긁어 부스럼만 일으키는 정책이 된듯
워라벨·웰빙은 개인이 균형 잡을 일

보통사람은 옥을 가진 것 만으로 죄가 되는가. 2700년 전의 물음이다. 열심히 노력해서 집 한 칸 마련한 것이 잘못인가. 더 노력해서 두 채 가진 것은 더 잘못인가. 얼마 전 개정돼 시행된 임대차법 여파로 전월세 값이 폭등하고 있다. 부동산 정책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지 못한 탓으로 시원한 대안을 낼 수는 없지만 주변의 예를 들어보자. 우선 A는 단칸방에서 신혼을 시작해 온갖 형태의 주택임대를 다 거치는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1988년 아파트를 분양받아 30여년을 살았다. 커가는 자녀들 학비 대느라 집을 넓혀가는 재미는 언감생심이었다. 공부 뒷바라지가 끝날 무렵 은퇴한 그는 그 집을 세놓고, 그 돈으로 외곽의 새 아파트를 얻어 살고 있다. 살던 집은 교통도 좋고 학군도 그만하였지만 오래된 아파트라 냉난방 효율도 떨어지고 주차도 불편하였기 때문이다. 이사한 집은 학군도 교통도 상대적으로 뒤처지지만 새 아파트라 주거환경은 훨씬 나아 만족하고 있었는데 집주인이 들어와 살겠다고 재계약을 하지 않겠단다. 다른 곳으로 옮기자니 오른 전세비를 마련할 방법도 없고, 세놓은 자신의 집은 5% 보다 더 올릴 수도 없어 다시 자가로 돌아가야 할 처지이다. B는 A와 같은 연배인데 연중무휴 설렁탕집 가마솥처럼 펄펄 끓는 삶을 살아온 탓에 아파트 2채를 가졌다. 당연히 한 채는 세를 주고 있었는데 B가 이 기회를 놓칠 리가 없다. 두 집을 번갈아가며 2년씩 살면 주변시세에 맞춰 전세보증금을 현실화할 수 있다고 한다.
A와 B가 불법을 저지른 것도 아닌데 그 집에 살던 젊은 세입자들만 날벼락을 맞게되는 것이다. 큰 액수로 오른 전세금을 마련하지 못하면 그 차액만큼 월세로 부담하여야 한다. 그렇다면 임대차법 개정은 결국 누구를 위한 것이었는가? 로마의 정치가 키케로는 ‘가장 완벽한 법은 가장 완벽한 불의이다(Summum ius, summa iniuria)’라고 했다. 최저임금은 또 어떠한가. 2017년 6470원이던 것이 2018년 7530원(16.4%)으로 2019년엔 8350원(10.9%)으로 급격히 올랐고 그 충격은 영세소상공인들이 가장 크게 받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 여파가 심각해지자 결국 2020년에는 우여곡절 끝에 8590원(2.9%)으로 2021년에도 2%내에서 인상될 것으로 예측된다. 어차피 가야할 길이라면 차분한 호흡으로 해마다 500원씩 올렸다면 결과는 같아도 충격은 훨씬 덜하지 않았을까. 이런 맥락으로 주52시간 근무제 전면시행도 입법취지와 다른 부작용들이 충분히 예상되고 있으니 그 템포를 조절해야 할 것이다. 워라벨이니 웰빙은 개개인이 알아서 계획하고 균형을 잡는 것이지 어디 국가가 나서서 해줄 일이던가. 앞서 예를 들었던 60대의 A와 B는 일년 365일 하루 24시간이 유일한 자원이었다. A는 낮에는 국내 거래선과 밤에는 해외 거래처와 끝없이 교신하며 일했고, B는 열악했던 근로환경의 중동으로 세 번이나 자원해 다녀온 결과 지금은 웰빙을 즐기며 살고 있다. 그야말로 ‘워(일)’를 앞세운 젊은 날 덕분에 노후의 ‘라(여유)’를 즐길 수 있는 것이리라.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어야한다는 명제는 긴 인류역사에서 사라진 적이 없다. 그런데 세상을 바꾸려는 사람들과 그대로 유지하려는 사람들을 진보와 보수로 구분한다. 그러나 변화를 바라지 않는다고 모두 현실에 만족하고 사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하루 8시간, 주 5일만 일해도 편하게 살 수 있는 사람들의 손에서 일자리 생태계가 망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대한민국의 불야성의 대표 두 도시 서울도 울산도 밤이 점점 어두워져 가고 있다. 한밤중에도 주말에도 원하기만 하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었던 그 도시들이 활력을 잃어가고 있다는 반증 아니겠는가.
누군가의 ‘가장 점잖은 표현’이 최근 화제였다. 선의로 포장된 ‘임대차법’이나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그리고 ‘주52시간 근무 시행’등은 ‘긁어 부스럼’이 가장 점잖은 표현일까. 교각살우(矯角殺牛)는 잔인하고, 영어로 쓰면 worse by cure 정도 일 터, 유식한 미국친구가 한 단어로 알려줘 외우게 된 ‘iatrogenic’, 필자가 아는 가장 어려운 단어이다.
박정환 재경울산향우회 사무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