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로크시대 진입한 17세기 비엔나
국제회의 등 귀족행사 끊이질 않고
입구 못찾을만큼 넓은 벨데베레궁
18세기 비엔나의 호사 잘 설명해줘
합스부르크가의 절대왕권 지배욕
18세기 후반 쉔부룬궁에 녹여내
대성당과 왕궁이 아무리 장려하다해도 그것은 ‘비엔나다움’을 만드는 일부분에 불과하다. 비엔나의 매력적 도시풍경은 거리에서 만날 수 있다. 대성당에서 왕궁에 이르는 번화가 그라벤 거리, ‘비엔나다움’이 물씬 풍기는 도시탐험의 필수코스다. 이 거리는 직선으로 곧게 뻗은 대로가 아니다. 오페라하우스를 출발하여 슈테판성당과 성페터성당에서 꺾어져 왕궁에 이르는 U자형의 가로망이다. 이를 ‘황금의 U(Goldenes U)’라고 부른다.
이 거리를 걷다보면 음악적 선율에 젖곤 한다. 당연히 클래식 음악에 어울리는 도시풍경이다. 그것도 장엄미 넘치는 베토벤의 교향곡이나 우수에 젖은 슈베르트의 가곡보다는 경쾌하고 화려한 슈트라우스의 왈츠에 어울린다. 어디선가 연미복을 입은 신사들과 빵빵한 드레스의 귀부인들이 호화로운 무도회를 벌이고 있을 것 같은 분위기다. 실제로 12월31일 그라벤 거리에는 수많은 시민들이 모여 춤판을 벌인다. 음악은 거리와 건축 속에 녹아 있다.
17세기 비엔나는 바로크 시대로 바로 진입한다. 오스만과의 전쟁을 위해 집중되었던 유럽사회의 자원들이 파괴된 도시를 복구하는데 사용되었다. 종교개혁의 광풍을 피했던 비엔나는 반종교개혁 운동의 국제적 중심으로 번성할 수 있었다. 각종 국제회의와 연회, 음악회, 연극, 사냥 등 귀족적 행사가 끊이지 않았다. 화려하고, 우아하고, 세련됨을 추구하는 귀족문화의 수요는 바로크가 꽃필 수 있는 토양이 되었던 것이다.
벨데베레궁만큼 18세기 비엔나의 호사를 잘 설명하는 건축은 드물 것이다. 그 위용은 높이보다 면적에서 나타난다. 입구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광대하고 경사진 부지 중앙에 정원을 꾸미고 양 끝에 각기 하궁과 상궁을 세웠다. 하지만 하궁에서 상궁으로 가려면 입에서 단내 날 각오를 해야 한다. 그 시대 황족이나 귀족들은 분명 마차를 이용했을 것이다. 그 만큼 두 건물의 거리가 지나치게 멀어 하나의 왕궁으로 인식되기 어렵다.
바로크 건축의 정수는 상궁에서 찾아볼 수 있다. 수평성을 강조하는 파사드가 현관부를 중심으로 좌우 대칭의 고전적 언어로 분절된다. 파사드의 단조로움을 피하기 위해 층높이의 변화와 지붕의 분절, 화려한 장식적 세부를 만들어 활력을 주었다. 건물 앞에 배치한 거대한 타원형 수반이 파사드의 그림자를 거울처럼 담아준다. 달력그림과 같은 화려하고 웅장한 풍경, 바로 황실의 위용을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건축이다.
실상 바로크 건축의 호사스러움은 외부보다 내부에 감추고 있다. 곡선으로 휘어 오르는 계단, 조각인지 건축인지를 구분할 수 없는 장식, 그리고 선명하게 빛나는 유채색의 천정화, 사치와 호사의 극을 달리는 감각적이고 쾌락적인 내부공간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처 발코니에 나서면 한 눈에 펼쳐지는 거대한 정원, 그것은 모차르트의 교향곡 같은 경쾌하고 웅장한 극적 전개를 연출한다.
합스부르크가의 영광은 쉔부룬궁에서 절정에 달한다. 쉔부룬은 18세기 후반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 시대에 완성되었다. 여제는 유럽 각국의 황실과 정략결혼을 통해 국가 영토를 확장하고, 안으로는 현대화를 통해 국력을 신장시켰던 인물이다. 영토는 ‘해가지지 않을 만큼’ 광활하고, 국력은 프랑스 부르봉 왕조와 견줄 만큼 막강한 시대를 이끌었던 것이다.
하지만 왕궁 건물은 지루할 만큼 무미건조하다. 진입부 광장바닥의 장식성도 파사드의 장식성도 베르사이유에 비하면 지나치게 검소한 편이다. 지붕난간에 조각상들이 설치되지 않았다면 시내 아파트 정도의 외관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내부로 들어서면 별천지를 만나게 된다. 내부는 공간이라기보다 보석함에 가깝다. 넋을 잃을 만큼 황홀한 로코코풍의 장식이 끝없이 전개된다. 연일 성대한 무도회가 열려 ‘회의는 춤춘다’고 했던 거울의 방, 모차르트의 재기 발랄한 피아노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벨데베레처럼 왕궁 건물 뒤에는 거대한 정원이 펼쳐진다. 결코 산책할만한 도보거리가 아니다. 자로 잰 듯이 분할되어 있는 좌우대칭의 정원, 화초들도 타일 문양처럼 정교하게 패턴을 이루었다. 그나마 화단은 나은 편이다. 화단 좌우에 있는 활엽수들을 초병처럼 배열한 것도 모자라 가지치기로 터널식 길을 만들었다. 도무지 ‘자연스러움’과는 거리가 먼 정원의 모습이다.

거대한 바로크식 정원을 내려다본다. 베르사이유 정원이 그토록 부러웠을까. 기하학적 질서를 갖춘 정원수들이 카펫처럼 깔려있다. 그것은 이미 그림이지 자연이 아니다. 기가 질릴 만큼 거대한 규모와 정교한 패턴의 무늬에 소름이 돋는 것은 10여분의 감동으로 끝난다. 곧 무미건조하고 지루해진다. 인위적 질서가 주는 감성의 한계가 아닌가. 거기에는 시시각각 변화하는 자연의 생명력이 없기 때문이다. 자연의 아름다움마저 입맛대로 지배하려 했던 절대왕권의 지배욕이 반영된다. 그리고 그 절대왕권은 자연의 순리처럼 비극적 종말을 맞았다.
비엔나의 궁전들은 18세기 전제군주시대의 황혼기에 절대군주들의 영화가 황혼 빛처럼 마지막 기운을 내뿜는 모습이기도 하다. 그들은 황금으로 치장된 방에서 호사스런 무도회를 열고, 황금의자에 앉아 황금 샹들리에 불빛에 식사를 하고, 황금마차를 타고 산책을 즐겼으리라. 신데렐라의 황금마차처럼 시간이 지나면 주인이 바뀌거나 호박으로 변할 것이라는 순리를 몰랐을까. 그들의 사치와 허영이 백성들의 고통과 눈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정녕 몰랐을까. 강영환 울산대학교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