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때 금속활자·물시계 등 ‘세상밖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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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때 금속활자·물시계 등 ‘세상밖으로’
  • 홍영진 기자
  • 승인 2021.06.30 00: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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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인사동 유적에서 매우 희귀한 조선 전기 금속활자뿐만 아니라 다양한 유물들이 한꺼번에 출토됐다고 문화재청이 29일 밝혔다. 사진은 금속활자와 ‘주전’으로 추정되는 동제품, 총통. 연합뉴스
▲ 서울 인사동 유적에서 매우 희귀한 조선 전기 금속활자뿐만 아니라 다양한 유물들이 한꺼번에 출토됐다고 문화재청이 29일 밝혔다. 사진은 금속활자와 ‘주전’으로 추정되는 동제품, 총통. 연합뉴스
▲ 서울 인사동 유적에서 매우 희귀한 조선 전기 금속활자뿐만 아니라 다양한 유물들이 한꺼번에 출토됐다고 문화재청이 29일 밝혔다. 사진은 금속활자와 ‘주전’으로 추정되는 동제품, 총통. 연합뉴스
옛 한양 중심부에서 조선 초기 세종시대 해시계와 물시계 등 금속부품과 한글활자 등이 무더기로 출토됐다. 과학과 문화로 태평성대를 이룬 그 시대의 빗장이 다시 풀릴 지 국내는 물론 세계역사학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문화재청과 (재)수도문물연구원은 ‘서울 공평구역 제15·16지구 도시환경정비사업부지 내 유적’(서울특별시 종로구 인사동 79번지)을 발굴조사하던 중 △조선 전기에 제작된 금속활자 1600여 점 △세종~중종 때 제작된 물시계의 주전(籌箭) △세종 때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천문시계 일성정시의(日星定時儀) 1점 △중종~선조 때 만들어진 총통(銃筒)류 8점과 동종(銅鐘) 1점 등의 금속 유물이 한꺼번에 발견됐다고 29일 밝혔다.

가장 관심을 끈 건 도기항아리에 담긴 채 발견된 금속활자다. 한자 1000여 점과 한글 600여 점이 나왔다. 무엇보다 구텐베르크가 1440년대 서양 최초로 금속활자와 인쇄술을 개발할 무렵 혹은 그보다 이른 시기에 제작한 것으로 판단되는 활자 유물이 포함됐다. 조선금속활자 중 한자 활자는 제작한 해의 육십갑자를 이름으로 붙이는데 1434년 갑인자(甲寅字), 1455년 을해자(乙亥字), 1465년 을유자(乙酉字)가 확인됐다.

‘훈민정음 창제 당시의 표기가 반영된 한글 금속활자’도 집중조명됐다. 훈민정음 창제 시기인 15세기에 한정돼 사용되던 동국정운식 표기법을 쓴 활자가 실물로 확인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가장 이른 시기의 한글 금속활자로 추정된다. 이번 발굴은 조선전기 다종다양한 활자가 일괄로 출토된 첫 사례로 한글 관련 유물은 물론이고 한국문화재발굴사에서 차지하는 의미가 크다.

도기항아리에서는 세종~중종 때 제작된 자동 물시계의 주전으로 보이는 동제품도 나왔다. 기록으로만 전해오던 조선 시대 물시계 주전의 실체가 확인된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유물은 동판(銅板)과 구슬방출기구로 구분되며 모두 잘게 잘려 진 상태였다. 동판에는 여러 개의 원형 구멍과 ‘일전(一箭)’이라는 글자가 새겨졌다. 구슬방출기구는 원통형 동제품의 양쪽에 각각 걸쇠와 은행잎 형태의 갈고리가 결합되어 있다. 이러한 형태는 <세종실록>에서 작은 구슬을 저장했다 방출하여 자동물시계의 시보(時報)장치를 작동시키는 장치인 주전의 기록과 일치한다. 이날 확인된 주전은 1438년(세종 20년) 제작된 흠경각 옥루이거나 1536년(중종 31년) 창덕궁에 새로 설치한 보루각 자격루로 추정된다.

항아리 옆에서는 주·야간 천문시계인 일성정시의도 있었다. 낮에는 해시계로 사용되고, 해를 볼 수 없는 밤에는 별자리를 이용해 시간을 가늠한 도구다. <세종실록>에는 1437년(세종 19년) 4개의 일성정시의를 만든 것으로 기록돼 있다. 출토된 유물은 일성정시의의 주요 부품들로 시계 바퀴 윗면의 세 고리로 보인다. 이 역시 기록으로만 전해오던 세종대 과학기술의 실체를 확인한 것으로 의미가 크다.

소형화기인 총통은 승자총통 1점, 소승자총통 7점으로 총 8점이다. 모두 완형의 총통을 고의적으로 절단한 후 묻은 것으로 보인다. 복원된 크기는 대략 50~60cm 크기이다. 총통에는 명문이 새겨져 있는데 계미(癸未)년 승자총통(1583년)과 만력(萬曆) 무자(戊子)년 소승자총통(1588년)임을 알려준다. 희손(希孫), 말동(末叱同)이라는 장인(제작자)의 이름도 기록됐다. 장인 희손은 현재 보물로 지정된 차승자총통(서울대박물관 소장)의 명문에서도 확인된다. 만력 무자년이 새겨진 승자총통들은 명량 해역에서도 확인된 바 있다.

동종은 일성정시의의 아랫부분에서 여러 점의 작은 파편으로 출토됐다. 조선 15세기에 제작된 왕실발원 동종의 양식을 보여주며 명문을 통해 1535년(중종 30년) 4월에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유물이 나온 지역은 조선 한양도성의 중심부였다. 조선 전기까지는 한성부 중부(中部) 견평방(궁궐 관련 시설과 상업시설 등이 복합적으로 있는 도성 내 경제문화중심지)에 속했다. 주변에는 의금부(수사기관·오늘날의 국가정보원 혹은 대한민국경찰청)와 전의감(의료행정·의학교육 관장하는 국립기관)을 비롯해 왕실의 궁가들이 자리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모든 유물은 1588년 이후 동시에 묻혔다가 다시 활용되지 않은 것 같다. 보존처리와 추가연구를 거치면 조선 전기 인쇄술과 과학기술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매우 중요한 자료”라고 말했다.

홍영진기자 thinpizza@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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