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곳간과 곶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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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대]곳간과 곶감
  • 경상일보
  • 승인 2021.11.25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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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섭 울산시의회 예산결산특별위원장

‘곳간에서 인심 난다’라는 속담을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또한 ‘곶감 빼먹듯이 한다’라는 속담에도 공감할 것이다. 곳간도 중요하고, 곶감도 중요하다. 곳간이 수입이라면, 곶감은 지출인 셈이다. 가정과 기업은 곳간을 채우고, 곶감을 덜 쓰는 것에 방점을 두고 운용하고 있다. 가정이라면 저축일 것이고, 기업이라면 유보금일 것이다. 하지만, 정부와 지방단체 등 공공기관은 수입과 지출을 맞추는 균형재정이 중심축이다. 지출 항목에 없는 것을 더 써도 안 되고, 지출 항목에 있는 것을 덜 써도 안 된다. ‘뜨거운 아이스크림’처럼 형용모순의 성격이 없지 않지만, 그래서 재정은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한 영역이다. 예산을 집행하는 것도 간단치 않은 문제이지만, 집행할 예산을 편성하는 것은 고차원 방정식을 풀어내는 것 이상으로 어렵다. 한정된 예산 범위에서 울산과 시민을 위해 적재적소에 배분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예산을 둘러싼 당사자들의 상충되는 이해관계도 조정하고 중재해야 하며, 요구와 주장을 수용해야 하는 부분도 있기 때문이다. 예산은 현재는 물론 더 나은 미래를 위한 과업도 담아내야 한다. 시쳇말로 ‘복붙(복사하여 붙이기)’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담당자들의 고충과 애로를 충분히 짐작할만하다. 그러나, 고충은 고충이고, 애로는 애로이다.

필자가 시의원으로 등원한 이후 상임위원과 예결위원으로서 3년째 수 차례 예산안 심의 및 의결 과정에 참여했다. 그때마다 느낀 소회는 곳간과 곶감의 중요성을 무겁게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예산은 편성에서부터 집행, 그리고 결산에 이르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이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출의 원천인 수입이 바로 시민들이 낸 세금이기 때문이다. 서양 속담에 모든 사람이 피할 수 없는 두 가지가 있다고 했다. 하나는 죽음이고, 하나는 세금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세금은 죽음만큼이나 무겁고 두려운 존재이다. 그런 소중한 세금을 허투루 낭비할 수 없기에 예산은 여러 단계의 심의 절차와 검증 과정을 거쳐 수립되고 집행되는 것이다. 시의회가 상임위원회에서 심사한 예산을 예산결산특별위원회를 별도로 구성하여 한번 더 심의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소관 상임위에서 삭감된 예산이 예결위에서 슬그머니 되살아나면서, 예결위는 부활위원회라는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삭감과 부활, 모두 이유가 있다. 근거없이 삭감하거나 부활하지는 않는다. 시의원 개인의 주관적 판단이 개입될 여지는 더더욱 없다. 다만, 삭감된 예산안에 대해 부활의 합리적 이유와 타당한 근거를 제시하면 재검토의 소지는 충분한 것이다. 그래서 삭감되었던 예산이 부활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삭감의 칼날을 피하지 못하는 것은 예산이 왜 필요한지를 제대로 증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전적으로 해당 예산을 사용해야 할 부서의 책임이라는 것이다. 지난 9월, 필자가 처음으로 위원장을 맡은 이후 열린 예결위에서는 울산교육청 2차 추경예산 가운데 9.5%를 삭감했다. 의회 역사상 예결위의 전례 없는 대폭 삭감이었다. 이 때문에 노옥희 교육감은 강한 유감을 표명하면서 본회의장에서 퇴장을 강행하는 것으로 불편한 심기를 표출했었다. 박병석 의장도 노옥희 교육감의 행태를 질타했지만, 필자를 포함한 동료 의원 상당수는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의회의 심의 및 의결 기능을 원천적으로 부정한 잘못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울산교육청이 삭감된 예산의 필요성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 것을 먼저 탓해야 하는 것이 순서이다.

조만간, 상임위원회 심사가 끝나면 예결위가 본격 가동된다. 2022년도 새해 예산을 다루는 예결위는 4조3000억원의 울산시 예산안과 2조200억원의 울산시교육청 예산안을 한번 더 세밀하고 꼼꼼하게 검증하게 된다. 단계적 일상 회복이라는 새로운 실험에 맞춰 편성된 새해 예산이 울산의 발전과 시민의 삶에 힘이 되는 희망 예산이 될 수 있도록 필자와 예결위원들은 현미경처럼 자세히 들여다보고, 망원경처럼 멀리 내다볼 것이다. 곶감 빼먹듯 하는 예산이 아니라, 곳간을 풍족하게 채우는 예산이 되도록 만들겠다. 지금은 곶감의 달콤함 못지않게 곳간의 풍성함을 먼저 고심해야 할 때다.

김종섭 울산시의회 예산결산특별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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