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울산화력발전소에서 발생한 구조물 붕괴 사고는 우리 모두에게 큰 충격과 안타까움을 남겼다. 이번 사고는 우리 사회를 떠받치고 있는 기반시설 안전 관리의 중요성과 빈틈없는 재난 대응 체계에 대한 필요성을 뼈저리게 일깨워 줬다. 이러한 위기 의식은 대한민국 산업의 심장인 울산에 더욱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 국가 경제를 지탱하는 굵직한 산업기반이 바로 이곳, 울산에 모여 있기 때문이다. 이 거대한 공장들을 움직이는 근원적인 힘은 바로 ‘물’이다. 태화강 유역의 댐과 상수원 관리를 통한 안정적인 생공용수 공급은 과거 울산의 성장을 이끈 필수 기반이었으며, 지금도 시민의 일상과 산업을 지탱하는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
이처럼 기반 시설이 튼튼해야만 우리의 일상도, 지역 사회도 건강할 수 있다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대한민국의 산업화는 수자원을 비롯한 사회 기반시설이 튼튼한 뼈대가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과거 방식과 경험만으로 이런 기반시설의 안전을 장담하기 어렵다. 기후 변화로 인한 예측 불가능성은 더욱 커졌고, 홍수와 가뭄, 대형 산불 등이 동시에 덮치는 복합재난이 잦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달라진 환경에는 더욱 긴밀한 대응이 필요하다. 댐과 수도와 같은 시설물의 미세한 위험 신호까지 감지해내는 섬세한 감각이 필수적이다.
여기서 빛을 발하는 것이 바로 AI(인공지능)와 디지털 첨단 기술이다. 이에, 한국수자원공사는 선제적으로 ‘디지털 트윈(Digital Twin)’ ‘AI 정수장’ ‘스마트 관망 관리’ 등 첨단 기술을 현장에 도입해 댐과 정수장, 취수원 시설의 운영 효율과 안전성을 강화해 왔다. 이 기술들은 땅속에 보이지 않는 물의 흐름을 읽어내고, 시설물의 작은 균열까지 시각화해 보여준다. 데이터에 기반한 정교한 예측으로 불확실성에 대응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기술이 재난을 완벽히 막아내는 만능열쇠는 아니다. 아무리 똑똑한 시스템을 갖춰도 데이터를 해석하고 최종 판단을 내리는 것은 ‘사람’의 몫이기 때문이다. 명확한 기준과 절차, 안전을 끝까지 책임지겠다는 마음가짐이 결합될 때 기술은 비로소 제 역할을 다한다.
이러한 철학을 바탕으로 한국수자원공사는 조직의 일하는 방식을 ‘안전’ 중심으로 새롭게 재편하고 있다. 위험 인식기준을 통일하고, 평가와 점검절차를 체계화해 조직 전반에 안전 DNA를 심고 있다. 하지만 한 기관의 혁신만으로 도시 전체의 안전을 담보하기에 한계가 있다. 모든 기반시설은 거미줄처럼 유기적으로 얽혀 있어, 한 곳의 위기가 순식간에 전체로 확산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관간의 장벽을 허물고 정보를 투명하게 공유하며, 위험을 같은 눈높이에서 바라보는 ‘공동대응 체계’가 절실하다. 마지막으로, 견고한 사회 안전망을 완성하는 것은 시민의 신뢰다. 시설 관리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해 막연한 불안을 걷어내야 한다. 이러한 신뢰야말로 위기상황에서 우리 사회가 질서정연하게 대응할 수 있게 하는 가장 강력한 힘이다.
안전은 도시의 가장 확실한 경쟁력이며, 그 토대 위에 쌓인 신뢰는 도시의 미래를 결정한다. 앞으로 도시 기반시설을 어떻게 안전하게 관리·운영하는지가 지역 경쟁력을 가늠하는 핵심 척도가 될 것이며, 이에 첨단 기술의 예리함에 사람의 책임감, 그리고 지역사회의 협력을 더해서 ‘선제적 안전 패러다임’을 완성하는 것이 도시의 지속가능한 성장의 토대가 될 것이다. 이번 사고를 반면교사 삼아 울산이 ‘산업수도’의 자부심 위에 ‘가장 안전한 도시’라는 새로운 명예를 더하기를 염원한다.
끝으로 필자는 지난 1년간 기고문을 통해 고향인 울산의 시민들과 소통할 수 있어 더없이 행복했다. 비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는 말처럼, 울산이 더욱 단단한 안전이라는 기반 위에서 눈부시게 발전하고, 시민들이 마음 놓고 살 수 있는 행복한 도시로 성장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류형주 한국수자원공사 부사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