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체계적으로 훈련시키려고 했지만 그것을 거부하고 몰래 사라진 그를 딱히 제자라고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자신에게 정보를 제공해주는 첩자로 이용할 수 있는 녀석도 아니다. 그렇지만 자신의 손으로 그의 목숨을 거두고 싶지는 않다. 그 녀석에 대한 자신의 감정이 참으로 복잡 미묘하기에 적어도 한 번은 더 만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니시를 주군으로 모시고 있는 그에게 생각이 많다는 것은 그리 좋은 모습이 아니다. 그저 아무 생각 없이 주군의 명령을 수행하고 자신의 목숨은 오직 한 사람을 위해서 미련 없이 버려야 한다. 그런데도 요즘 요시라(세평)는 생각이 너무 많다. 주군이 자신에게 준 이름인 요시라보다 세평이라는 이름에 애착이 가는 것도 그의 마음에 뭔가 변화가 생겼기 때문일 것이다. 방에서 혼자 안주도 없이 술병을 입에다가 대고 벌컥벌컥 마셔대는 자신의 모습이 참 낯설게 느껴졌다. 그때 조용히 방문이 열렸다. 그의 방을 열고 들어온 것은 다른 사람이 아닌 하나코였다.
“아저씨, 왜 이러고 계세요?”
“응, 넌 자지 않고 웬일이냐?”
“아저씨가 이럴 거 같아서 건너왔어요. 제가 아저씨 재워드릴게요.”
말을 마친 하나코는 그의 곁으로 다가가며 적극적으로 그를 유혹했다. 일방적인 그녀의 도발이었다. 그렇지만 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녀의 노력에 전혀 반응이 없었던 것이다.
“하나코, 부질없는 짓이다. 나는 이미 내 스스로 남성의 기능을 없애버렸다. 무술을 연마하는 데 잡생각은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이유를 말한다면 바로 너 때문이다. 너 또한 주군의 명령을 충실히 수행해야 하는 입장인데 내가 쓸데없이 너에게 연정을 품는다면 너와 나, 주군 모두에게 좋지 않은 결과를 낳을 것이기 때문이다. 네가 다른 남자의 품에 안기는 것을 내가 용납하지 못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너도 능히 짐작할 것이다. 나는 그런 인간이 되기가 싫었다. 그래서 택한 것이 여인을 품을 수 없는 사내 아닌 사내로 나를 만드는 것이었다.”
“세평 아저씨!”
하나코는 그를 붙잡고 울음을 터트렸다. 그녀의 오열은 한동안 계속되었다. 울 만큼 운 그녀는 다시 세평에게 물었다.
“아저씨, 이제 어떻게 사실 거예요?”
“뭘 어떻게 살아, 주군이 주시는 밀명이나 이행하면서 사는 거지. 그러다가 재수 없으면 죽는 거고. 그게 우리 같은 사람들의 운명이야.”
“아저씨!”
“이번 공작만 끝나면 주군에게 말씀드려서 하나코는 평범한 여인의 길을 가게 할 생각이다. 네가 일반 여인들처럼 아이 낳고 지아비의 사랑을 받으며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는 게 나의 유일한 희망사항이다. 그러니 너도 그렇게 알고 이번 공작이 끝나는 대로 네 마음에 드는 녀석을 찾아봐라. 네가 원하는 사내라면 내가 가진 돈과 힘을 총동원해서라도 너와 혼인을 하도록 도울 것이다.”
글 : 지선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