 긴요한 물건이었다. 지금은 제본 기술도 발전했지만, 아예 디지털 교재의 시대다.
기사를 둘러보면 흥미로운 달력으로 경찰 달력이 눈길을 끈다. 매년 학대 피해 아동을 돕기 위해 수익금 전액을 기부해오던 경찰 달력이 내년도 달력을 제작하여 판매를 시작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이른바 ‘몸짱 달력’이다. 몸짱 달력의 인기가 만만치 않고 좋은 일에 수익금이 사용되니 더 이상 좋을 수가 없다. 달력 모델인 한 경찰관은 목표달성을 위해 새벽 4시에 일어나서 운동하고 퇴근 후에도 운동을 강행하는 등 피나는 노력을 했다고 한다.
부산 동구는 직접 운영하는 SNS의 구독자 수를 늘리기 위해 지역의 명소를 담은 ‘행운 달력’을 발행했다고 한다. 그 달력이 단 이틀 만에 ‘완판’되어 화제가 되었다. 기초지방자치단체 단위에서 이런 달력을 발행할 생각을 했다는 것이 참신하게 다가온다.
은행의 원천이라고 할 조폐공사에서는 ‘프리미엄 돈 달력’을 출시했는데 하루 만에 완판이 되었다고 한다. 화폐 제조 과정에서 발생한 부산물을 재활용하여 만든 업사이클링 달력이라고 하니, ‘친환경 돈가루 달력’이 된다. 인기가 없을 수가 없다.
최근에는 기존의 발상에서 아예 탈피한 달력도 등장하고 있다. 하나은행의 키링 달력으로, ‘세상에서 가장 작을 수 있는 달력(세작달)’을 선보였다. 은행 달력이 재물운을 가져다준다는 스토리에 근거한 굿즈로 이벤트를 통해 제공된다고 한다.
하지만 달력의 변화와 변신의 이면에는 결코 간과할 수 없는 현실이 놓여 있다. 바로 종이 달력의 급격한 감소가 노년층과 디지털 소외계층에게 큰 불편과 상실을 안겨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은행 달력은 돈을 가져다준다는 믿음이 있어 예전부터 은행 달력이 인기였다. 금융권에 따르면 국내 4대 은행 매년 100만 부 가량의 달력을 제작한다고 한다. 그런데 갈수록 달력 수요에 비하면 공급이 모자라는 것 같다. 특히 노년층이 종이로 된 은행 달력을 선호하는데 연말이 되어 종이 달력을 구하지 못한 노년층의 오픈런이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사찰에서 만든 달력도 점차 그 수가 줄어드는 것 같다. 양력 날짜 아래에 음력과 육십 간지를 크게 써 놓아서 불교 신자와 노년층에게 인기였고, 또한 사진이나 그림이 편안한 디자인이어서 마음을 안정되게 하는 면도 있다. 이젠 이 달력도 음력사용이 줄고 제사를 지내는 집도 줄면서 점차 그 수요가 줄어드는 것 같다.
사실 ESG 경영, 환경보호, IT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종이 달력 제작이 줄었고 또한 줄어야 하지만, 노년층에게는 종이 달력의 감소는 고역으로 다가온다. 시대가 변하여 일정을 디지털로 확인하는 것이 일상이 되어가고 있으니 점차 디지털, AI, 정보화에 취약한 소외층이 불편해질 수밖에 없고 이는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그러나 급격한 변화는 부작용을 수반한다. 음식이 싱겁다고 소금을 갑자기 한 움큼 넣어버리면 낭패를 겪는다. 변화의 바람도 좋지만 조금 느리게 변화함으로써 소외계층에게도 변화에 적응할 기회를 주어 함께할 수 있는 디지털 세상을 기대한다.
김지환 지킴특허법률사무소 대표변리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