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떤 경우에는 노력이 아닌 위치가 많은 것을 결정한다. 은행 지점장을 했던 분께 들었던 말이다. 울산 경제가 좋았던 시절에 울산에서 지점장을 하면 아침에 출근하고 아무 것도 안하고 저녁에 퇴근만 해도 모든 일이 해결됐다고 한다. 지점에서 달성해야 하는 대출목표도 알아서 채워지고, 신용카드 발급목표도 저절로 달성됐다고 한다. 하지만 경남의 시골 지점에 가면 그 어떤 노력을 해도 안 됐다고 한다.
서울과 지방의 격차는 점점 더 벌어지고 있다. 이제는 지방소멸을 걱정해야 한다. 중앙정부가 아무 것도 안 한 것은 아니었다. 여러 가지 정책을 펼쳤지만 결과적으로는 거의 실패했다. 격차는 더 커졌고, 젊은이들은 서울로 계속 몰렸다. 정책실행자들의 입장에서는 ‘나는 열심히 했지만 실패했다’는 정도로 스스로를 면책하는 지도 모른다.
청년들에게 혜택을 주는 방식에 가까운 지방의 청년정책은 문제가 있다. 혜택만 받고 서울로 가버리는 청년에 대한 지원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에 대한 비판도 크다. 남는 청년들도 있었지만, 떠나는 청년이 더 많았다. 지방정부가 주는 혜택은 서울이라는 위치적 장점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었다. 그렇기에 계속 남아있을 청년만을 대상으로 해야 한다.
서울을 이기는 것은 어렵다. 서울을 이길 생각을 진지하게 하지 않았다. 서울은 예산도 많고, 인력도 많다. 어쩌면 아무 것도 안 해도 성과가 나온다. 지방에서는 열심히 해도 성과가 잘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지방공무원의 경우에는 너무 열심히 해서 문제가 되기도 한다. 서울과 지방의 격차해소를 위해 지급하는 보조금이 줄어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지방에 할당되어 내려오는 손쉬운 예산을 받아 잘 처리하는 일만 하면 된다. 서울과의 격차는 계속 벌어지지만, 내 잘못은 아니니. 그 정도면 충분하다.
축구 이야기를 잠시 해 보자. 우리나라 국가대표팀 감독을 했던 본프레레 감독이 한 말이다. “우리 수비라인에서 3골을 먹으면 공격진이 4골을 넣으면 됩니다”라는 말이다. 당연한 말이다. 하지만 동시에 비웃음을 많이 사기도 했다. 사실 비웃기 위해 많이 사용되어 유명해진 측면이 있다. 하지만 지방소멸과 관련해서 답을 찾는다면 그것이 정석이다.
축구로 치면 지방은 서울을 상대로 3대0으로 지는 것보다 2대0이나 1대0으로 지는 것을 현실적인 목표로 했다. 인구로 치면 서울에 300명 빼앗길 것을 100명만 빼앗기면 성공이다. 문제는 200명 적게 빼앗긴 것이긴 하지만 인구유출은 계속 누적된다는 것이다. 3골을 먹으면 4골을 넣어야 하는데, 4골을 넣기가 힘든 게 지방의 현실이다. 결국 지방에서 중요한 것은 수비가 아니라 공격이다.
지방의 청년정책은 청년을 지방에 눌러 앉히는 것에 방점이 찍혀 있는 측면이 있다. 지방의 예산으로 혜택을 받은 청년이 서울로 떠나면 안 되는 것이다. 수비 위주의 전략이다. 하지만 공격은 목표가 다르다. 청년을 눌러 앉히는 것이 아니라 데리고 오는 것이 목표다. 서울로 청년들을 빼앗기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서울로 간 청년들이 다 서울에서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실패하는 청년들도 많다. 그렇다면 성공확률을 최대한 높인 뒤에 서울로 올라가고 싶은 청년들도 있을 것이다. 실패하고 내려오는 청년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 청년들도 지방 청년정책을 통해 적극 지원해 주면 생각과는 다르게 공격적 정책이 된다.
행정적으로는 전혀 말이 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애써 지원했는데 서울로 가면 손해다. 우리가 서울을 위한 인큐베이터냐고 물을 것이다. 하지만 인큐베이터가 되지 않기 위해 청년들을 눌러 앉히려고 최선을 다했지만 실패했다. 그것도 오랫동안 계속. 그쯤 되면 안 되는 방법이라는 것을 알 법도 한데, 지방은 재정자주도가 낮아 어렵다는 말만 반복한다.
‘인큐베이팅’은 ‘눌러 앉히기’보다는 공격적 요소가 포함된 전략이다. 인큐베이팅을 정말 잘 하면 청년들이 인큐베이팅을 받기 위해 모여든다. 인큐베이팅을 한 청년 300명을 서울로 빼앗기지만, 인큐베이팅을 잘 해서 400명을 더 모아오면 되는 것이다. 서울에서 실패한 청년들이 지방에 가면 인큐베이팅을 잘 해준다는 말을 듣고 내려오게 해도 되고, 인큐베이팅을 잘 못하는 다른 지방에서 청년들이 오도록 해도 된다. 청년들이 들락날락 하게 되면 그 지역에는 활기가 돈다. 그 활기가 변화를 가져온다. 미국 중서부에 있는 한 대학의 경제학과는 그렇게 성공했다. 젊은 경제학자들을 잘 키워냈고, 또 더 좋은 명문 학교에 빼앗겼다. 하지만 그 대학을 거쳐, 더 좋은 대학으로 옮겨가는 것을 본 젊은 학자들이 계속 모여들었다.
우리 예산을 받은 청년들이 서울로 가면 안 된다는 생각은 칸막이 행정에서는 맞지만 동시에 근시안적이고 또 실패했다. 300명을 빼앗겨도 400명을 모아오는 목표를 세우고, 청년들이 자유롭게 들락날락 할 수 있게 해주고 서울과 잘 연계해 주면서 변화를 만들어야 한다. 들락날락이 많아지면 정주여건도 변한다. 서울이 가진 정주여건은 좋지만, 또 비싸다. 지방에 청년이 애착을 가지게 되는 정주여건 하나는 만들 여지가 있다.
지방이 가진 장점이 있다면 생존을 위한 경쟁이 치열한 서울에서는 누릴 수 없는 높은 자유도다. 높은 자유도를 선호하는 청년들에게 인큐베이팅을 잘 해주고, 서울과도 잘 연계해주자. 꿈꾸는 청년들은 항상 있다. 그들의 꿈을 칸막이 없이 지원해 주는 것이 지방의 공격 전술이 돼야 한다. 그 청년들이 떠난다고 아까워하지 말자. 돈 받았으니 지방에 눌러 앉으라고 하는 전략에는 답이 없다. 청년들이 속지도 않는다. 일본 후쿠오카의 청년창업센터는 외국인도 지원한다. 청년들의 미래에 행정이 칸막이를 쳐서는 안 된다.
유동우 울산대 경제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