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항은 지난 반세기 넘게 대한민국 산업화의 최전선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역사의 현장이자 경제 발전의 심장부다.
정유·석유화학·자동차·조선 등 울산의 4대 주력산업과 호흡을 맞추며 성장해 온 울산항은 명실상부한 국내 최대의 액체화물 거점 항만으로서 국가 경제의 동맥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 왔다. 특히 액체화물 처리에 특화된 독보적인 항만 인프라와 배후 산업단지가 모세혈관처럼 연결된 지리적 인접성은 타 항만이 모방할 수 없는 울산항만의 가장 강력한 경쟁력이라 할 수 있다.
그동안 울산항은 대규모 위험물 전용 부두와 촘촘한 탱크 터미널, 파이프라인 시설을 기반으로 대내외 변수에도 흔들림 없는 안정적인 물동량을 유지해 왔다.
이는 원자재 수입에서부터 제품 생산, 수출로 이어지는 물류 과정이 하나의 유기적인 체계로 연결된 효율적인 구조를 형성했기에 가능했다. 이러한 산업 연계형 항만 구조는 입주 기업에게 물류비용의 획기적인 절감과 신속한 공급망 운영이라는 실질적인 이익을 제공해 왔으며, 울산 지역 제조업이 성장할수록 항만 물동량도 함께 증가하는 견고한 선순환 구조가 오랫동안 유지되어 온 원동력이었다.
그러나 최근 울산항은 전례 없는 복합적인 도전에 직면해 있다. 가장 시급한 과제는 특정 화물에 지나치게 편중된 취약한 화물 구조 문제다. 전체 물동량 중 액체화물 의존도가 80%에 육박한다는 것은 급변하는 글로벌 에너지 시장의 파동과 전 지구적 과제인 탄소중립 정책의 영향에 울산항이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화석연료 중심의 에너지 패러다임이 친환경으로 급격히 전환되는 시기에, 기존의 정유 및 석유화학 중심의 화물 구조만 고집해서는 더 이상 지속 가능한 성장을 담보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또 날로 치열해지는 항만 간의 경쟁 환경 변화도 간과할 수 없는 위협 요인이다. 이제는 단순히 화물을 싣고 내리는 처리 실적을 넘어, 디지털 전환(DX)을 통한 스마트 물류 시스템 구축과 고부가가치 서비스 등 차별화된 특화 기능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에 대한 치열한 고민과 혁신이 필요한 시점이다.
안전과 환경 문제 역시 울산항이 풀어야 할 핵심 난제다. 위험물 취급 비중이 절대적으로 높은 울산항의 특성상, 사소한 사고도 대형 재난으로 이어질 수 있기에 철저한 사고 예방과 환경 보호는 항만 운영의 최우선 가치다.
노후화된 항만 시설의 선제적 개선과 친환경 하역 설비의 도입, 그리고 인공지능(AI)과 사물인터넷(IoT)을 접목한 스마트 안전 관리 체계 구축은 선택이 아닌 생존을 위한 필수 과제가 되고 있다. 이는 항만의 대외적 경쟁력을 강화하는 길일뿐더러, 항만을 끼고 살아가는 지역 사회와의 신뢰를 공고히 하는 데에도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다.
앞으로 울산항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명확하다. 기존 주력산업을 안정적으로 뒷받침하는 본연의 역할을 다하면서도, 화물 구조를 점진적으로 다변화하여 외부 충격에 강한 체질로 개선해야 한다. 더 나아가 수소·암모니아·LNG 등 친환경 미래 에너지 물류의 거점으로서 동북아 에너지 허브의 역할을 주도적으로 준비해야 한다. 아울러 단순 보관과 하역에 그쳤던 배후 물류단지를 가공·유통·조립 등 고부가가치 서비스 기능이 결합된 복합 물류 공간으로 고도화하여 새로운 물동량을 창출할 필요가 있다.
울산항은 더 이상 과거의 영광과 성공 방식에만 머물러 있을 수 없다. 산업의 성장을 뒤에서 묵묵히 지원하던 수동적 항만에서, 이제는 산업 대전환을 선도하고 미래 먹거리를 창출하는 능동적 항만으로 변화해야 한다. 이러한 혁신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질 때, 울산항은 침체된 지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다시 한 번 굳건히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이원용 울산항만물류협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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