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나이가 든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사랑을 이해하는 언어가 바뀐다. 젊은 날의 사랑이 소유와 열정의 언어였다면 노년의 사랑은 존중과 동행의 언어로 옮겨간다. 또한 젊은 날의 사랑이 불꽃처럼 뜨거운 감정이었다면, 노년의 사랑은 서서히 타오르며 오래도록 온기를 내는 숯불과 같다. 뜨거움은 식어도 온기는 남는다. 이 온기는 감정의 폭발이 아니라, 이해와 인내가 만들어낸 결과다.
퇴직 이후 부부는 새로운 관계의 전환점을 맞는다. 오랫동안 각자의 일터에서 지내던 두 사람이 하루의 대부분을 함께 보내며, 이제는 ‘부부’로서뿐 아니라 ‘삶의 동반자’로서 관계를 다시 세워야 하는 시기다. 이때 필요한 사랑은 낭만이 아니라,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함께 늙어가는 과정을 존중하는 사랑이다. 어느 인문학자는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관계의 기술이며, 함께 늙어가는 연습”이라고 했다. 노년의 사랑은 서로의 변화를 받아들이며 호흡을 맞추는 일이다. 한쪽이 늦게 걸으면 속도를 맞춰 걷고, 말보다 표정으로 이해하며, 침묵 속에서도 연결되어 있음을 느끼는 것. 그것이 노년의 사랑이 지닌 가장 깊은 미학이다.
나이 든 부부가 갈등을 겪는 이유는 사랑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함께 사는 방식’이 변했기 때문이다. 젊을 때는 자녀와 일이라는 공통분모가 있으나 노년에는 그 매개가 사라지고, 오롯이 ‘두 사람만의 관계’만 남는다. 이 시기에는 감정의 불꽃보다 일상의 합리적 이해가 더 필요하다. 서로의 습관을 존중하고, 다름을 탓하지 않으며, 불필요한 논쟁 대신 여유로운 거리감을 유지하는 태도야말로 성숙한 사랑의 자세다.
침묵의 의미도 달라진다. 말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말의 필요가 줄어든다. 노년의 사랑은 설명하지 않아도 함께 있는 상태를 견디는 힘이다. 같은 공간에서 각자의 시간을 보내면서도 불안하지 않은 마음, 침묵 속에서도 연결되어 있다는 확신. 그것이 깊어진 관계의 표지다.
현대 사회의 부부 사랑은 더 이상 감정의 합이 아니라 ‘삶의 조율’이다. 경제적 여건, 건강, 심리적 변화 속에서도 균형을 잡아가는 과정이 곧 사랑이다. 서로의 생활 리듬을 맞추고, 각자에게 필요한 ‘혼자만의 시간’을 존중하며, 함께의 시간을 지혜롭게 조율하는 것. 그것이 노년의 사랑이 지닌 실용적이고 합리적인 아름다움이다. 법정 스님이 말한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사랑”은 노년의 사랑을 가장 간결하게 설명한다. 바꾸지 않겠다는 결심, 고치지 않겠다는 약속, 다만 함께하겠다는 의지. 그리고 김형석 교수가 <백년을 살아보니>에서 남긴 말처럼, 사랑의 완성은 서로에게 ‘편안한 사람’이 되는 일이다. 기대를 줄이고, 신뢰를 남기는 관계.
결국 노년의 사랑은 뜨거움이 아니라 따뜻함의 미학이다. 젊은 날의 사랑이 ‘나를 중심으로 한 감정’이었다면, 노년의 사랑은 ‘너를 중심으로 한 이해’다. 서로의 노쇠함을 감싸 안고, 함께 늙어갈 용기를 내는 것, 그것이 인생의 마지막 여정을 단단히 지탱해주는 가장 깊은 사랑의 형태다.
정안태 '오늘하루 행복수업' 저자·울산안전 대표이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