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의 비철금속 고려아연(회장 최윤범)이 11조원을 들여 미국에 신규 제련소를 세우기로 한 가운데, 이번 신규 투자로 최윤범 회장의 경영권 방어에도 ‘청신호’가 켜질 전망이다.
16일 업계에 따르면 고려아연은 미국 테네시주 클락스빌에 미 정부(전쟁부·상무부), 방산업계와 합작법인(JV) 형태로 10조9000여억원을 투자해 울산 온산제련소와 같은 형태의 ‘쌍둥이 제련소’를 세운다.
이를 위해 고려아연은 미국 측과 함께 출자금을 마련하고, 이 중 2조8600억원을 유상증자에 투입할 예정인데, 이 과정에서 지분구조에 변동이 생기게 된다.
유증이 완료되면 최 회장의 우군이 될 합작법인이 고려아연 주식을 10%가량 확보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MBK 지분율은 낮아질 전망이다.
이에 울산 온산제련소를 기반으로 신재생에너지, 그린수소·2차전지, 자원순환을 축으로 하는 신성장동력 ‘트로이카 드라이브’를 펴 온 최윤범 회장의 안정적 경영 기반이 마련됐다는 관측이다.
앞서 고려아연에 대한 적대적 M&A를 이어온 영풍·MBK 연합은 지난 10월에도 206억원을 투입해 고려아연 주식 총 1만8000주를 장내 매수했다. 여기에 고려아연의 자사주 소각이 더해지면서 최근 MBK·영풍의 고려아연 지분율은 기존 41.25%에서 44%로 다소 높아졌다. 최윤범 회장은 우호 세력을 포함해 32% 수준의 지분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내년 3월 주주총회에서 MBK·영풍은 지분 우위를 토대로 고려아연 이사회에 대한 장악력을 높인다는 구상이었다. 직무 정지된 이사 4명을 제외하고 현재 최 회장 측 11명, MBK·영풍 4명인 이사회 구도를 8대 7까지 뒤쫓을 수 있다는 계산이었지만, 지분 변동으로 차질이 불가피하게 됐다.
특히 신규 제련소 투자 과정에서 미국 정부가 고려아연의 지분을 간접 보유하는 형태가 되면서 고려아연이 미국 안보자산으로 포함될 가능성이 있어 M&A에는 부담으로 작용하게 될 전망이다.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부 장관은 고려아연 신규 제련소 설립에 대해 “고려아연의 신규 프로젝트는 미국의 핵심광물 판도를 바꾸는 획기적인 딜(transformational deal)”이라며 “미국은 생산 확대분 중 일부에 대해 우선적 매수권한을 갖게 된다”고 밝히기도 했다.
한편, 이날 영풍·MBK연합은 고려아연 이사회가 결의한 제3자 배정 유상증자에 대해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신주발행금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영풍 측은 입장문을 내고 “고려아연과 미국 정부·미국 기업 간 합작법인(JV) 설립 및 미국 내 제련소 건설과 관련해, 미국과의 전략적 산업 협력 자체에 반대하는 입장이 아님을 분명히 밝힌다”면서 “다만 협력 과정에서 사업적 필요성과 무관하게 경영권 분쟁 국면에서 지배구조를 인위적으로 재편하려는 수단으로 오용되었다고 판단한다”고 주장했다.
서정혜기자 sjh3783@ksilb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