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생님! 개학 언제 해요? 친구들 정말 보고 싶어요.” “나 안 보고 싶었어요?” “선생님! 학교에 왜 왔어요? 언제 가요?”
담임선생님을 우연히 발견하고 멀리서 뛰어와 안긴 아이는 질문 보따리를 푼다. 평소 수업 때도 궁금증이 많은 아이의 질문은 방학 중 만남에도 이어진다. 마주 보며 웃음이 함께 터진다. 무척 반갑다. 반가운 마음이 선생님 얼굴에도 나타나는지 아이도 상기된 얼굴로 활짝 웃는다. 이심전심인가 보다. 매일 방과 후 수업을 다니며 친구들과 마주치지만, 아이 마음에는 반 친구들 모두 모일 개학이 기다려지는 것 같다. ‘아~ 나는 잠시 비워 두고 있었구나, 2학년 우리 꿈 씨앗반 아이들!’ 선생님도 아이들이 보고 싶은 마음으로 설레지만, 잠시 비워 두었던 내 마음을 살피며 미안함으로 개학을 앞둔다.
초등학교 시절 방학을 떠올리면 반드시 기억하는 책이 있다. 방학하는 날이면 담임선생님은 꼭 이 책을 우리에게 “선물이다!” 하시며 주셨다. 여름방학 1권, 겨울방학 1권, 방학 동안 빼곡하게 채워야 할 ‘탐구생활’이다. 요즘은 ‘슬기로운 ○○생활’ ‘○○의 탐구생활’ 등 TV 프로그램이나 학습 만화책 등에 붙는 제목이지만, 1980~90년대 초등학생들에게 ‘탐구생활’은 방학의 끝에 밤을 꼬박 새우며 온 가족을 동원해서라도 해가야 할 방학 과제였다. ‘탐구생활’은 초등학생들이 알아야 할 모든 지식을 한 권에 다 담아놓은 듯한 책이다.
‘방학은 즐겁게’라는 책 서두와는 너무나 다르게 ‘탐구생활’의 내용은 녹녹지 않고 즐겁지도 않다. 종이컵 전화기로 대화하기, 파리 연구하기, 비눗물 실험하기, 착시현상 관찰하기, 지시약 만들기 등 실험도 하고, 미술 만들기도 하고, 탐구 문제에 관한 생각과 결과물을 붙여야 하는 난생처음 보는 문제들로 인생 최초의 시련을 겪는다. 0.5㎝ 두께의 새 책은 방학 기간 꾸준한 활동을 끝내면 10㎝ 두께로 부풀어 오른다. 방학이 되어 계획적으로 라디오 방송을 들으며 시작했더라도 어지간한 끈기가 없으면 개학 전 방학 숙제 검사를 받기 위해 한방에 몰아서 하기는 기본이다. 온 가족이 협동의 미덕을 살려 ‘탐구생활’을 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방학이면 기다려지는 활동도 기억에 선명하다. 선생님들이 대장님이 되어 함께하는 여름 캠프, 야영 활동이다. 도시학교 단위로 시골 학교에서 야영할 때도 있고, 지역 야영대회나 잼버리에 참가하기도 한다. 야영을 통한 스카우트 활동은 텐트를 치는 것부터 알코올버너 사용하기, 매듭법, 오리엔티어링, 잠행, 담력 훈련 등 다양하다. 선생님들의 준비와 노력 없이는 얻을 수 없는 값진 경험이다. 방학의 소중한 추억을 하나하나 만들어 주신 선배 선생님들의 노력에 교사인 나 자신을 되돌아본다. 개학 날, 잠시 비워 둔 마음을 채워 아이들이 기억하는 여름방학을 함께 나누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임수현 중남초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