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물끼야 처정청 헐어놓고/ 쥔네양반은 어디로갔노/ 문어야대전복 손에들고/ 첩의방으로 놀러갔데이.(모심기를 시작할 때)
새별겉은 저밥고래/ 반달둥실 떠나온다/ 지가무슨 반달이고/ 초승달이 반달이지.(점심참을 기다리며)
지난 1990년 울산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는 <울산울주지방 민요자료집>을 편찬한 바 있다. 이 자료집에 울산의 많은 모심기 노래가 수록돼 있다. ‘물끼야 처정청’은 모심기를 처음 시작할 때 부르는 노래로, 영남 지방에서 가장 널리 불리는 노래 가운데 하나다. ‘새별겉은 저밥고래’는 멀리 밥 고리를 이고 오는 모습을 보면서 밥 고리를 ‘샛별’로, 밥 고리 인 처녀를 ‘반달’로 표현했다. 두 노래 모두 해학적인 요소가 풍부하고 표현도 문학성이 있다.
모내기가 진행되는 한쪽에서는 보리타작이 시작된다. 芒(망)자는 보리나 벼 따위의 까끄라기가 있는 곡식을 뜻하는데, 우리 속담에 ‘보리는 망종 전에 베라’는 말이 있다. ‘보리타작 할 때는 죽은 송장도 일어나 거든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바쁜 철이다.
사월 초파일 뻐꾹새 새로 울어/ 물든 청보리/ 깎인 수정(水晶)같이 마른 네 몸에/ 오슬한 비취의 그리메를 드리우더니// 어느만큼 갔느냐, 굶주리어 간 아이.// 오월 단오(端午)는/ 네 발바닥 빛깔로 보리는 익어/ 우리 가슴마다 그 까슬한 가시라기를 비비는데….// 뻐꾹새 소리도 고추장 다 되어/ 창자에 배는데…./ 문드러진 손톱 발톱 끝까지/ 얼얼히 배는데…. ‘보릿고개’ 전문 (서정주)
보릿고개는 구슬픈 뻐꾸기 울음소리와 함께 온다. 무논에는 개구리가 와글대고 보리밭에는 아직 수확이 이뤄지지 않은 때. 굶주린 아이는 저승길을 수정같은 메마른 몸으로 혼자서 갔다. 누런 빛의 보리 까끄라기가 가슴을 비벼댄다. 뻐꾸기 소리만 들어도 온 속이 고추 먹은 것처럼 아려오는데…. 황금찬 시인은 ‘보릿고개’를 ‘안 넘을 수 없는 운명의 해발 구천 미터’라고 했다. 이재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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