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남준’(1932~2006)이 울산에 온다. 이름 하나만으로 이미 한 시대의 아이콘이 돼버린 그의 작품이 올 연말 개관하는 울산시립미술관의 제1·2·3호 미술작품으로 울산에 영구 소장된다. 시민들이 국내외 다른 도시에 가지 않고도, 현대미술의 대세가 돼 버린 ‘미디어아트’의 창시자 백남준의 작품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울산시는 27일 브리핑에서 울산시립미술관의 대표 소장품으로 세계적 거장 백남준의 작품 3점을 소장하게 됐다고 밝혔다. 백남준의 색깔이 여실히 드러나면서도 ‘울산의 정체성’을 상징할 수 있는 작품을 엄선해 ‘거북’(1993), ‘시스틴 채플’(1993), ‘케이지의 숲, 숲의 계시’(1992~1994) 3점의 작품을 소장키로 했다고 덧붙였다.

1호 소장품 ‘거북’(1993)은 166대의 텔레비전을 거북의 형상으로 만든 대형 비디오 조각 작품(10m×6m×1.5m)으로 1993년 독일에서 제작되었다. 자연과 기술, 동양정신과 서양문물의 결합이라는 백남준 특유의 미학을 보여주는 대표작이다. ‘거북’은 한반도의 유구한 역사성을 잘 반영한다.
울산시는 이날 이 작품이 수천년 전 새겨진 ‘반구대 암각화’의 도시 울산에 안착하게 된 것 자체로 특별한 상징과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반구(盤龜)대’라는 명칭은 암각화 주변의 지형이 예부터 거북이가 엎드려 있는 모습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졌으며, 반구대의 상단부에는 다산과 풍요를 상징하는 거북의 모습도 새겨져 있다. 선사시대 유적인 반구대 암각화를 품고 대한민국의 산업화를 성공적으로 이끌었으며 미래 신산업으로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선도하는 ‘울산의 정체성’을 잘 상징하는 작품이 ‘거북’이라고 판단해 소장을 결정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울산의 역사와 문화를 상징하는 작품이 될 ‘거북’은 울산시 동구 대왕암공원의 옛 울산교육연수원 공간에 별도 설치될 예정이다. 송철호 울산시장은 “울산시 원도심에 개관하는 울산시립미술관 본관과 별도로 대왕암공원의 빈 건물을 문화예술적으로 활용해 보자는 시도에서 미술관 제1호 소장품인 ‘거북’을 그 곳에서 일정기간 전시하기로 했다. 작품 크기를 고려할 때 본관 전시 보다는 별도 공간이 필요하다는 내부 판단도 고려됐다. 옛 울산교육연수원을 비롯해 대왕암공원 일원을 미술전시공간으로 전환하는 문제는 아직 유보적이며, ‘거북’ 전시를 지켜본 후 확정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2호 소장품 ‘시스틴 채플’(1993)은 로마 바티칸시티의 예배당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공간활용 미디어 아트다. 예배당 천장에 그려진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와 견주어 백남준의 이 작품은 ‘20세기의 천지창조’로 불릴 정도로 미술사적으로 가치가 크다. 백남준은 지난 1993년 베니스 비엔날레의 독일관에서 이 작품을 소개했고, 그 해 베니스 비엔날레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또한 3년 전인 2019년 영국 런던 테이트모던 미술관에서 열린 ‘백남준 회고전’에서도 주목받았다. 이후 네덜란드 슈테델릭 미술관 전시를 마치고 현재는 미국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에서 전시되고 있다. 오는 12월에는 싱가포르 국립미술관으로 자리를 옮겨 백남준 예술을 알리게 된다.
3호 소장품 ‘케이지의 숲, 숲의 계시’(1992~1994)는 비디오아트에 자연과 생태라는 주제를 접목했다. 백남준 작가는 전위음악가 존 케이지(John Cage, 1912~1992)와 예술적으로 큰 영향을 주고받았다. 작품 제목에 그의 이름이 붙은만큼 케이지에 대한 경외심을 담은 것으로 유명하다. ‘케이지’와 같은 발음의 ‘새장’을 활용해 자신의 작품세계를 구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진석 울산시립미술관 관장은 “인간과 자연, 기술과 생태의 결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며 ‘생태 정원도시 울산’의 이미지와도 잘 부합하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울산시립미술관은 ‘미디어아트 중심의 미래형 미술관’을 지향하고 있다. 오는 11월 완공을 목표로 건립 공사가 진행 중이며, 현재 공정률 80%를 보이고 있다.
홍영진기자 thinpizza@ks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