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루해가 다 저문 저녁 강가로/ 산그늘을 따라서 걷다 보면은/ 해 저무는 물가에는 바람이 일고/ 물결들이 밀려오는 강기슭에는/ 구절초꽃 새하얀 구절초꽃이/ 물결보다 잔잔하게 피었습니다// 구절초꽃 피면은 가을 오고요/ 구절초꽃 지면은 가을 가는데// 하루해가 다 저문 저녁 강가에/ 산 너머 그 너머 검은 산 너머/ 서늘한 저녁달만 떠오릅니다// 구절초꽃 새하얀 구절초꽃에/ 달빛만 하얗게 모여듭니다/ 소쩍새만 서럽게 울어댑니다
‘구절초꽃’ 전문(김용택)
지난주 정읍 구절초(九節草) 공원(사진)에 다녀왔는데, 온 산 전체가 구절초꽃 천지였다. 하얀 꽃잎이 물결처럼 일렁거리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청아하고 단정하고 해맑은 모습이 가을과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구절초는 음력 9월9일에 꺾어 약으로 쓰는 풀이라 하여 구절초라 불렀다는 설이 있고, 또 한편으로는 마디가 9개가 될 정도로 컸을 때 꺾어야 약효가 좋다하여 구절초가 되었다는 설도 있다. 구절초는 항염증·진통 작용을 지녀 특히 두통 완화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구절초를 이용해 베개를 만들기도 한다. 구절초는 신이 어머니에게 내린 선물이라 하여 선모초(仙母草)라고도 불린다.
음력 9월9일은 중양절(重陽節)이다. 9는 양(陽)의 수이고, 양수 중에서도 가장 큰 숫자인 9가 겹쳐서 기운이 가장 좋은 날이다. 중양절에는 경치 좋은 높은 곳에 올라가 나쁜 기운을 떨쳐내고 국화주를 마시며 무병장수를 기원했다.

하늘의 별들은 왜 항상 외로워야 하는가/ 왜 서로 대화를 트지 않고/ 먼 지상만을 바라다보아야 하는가// 무리를 이루어도 별들은 항상 홀로다/ 늦가을 어스름 저녁답을 보아라/ 난만히 핀 한 떼의 구절초 꽃들은/ 푸른 초원에서만 뜨는 별// 그가 응시하는 것은 왜 항상/ 먼 산맥이어야 하는가
‘구절초’ 전문(오세영)
흔히들 가을을 들국화의 계절이라고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산천에 ‘들국화’라는 꽃은 없다. 감국, 산국, 구절초, 쑥부쟁이, 벌개미취 등이 있을 뿐. ‘쑥부쟁이와 구절초를 구별하지 못하는 너하고 이 들길 여태 걸어왔다니 나여, 나는 지금부터 너하고 절교다’ 안도현 시인의 ‘무식한 놈’이란 시다.
그러나 다시 생각하면 다 부질없는 짓이다. 가을과 들국화와 바람… 그 이상의 분별이 왜 필요할까. 이 가을에 불이(不二)의 법문을 되뇌인다.
이재명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