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누구인가? ‘나’라는 사람은 절대적 가치를 가진 그 무엇인데 이것을 설명하려니 막연하고 ‘나’를 어떤 문장으로 정의하기에도 모호하다. 대부분 사람은 자신을 잘 안다고 생각하겠지만, 아직도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그치지 않고 철학이나 심리학에서 여전히 다루고 있는 것을 보면 잘 모르기 때문이다.
최근 주변 지인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각 사람의 내면에는 자신이 바라보는 ‘나’와 남들이 바라봐주길 원하는 ‘내’가 존재하고, 그 둘 사이에 벌어진 차이로 인해 갈등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사람을 뜻하는 영어 Person은 이 페르소나(Persona)라는 단어를 어원으로 두고 있다. per는 ‘~으로 부터’, sonare는 ‘소리를 내다’라는 두 단어의 합성어인 이 페르소나를 사람의 인격이라고 보고 그것을 person, 즉 사람이라고 했다. 페르소나의 사전적 의미가 여러가지 있는데 그중 가장 쉬운 표현은 ‘가면’ 정도일 것이다. 그 의미가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심리학 이론에 따르면 페르소나는 다른 사람에게 비치는 개인의 외적인 성격을 의미한다. 스위스의 심리학자 칼 구스타프 융은 ‘인간은 천 개쯤 되는 페르소나를 지니고 있다’며, 이는 곧 사람은 다중인격자라고 할 수 있다.
이 사실을 마냥 부정적인 의미로 해석할 순 없다. 우리 내면에 존재하는 수 천 개의 페르소나를 어떻게 잘 다루냐에 따라서 더 좋은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고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모든 사람은 두 개 이상의 역할을 가지고 사회를 살아간다. 아버지라는 역할의 ‘나’와 아들이라는 역할을 가진 ‘나’는 동일 인물이지만 역할이 같을 수 없으며 같이 행동해서도 안 된다. 이러한 갈등 속에 ‘나’라는 정체성은 혼란을 겪는다.
독일의 연극 연출가이자 저자인 톰 슈미트는 ‘지위 놀이의 기술’이라는 책에서, 가면극에 몰입한 배우는 본래의 자아를 잊어버리고 자신이 쓴 가면에 따라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해가는 것을 발견했다고 한다. 이것이 사람이라면, 이 습성을 복잡한 사회 관계 속에서 긍정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누군가의 부모이면서 누군가의 자녀이고 누군가의 직장 상사이면서 또 누군가의 부하 직원이다. 한가지 가면을 쓰고 똑같이 행동하고 상대를 대하기보단 그 역할에 맞는 가면을 쓸 필요가 있다. 리더는 리더로서의 역할과 행동을, 팔로워는 팔로워로서의 역할과 행동이 필요하다.
다양성을 인정하고 가면에 귀천(貴賤)을 두어선 안 된다. 각자에게 어떤 가면들이 있고 각각의 가면으로 어떤 역할과 영향력을 행사하며 그것을 통해 어떤 이로움을 사회에 피력하는지 돌아보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는 오늘날과 같이 복잡한 사회관계(Social network)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person)으로서 필요한 통찰력이기도 하다.
양희종 (주)아이티엔제이 대표 경영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