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네르바는 고대 로마 신화에 나오는 지혜의 여신인데, 황혼 무렵 산책을 다닐 때마다 부엉이를 데리고 다녔다고 한다. 프리드리히 헤겔이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 녘에 날아오른다”라는 말을 쓴 이후로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철학적 의미를 두는 상징성을 갖는 동시에, 이른바 ‘거리두기’의 지혜를 뜻하고 있다. 부엉이는 야행성이며 서양에서는 지혜의 상징이다.
말하자면 지혜의 상징인 부엉이가 해가 져야 활동하듯이 지혜도 모든 일이 끝나는 저녁 무렵에야 피어난다는 뜻이다. 헤겔의 법철학에서 앞날은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이루어진 역사적 조건이 지나간 후에야 그 의미가 분명해진다는 뜻이겠다. 이를 인간에게 대입하면 황혼 녘이 되어야 인간도 비로소 지혜로워진다는 의미일 것이다. 말하자면 아침부터 오후까지 부산히 활동하는 사람들을 그때 제대로 알기는 어렵고, 어수선함을 가라앉힌 무렵에서야 지혜로운 평가가 가능해진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같은 이유로 종종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오랜 시행착오 끝에 갖게 된 지혜의 가치를 역설할 때 쓰이곤 한다.
시간적 거리두기는 루쉰(魯迅)의 <조화석습(朝花夕拾)>을 우리말로 옮긴 <아침 꽃을 저녁에 줍다>라는 책에 잘 드러나 있다. 아침에 피었다가 떨어진 꽃잎을 곧바로 쓸어내지 않고 해가 진 뒤에야 거둔다는 뜻일 거다. <조화석습>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명망이 있는 학자와 이야기할 때는 상대방의 말 가운데 군데군데 이해가 되지 않는 척해야 한다. 너무 모르면 업신여기게 되고 너무 잘 알면 미워한다. 군데군데 모르는 정도가 서로에게 가장 적합하다.” 우리가 여유 없이 대화할 때 흔히 겪는 일이다. 때때로 일어나는 상황에 즉각 대응하는 것보다는 적절한 거리를 두고, 그 간극에서의 갈등과 여지와 성찰의 여유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이겠다. 찬란한 아침에 떨어진 꽃의 향기와 색깔과 정취를 해가 진 다음에 취하고 거두는 여유 말이다.
한편으로는 한비자(韓非子)의 ‘세림하(說林下)’ 편에는 전국시대의 유명한 조각가인 환혁이라는 사람이 했다는 다음과 같은 말을 인용하여 일을 행함에 있어서 여유와 여지의 중요성을 얘기했다. “인형을 조각하는 경우에 코는 되도록 크게, 눈은 되도록 작게 만드는 것이 좋다. 큰 코는 깎아서 작게 할 수 있고, 작은 눈은 크게 보이도록 수정할 수 있지만, 처음부터 작게 만든 코는 크게 수정할 수 없고, 처음부터 크게 만든 눈은 작게 보이도록 수정할 수 없다.” 여유와 여지를 남겨두면 후에 보완할 수 있으며 돌이킬 수 있는, 실패를 만회할 기회를 남겨두는 것이다. 퇴로를 차단하여 회복의 여지를 없애는 배수진(背水陣)은 함부로 치는 것이 아니라는 측면을 얘기한 것이리라.
지혜와 이성적 판단이 아닌 섣부른 예단과 감성적 여론몰이로 빚어진 돌이킬 수 없었던 사회적 참사가 부쩍 떠오르는 요즘이다. 정치의 계절이 다가오니 더욱 그러하다. 동서고금을 통하여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지금 우리는 유달리 심하지 않나 싶다. 첨예하게 갈라서는 정치적 진영 구도와 난무하는 마타도어는 대중들에게 지혜를 담아 차분한 여유를 갖는 판단의 여지를 빼앗아 가곤 한다.
참으로 많은 꽃이 피고 지고 하는 나날들이다. 아침 꽃을 저녁에 줍는 마음으로 잠시 침묵하고 ‘거리두기’가 있었으면 하는 요즘이다. 사실이나 현상이 끝난 뒤, 감성의 광풍이 휘몰아치고 나간, 이성의 판단이 가능해진 시간을 의미하는 황혼 녘 미네르바의 부엉이가 날아오를 때까지 말이다.
남호수 동서대학교 교학부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