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이건희 회장 ‘밥 한 그릇’의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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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이건희 회장 ‘밥 한 그릇’의 철학
  • 경상일보
  • 승인 2025.12.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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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걸수 수필가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라.”라는 말이 생각난다. 이는 혁신의 아이콘으로 사회 전반에 큰 울림을 주었던 故 이건희 회장의 말이다. 그는 “세상에는 우연은 없다며 한 번 맺은 인연은 소중하게 다루어야 한다고 했고, “작은 일에 진심을 잃으면 큰일에서도 신뢰를 얻지 못한다”고도 했다. 이런 정신으로 삼성을 세계 초일류기업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이 회장 주변에 두 분의 친구가 있었다. 그들은 삼십여 년 희로애락을 함께 나누었던 친구였는데, 만원짜리 국밥 한 그릇에 인연이 끝나는 것을 보았고, 또 한번은 수십 년 모임을 이끌어온 친구가 사사로울 때는 늘 자기가 지갑을 열었다. 어느 날 고급 한정식집 이야기가 나왔다. 1인당 5만원 이래, 다들 머뭇거렸지만 누군가가 불쑥 한마디 했다.

“어차피 그 형이 낼 건데 뭐” 그 말 한마디에 모임은 얼마 못 갔다고 했다.

이 회장은 기업에서도 수천명의 직원들도 무너질 때는 언제나 사소한 곳에서 시작되었다고 했다. 밥값은 단순한 숫자나 돈이 아니라 그 사람 마음의 온도이며 관계의 언어라고 했다.

필자는 퇴직 9년째 산책하고 책이나 보며 소일하고 있다. 옛 동료나 친구들을 만나기라도 하면, 밥값은 늘 먼저 내려고 했다. 밥값이야말로 별 부담도 없고, 먼저 내면 마음이 편했기 때문이다. 혹시 밥값 먼저 내었다고 건방 떨지는 않았는지 뒤돌아봐진다.

최근 옛 직장 윗분을 만났다. 그는 내무부(현 행정안전부)에서 울산광역시 승격 때 우리 시에 전입해 와서 내 상급자로 우리는 2년 정도 코드가 잘 맞았다.

그러다 각자 다른 부서로 발령이 났고, 그 후 나는 승진, 일선 구청으로 내려갔다. 몇 달 후 시청에 일이 있어 겸사겸사 그를 찾았다. 진정성을 많이 기대했었는데, 그렇지가 않은 것 같아 우리의 인연도 여기까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곰곰이 생각해 보니 순전히 나 혼자만의 생각이었다.

이제는 퇴직하여 서로 삶의 형태가 다르기에 서서히 잊어 가는 어느 날 그의 딸애 청첩장이 문자로 날라왔다. 결혼식 당일 그를 이십여 년 만에 재회했지만, 겉모습은 별 변함없었다. 서로 손을 꽉 잡고 흔들며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그런데 내가 기대했던 옛 동료들은 보이질 않았다. 특히 그 당시 FIFA 과장으로 통했던 S모 계장도 정말 많이 보고 싶었다. 겸손한 마음에 부담될까 봐 연락을 안 했던 것 같다.

다음 날 고맙다는 문자가 왔고, 나도 삼십여 년 전 그의 첫인상과 겸손함을 담아 옛 추억을 얘기하고 싶다며 문자를 보냈다. 우리는 며칠 후 다시 만났다. 점심은 한우 국밥으로 맛있게 먹은 후 바로 옆 찻집에서 속 깊은 얘기까지 두 시간 정도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다음 날 다시 문자가 왔다. 어제 옛 추억담도 정말 좋았다고, 언제든지 기쁜 마음으로 맞이하겠다며 ‘사람의 정’을 느끼게 해 주었다는 내용이었다. 그 순간 잔잔한 행복감이 밀려왔고 가슴이 벅차올랐다. 무엇보다도 진솔함이 와 닿았기에 그 문자를 열 번도 더 읽어 보았다.

같이 있을 때 일들이 어렴풋이 생각났다. 어려운 일이나 의견 다툼이 있을 때, 그는 내 직속 상급자로 언제나 내 자존심을 지켜준 겸손을 갖춘 배려의 리더였다.

국밥 한 그릇으로 삼십년 우정이 깨지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우리는 국밥 한 그릇에 꺼져가는 불에 온기를 다시 불어넣어 따뜻한 모닥불이 되었다.

고 이건희 회장은 “인간의 품격은 큰 무대가 아니라 작은 데서 출발한다고 고마움을 잊지 않는 자만이 상대의 마음을 움직인다고, 주는 데서 존중을, 받는 데서 감사함을 배운다”고 했다. 필자는 무심코 그냥 스쳐버릴 인연의 길목에서 천군만마를 다시 얻게 되어 무한한 감동과 기쁨을 오랫동안 누려본다.

강걸수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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