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티브 존슨은 저서 <원더랜드>를 통해 놀이가 바꿔온 세상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했다. 놀이와 쾌락을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며, 놀이 과정에서 나오는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학문과 산업에 긍정적인 영향을 줬다는 그의 주장에 동의한다. 그렇다면 인간은 어떤 환경에서 창의력을 제대로 발휘할까. 아이러니하게도 집중해서 일할 때가 아닌 재미있게 놀 때라고 한다. 놀면서 사람들은 다양한 놀이문화를 만들어낸다. 그 결과물은 장난감이나 기계가 될 수도 있고, 하나의 중요한 원리나 이론의 소재가 되기도 한다.
MIT 미디어연구소를 설립한 니콜라스 네그로폰테 교수는 2012년 에디오피아의 오지 마을에 태양광 충전 장비가 설치된 태블릿 PC 여러 세트를 준비해 방문했다. 봉인된 상자에 있는 테블릿 PC에는 기초학습 게임, 영화, 전자책 같은 프로그램들을 미리 설치해두었다. 네그로폰테 교수는 아이들에게 이 상자를 직접 전달했다. 이곳의 어린이들은 읽고 쓰는 법을 몰랐다. 더구나 이런 첨단기술을 접한 적도, 그 물건에 대해 알려줄 사람도 없었다. 하지만 4분이 안 돼서 한 아이가 상자를 열고 태블릿의 온오프 스위치를 찾아내 전원을 켰고, 5일 만에 어린이 한 명당 하루 평균 47개의 앱을 가지고 놀게 되었고, 5개월 만에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해킹했다. 네그로폰테 교수는 아이들의 본능적인 놀이 습관이 학습 능력과 창의력을 이끌어낸 점에 깊이 고무됐다.
우리는 이미 게임 세상에 살아가고 있다. 태어날 때부터 컴퓨터, 스마트폰을 접하면서 성장한 MZ세대들은 일상 그 자체가 하나의 게임이다. 13~24세에 해당하는 Z세대는 TV보다 주로 모바일을 이용해 동영상을 시청한다. 특히 구글의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의 이용률이 압도적으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Z세대 스마트폰 이용자 중 동영상 이용자 비중은 96%로 전 세대 중 가장 높았다.
앞선 기업일수록 게임에 투자한다. 나이키가 개인의 운동 내용을 기록하고 데이터를 공유하면 특정 지역의 러너랭킹을 매겨주고, 나아가 전 세계 사람들과 그룹을 이뤄 운동 챌린지를 하는 등 교류하는 일은 온라인 게임 안에서 사용자들이 오랫동안 해왔던 활동들이다. 닛산 자동차는 계기판에 나뭇잎 모양의 그래픽 게임 ‘리프, Leaf’를 삽입하여 운전자가 연비 절약 운전을 하면 나뭇잎이 초록색으로 바뀌고, 과속하거나 급제동을 걸면 나뭇잎이 갈색으로 변하거나 낙엽이 되어 떨어지게 하였다. 운전자의 습관을 교정하여 환경 지킴이가 된 듯한 만족감을 느끼게 하는 것 또한 게임적인 요소가 더해진 상품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는 각자의 아바타가 살아가는 또 다른 디지털 지구, 즉 메타버스의 세계에 이미 들어서 있다. 현실 세계와 여러 개의 메타버스를 동시에 살아가면서 멀티 페르소나(연극할 때 사용하는 ‘가면’을 뜻하는 라틴어로서 개인의 자아 또는 정체성을 의미하는데, 일명 ‘부캐’라고도 함)를 보여주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나를 대변하는 아바타가 또 다른 삶을 살아가는 디지털 지구인 메타버스는 가장 진화된 게임의 세계다.
게임의 기본 구조인 미션-피드백-리워드는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적용된다. 게임마다 피드백과 리워드 방식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인생이 하나의 스토리를 완성해 나가는 과정이라고 가정할 때, 사람들은 인생이란 여정에 무언가 새로운 목표를 정하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소통하고 성장하면서 성취감을 느낀다. 탐험-소통-성취의 과정에서 인간은 그 나름의 만족감을 얻게 된다. 그런데 사람들이 ‘원더랜드’와 메타버스를 찾아 상대적으로 부족한 성취욕구를 해소하고자 하는 것이 게임 인류의 존재 이유가 아닐까 싶다.
구자록 울산정보산업진흥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