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주요 그룹의 2026년 신년사를 살펴보면 불확실성 대응, 실행력 강화, 기존 사업 경쟁력 제고, 그리고 AI 전환이 핵심 키워드로 반복된다. 이 가운데 가장 많이, 그리고 가장 강하게 언급된 화두는 단연 AI다.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신년사에서 AX 전환 가속을 통해 기업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꾸겠다는 방향을 제시했고,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기존 사업 경쟁력에 AI를 결합하는 방식의 성장 전략을 강조했다. 허태수 GS그룹 회장 역시 AI 혁신의 성과가 본업 경쟁력으로 연결돼야 한다는 점을 신년사에서 분명히 했다.
이제 “AI를 하느냐”의 문제는 사라졌고, “AI를 전제로 어떻게 경영하느냐”만 남았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이 따라온다. AI 전환이 이처럼 강조되는 만큼, 그 결과는 과연 어디에 남겨지는가. 회계가 이를 설명하지 못한다면, AI는 경영의 전제가 될 수는 있어도 의사결정의 근거가 되지는 못한다.
흥미로운 점은 많은 기업이 AI 도입과 활용을 자신 있게 말하지만, 그 성과를 숫자로 설명하는 데는 여전히 조심스럽다는 사실이다. 자동화와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 효율 개선은 반복적으로 언급되지만, 그 변화가 손익계산서 어디에 남는지에 대해서는 선뜻 답이 나오지 않는다. AI는 분명 경영을 바꾸고 있는데, 회계는 아직 그 변화를 충분히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AI 전환이 회계에 던지는 첫 번째 질문은 ‘성과의 위치’다. AI는 인력을 줄이거나 같은 인력으로 더 많은 일을 하게 만들지만, 그 효과는 기존의 원가 항목이나 부문별 손익 구조에 깔끔하게 담기지 않는다. 인건비 절감인지, 생산성 향상인지, 아니면 미래 리스크 감소 효과인지가 뒤섞여 나타난다. 회계가 이를 분해해 설명하지 못하면 AI 성과는 의사결정의 핵심 근거로 활용되기 어렵다.
두 번째는 ‘책임의 문제’다. AI는 구매, 생산, 물류, 가격 결정 등 핵심적인 의사결정에 점점 더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 결과가 좋을 때는 ‘시스템의 성과’로 평가되지만, 결과가 나쁠 때는 “최종 판단은 사람이 했다”는 말이 나온다. 결과에 따라 의사결정의 주체와 성과 책임이 달라지는 순간, 경영의 책임 구조는 흐려진다. 회계는 AI가 개입한 판단의 결과를 누가 책임지는지, 그 구조를 재무적으로 드러내야 한다.
세 번째는 ‘AI 투자의 성격’이다. AI 투자는 소프트웨어 도입, 데이터 구입, 클라우드 사용료, 외부 컨설팅, 그리고 내부 개발 인력 비용 등이 복합적으로 뒤섞여 있다. 이 때문에 하나의 프로젝트 안에서도 어떤 지출은 비용으로 사라지고, 어떤 지출은 여러 기간에 걸쳐 기업에 효익을 제공하는 자산이 된다. 문제는 이 경계가 대단히 모호하다는 점이다. 회계 기준은 미래 효익 창출 여부에 따라 비용과 자산을 구분하도록 요구하지만, 무형의 AI 투자가 언제부터, 얼마나 수익에 기여할지를 객관적으로 증명하기는 대단히 까다롭다. 비용화와 자산화라는 회계 처리의 차이에 따라 기업의 기간별 성과와 재무 건전성은 전혀 다르게 읽힌다. 결국 AI 회계는 보이지 않는 미래 효익을 어떤 방식으로 재무제표에 반영할 것인가에 대한 판단의 문제다.
이 문제는 울산과 같은 산업도시에서 더욱 민감하다. 조선·자동차·에너지 산업은 AI가 사무직보다 생산 공정과 설비, 에너지 관리에 먼저 적용되는 영역이다. AI는 현장에서 분명한 효과를 내지만, 그 성과가 재무제표에 설명되지 않는 순간 경영의 언어에서 사라진다. 숫자로 보이지 않는 성과는 의사결정에 반영되지 않고, 반복되지도 않는다. 결국 AI 전환의 성패는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그 효과를 재무적으로 보여줄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AI 전환 시대에 회계의 역할은 계산 자체가 아니라 설명에 있다. AI는 경영 전반에 걸쳐 의사결정 방식과 업무 구조를 바꾸고 있지만, 그 변화가 어떤 성과로 이어졌는지를 정리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일은 여전히 회계의 몫이다. 회계는 더 이상 과거를 기록하는 기술에 머물 수 없다. AI가 바꾼 경영 구조 속에서 성과의 위치를 정리하고, 책임의 경계를 설정하며, 투자 판단의 기준을 제시하는 언어가 돼야 한다.
김진욱 건국대학교 경영전문대학원 부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