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농협이 올해로 창립 60년을 맞았다. 사람으로 치면 회갑(回甲)을 맞은 셈이다. 회갑에는 세상을 한갑자(甲子) 돌며 희로애락을 걍험하고 새 출발을 준비한다는 뜻이 담겨있다.
그래서 농협 60년에는 우리 농업과 농업인의 애환이 녹아들어가 있다. 농협이 지금처럼 농민이 생산한 농산물을 팔아주고, 영농생활자금을 맡고 빌려주는 온전한 ‘종합농협’의 틀을 갖춘 것은 1961년이다. 설립 후 지난 60년은 종합농협이 맨땅에서 농민·임직원의 피땀으로 일궈온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백만 농민이 협동정신 하나로 똘똘 뭉쳐 스스로 돕고(자조), 스스로 일어서려는(자립) 노력이 농협 60년의 여정 곳곳에 묻어난다.
농협은 그동안 시대를 앞서 간 사업을 통해 농업인의 실익과 권익증진을 위한 개척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왔다. 대표적인 것이 농협 ‘하나로마트’의 뿌리인 ‘연쇄점’ 사업이다. 1969년 말 농협중앙회가 생필품을 일괄 구입, 연쇄점을 통해 공급한다는 구상을 내놓는다. 1970년 경기도 이천 장호원농협의 1호 연쇄점을 시작으로 그해만 255개 연쇄점이 문을 연다. 당시 연쇄점 소매가는 시중가보다 평균 15% 낮아 연쇄점 사업은 농촌 소비생활의 안전망 역할을 톡톡히 했다.
농협은 조합원 상호간에 자금을 융통하는 ‘상호금융’을 통해 농가를 괴롭히던 농촌 고리채의 악순환도 끊어냈다. 상호금융 도입 이전에 농민들은 주로 농촌대금업자나 계 등의 사채를 통해 자금을 융통했다.
당시 사채금리는 연 60% 수준으로 연 3.5~18.5%였던 금융기관 금리를 훌쩍 넘었다. 이런 상황을 해결하고자 농협은 1969년 상호금융사업을 도입하였으며, 그 결과 1971년 60%에 달하던 농가의 사채의존도가 1990년 13.9%로 줄었고, 농촌 사채금리도 54%에서 21%로 낮아져 농촌의 열악한 금융환경을 대폭 개선할 수 있었다.
이외에도 보험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던 시기에 미래에 예측할 수 없는 재난이나 사고의 위험에 대비할 수 있는 제도로 생명공제와 손해공제 사업을 도입하였으며, 1970년대 한국 사회를 특징짓는 중요한 사업인 새마을운동의 추진체로서 주연보다 빛나는 조연으로 농협은 농촌새마을운동에 물적, 인적 자원을 쏟아 부었다. 1980년대 말, 농산물 수입개방 문제가 사회문제로 대두될 때 농협은 우리농업 지키기의 대명사로 자리 잡은 ‘신토불이운동’의 주체로서 ‘우리체질에는 우리 농산물이 제일’임을 부르짖었다.
또한 국민의 건강을 지키고 품질 좋은 농산물을 공급하기 위해 우수농산물 생산운동을 전개했고 이러한 노력의 결과, 농협은 국민들로부터 두터운 신뢰를 바탕으로 우리 농업의 지속가능한 성장 발전을 이끌어 올 수 있었다.
미국 S&P 500 기업의 평균 수명은 15년이라고 한다. 이를 증명하듯 세계 시장을 주도하며 영원히 생존할 것 같던 코닥, 제록스 등 전설적 기업들도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한순간에 무너졌다. 국내에서도 두산, 동화약품과 같은 100년 이상의 장수기업을 기대하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현실이 되었다.
“대들보에 바퀴를 달아라.”
1758년에 설립된 일본의 대표적 장수기업 중 하나인 ‘이온’이 아시아 대표 유통기업으로 성장한 비결을 두고 오카다 다쿠야 명예회장이 들려주는 비결이다. 집안의 기둥이라 절대 흔들려선 안 될 것 같은 대들보마저도 기업의 생존을 위해서는 과감히 옮길 수
있는 유연성을 갖추라는 뜻이다. 농협 역시 국민과 함께하는 100년 기업으로 거듭나기 위해 변화·혁신의 길을 가고 있다. 농협은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어려움에 처한 국민들을 위해 공적마스크 공급 및 농축산물꾸러미 전달, 각종 금융 지원 등에 힘쓰고 있다. 또한 농축산물 유통 대변화와 농업 분야 디지털 혁신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빈번한 기상재해와 가축질병으로 이중고를 겪고 있는 농업인들을 위해 농촌일손돕기 및 구호 성금 모금, 재해자금 추가 편성 등에도 애쓰고 있다.
농협은 지난 60년의 성장에 안주하지 않고 농업인과 국민 모두와 함께 하는 100년 농협으로 도약하기 위해 앞으로도 변화의 수레바퀴를 계속 돌릴 것이다.
최정훈 농협중앙회 울산지역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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