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눈은 붉게 변했고 이빨이 딱딱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놈에 대한 분노가 그의 감정과 이성을 지배하고, 급기야는 그의 몸으로 표출되고 있었다.
여름이 되자 천동의 부인인 옥화는 입덧을 심하게 하였다. 그녀는 남편인 천동이 신경을 쓰지 않게 하기 위해서 이를 악물고 그것을 참았다. 동굴집에서 머무르는 관계로 더위는 걱정이 없었다. 그곳은 아늑한데다가 적당히 시원하기까지 해서 여름 한 철을 지내기에는 더없이 좋은 곳이기 때문이다.
복날에 익는 열매인 산살구를 따기 위해서 산 중턱으로 내려간 천동은 동무들을 불렀다. 지난달에 산뽕나무 열매를 따서 먹은 그들은 오늘 산살구를 따먹기 위해서 다시 모였다. 나무에 오르는 것은 다람쥐라는 별명을 가진 부지깽이가 하기로 했다. 비탈진 곳에 위태롭게 서있는 산살구나무에서 열매를 딴다는 것이 쉽지가 않았지만 거침없이 나무에 올라가 위에서 작대기로 살구를 털기 시작했다. 나무 아래에 있는 두 사람은 그것을 줍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세 그루를 털자 산살구가 제법 많이 모아졌다. 그들은 그것을 일부는 먹고 나머지는 같은 양으로 나누었다.
아직도 도산성에 왜병들은 만여 명이 도사리고 있었기에 마을로 내려가서 참살구를 딴다는 것이 위험해서 이렇게 맛이 떨어지는 산살구라도 먹으려고 아등바등 딴 것이다. 팔월(음력)부터는 산머루를 시작으로 다래며 산밤 및 각종 야생열매들이 있어서 부지런을 떨면 그런대로 맛은 볼 수 있을 것이지만, 지금은 온 산을 헤매고 다녀도 먹을 열매라고는 이것밖에 없다.
천동은 기쁜 마음으로 동굴집으로 돌아와서 그것을 색시에게 주었다. 입덧을 하던 옥화도 산살구는 맛나게 먹었다.
“잘 먹었어요.”
“뭘 그걸 가지고. 이 여름에 산에서 따먹을 수 있는 열매가 그것밖에 없어서 내가 미안하지. 당신이 많이 힘든 걸 알면서도 도와주지 못해서 답답해.”
“지금은 전란 중이라서 굶지 않는 것만도 얼마나 다행한 일인데, 내가 고마워해야지 당신이 왜 미안하다고 하세요?”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 당신이 힘들면 차라리 어머님 모시고 올까?”
“이 좁은 동굴집에 네 식구가 같이 있으면 너무 불편해서 안 될 거 같아요. 나도 불편하고 당신도 불편하고 부모님들도 불편할 거예요. 그러니까 그러지 마세요.”
“알았어. 언제라도 생각이 있으면 말해. 즉시 모셔올 테니까.”
“고마워요.”
다음 날부터 장마가 시작되었다. 하루 종일 많은 양의 비가 내려서 동굴 안이 다소 습해지자 동굴에 불을 피워서 습도를 조절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 낮에 불을 피우다 보니 뭔가 허전한 생각이 들었다. 두 사람은 이심전심이 되어서 전을 부쳤다. 이번에도 부인인 옥화가 잘 먹어주었다. 한입 가득 입에 넣고 먹으며 자신이 먹는 게 아니라 뱃속의 아이가 먹는 거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그렇지만 천동은 그저 잘 먹어주는 처가 어여쁘게 보일 뿐이었다.
글 : 지선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