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정부’ 지향으로 국민에 비용부담
정부와 민간 합리적 역할배분 필요

정부의 역할은 어디까지인가. 역사적으로 보면, 근대국가 등장 이후 중상주의와 자유방임주의 시기를 거치며 국가기능은 확대와 축소를 반복하였으나 결국 복지국가가 대두되면서 국가기능은 대폭 확대됐다. 특히 우리나라는 과거 정부주도의 경제발전 전략을 수행하면서 국가의 역할과 기능이 더욱 팽창했다. 최근에는 이념적으로 ‘큰 정부’를 지향하는 정권의 등장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정부주도의 방역과 경제회복 노력이 추가되면서 정부의 역할은 사상 유래가 없을 정도로 확대되고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가용할 수 있는 자원의 규모에는 한계가 있으므로, 정부의 역할이 크다는 것은 그만큼 민간 또는 시장의 역할이 제한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정부와 민간의 자원 또는 역할 배분은 제로섬 관계이다. 따라서 정부의 규모를 논의할 때는 정부와 민간(시장) 간의 합리적 역할 배분을 고려해야 한다. 어느 한 부문이 과잉되지 않는, 적정 배분 상태가 바람직한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요즈음 우리나라는 정부 과잉이 분명하다. ‘과잉정부’의 징후는 사회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우선 예산 규모가 급속히 팽창하고 있다. 현 정부가 예산을 편성한 2018년 본예산 규모가 428조8000억원이었는데 2021년에는 555조8000억원으로 4년 동안 연평균 8.54%가 증가했다. 이전 정부의 예산증가율 4.24%의 두 배가 넘는 수치이다. 국가채무도 급속히 확대되고 있다. 현 정부 첫 해인 2017년 말 660조2000억원에서 4년 만에 945조원으로 무려 43.2%(285조원)가 늘어났다. 예산뿐만 아니라 이 기간 동안 공무원을 비롯한 공공부문 정원이 22만명이 증가하여 공공부문 직원들의 숫자도 대폭 증가했다.
이에 비해 민간과 시장에 활력을 불어 줄 규제의 혁신은 더디기만 하다. 일부 규제를 면제 또는 유예하는 규제 샌드박스(sand box) 제도를 도입했으나 여전히 체감할 수 있는 수준의 성과는 내지 못하고 있다. 빅데이터, 핀테크, 원격의료 등 신사업분야의 규제개혁은 계속 미뤄지고 있다.
오히려 규제의 범위가 확대되고 강도가 강해지는 경향이 있다. 스무 번이 넘는 부동산규제, 유통산업에 대한 규제 등과 같이 기존 규제의 혁신보다는 새로운 규제를 추가하여 시장에 개입하려는 시도가 지속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과잉정부의 징후는 지방정부에서도 흔히 관찰된다. 최근 논란이 된 지역화폐를 비롯하여 공공 배달앱 등 시장 여건을 고려하지 않은 개입으로 국가 전체적인 차원에서 자원이 낭비되고 있다는 지적을 받는다. 불필요한 축제의 남발, 알맹이가 빈약한 시민강좌, 흉물스런 공공조형물 등도 굳이 정부가 수행할 필요가 없거나 민간에서 더 잘 할 수 있는 것을 시도하는 과잉정부 현상의 하나이다.
코로나 대응에 있어서도 ‘검사-추적-격리’를 기조로 하는 이른바 ‘K방역’은 상당한 효과를 거두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검사-추적과정에서 필요 이상으로 개인의 정보가 수집·노출되고, 방역을 이유로 집회의 자유와 같은 헌법상의 기본권이 과도하게 침해되는 것은 과잉대응이자 과잉정부의 모습이다.
이밖에도 정부가 직접 일자리를 만들려고 한다거나, 자사고·특목고 등을 모두 폐지하고 모든 학생들이 획일적인 교육만 받으라고 강압하는 것도 과잉정부 사례이다.
정부는 가급적 직접 재화나 서비스의 공급 당사자가 되는 것을 스스로 경계할 필요가 있다. 시장과 민간이 잘 작동될 수 있도록 인프라와 규칙을 만들고 이것이 잘 준수되는지 감시·감독하는 것이 정부의 주된 역할이 돼야 한다. 불가피하게 직접 개입하는 경우에도 과잉금지 원칙(principle of proportionality)을 준수하여 필요한 만큼만 역할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정부는 만병통치약이 될 수 없으며, 더구나 공짜가 아니다. 과잉정부의 경제적·사회적 비용은 결국 모든 국민들의 부담으로 고스란히 돌아온다. 과잉정부는 자제돼야 한다. 정준금 울산대 사회과학부 교수 행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