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의 계절한담(閑談)(231)]메주, 콩으로 만든 천상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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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의 계절한담(閑談)(231)]메주, 콩으로 만든 천상의 맛
  • 이재명 기자
  • 승인 2021.12.07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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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명 논설위원

날콩을 끓이고 끓여/ 푹 익혀서/ 밟고 짓이기고 으깨고/ 문드러진 모습으로/ 한 덩이가 되어 붙는 사랑/ 다시는 혼자가 되어 콩이 될 수 없는/ 집단의 정으로 유입되는/ 저 혼신의 정 덩어리/ 으깨지고 문드러진 몸으로/ 다시 익고 익어/ 오랜 맛으로 퍼져가는/ 어설프고 못나고 냄새나는… ‘메주’ 일부(신달자)



오늘은 큰 눈이 온다는 대설(大雪)이다. 예로부터 대설이 되면 한 해 농사일을 끝내고 콩을 삶아 메주를 쑤었다. “부네야(=부녀야) 네 할 일 메주 쑬 일 남았도다/ 익게 삶고 매우 찧어 띄워서 재워두소/ 11월은 중동(仲冬:겨울을 삼등분한 달의 둘째 달)이라 대설 동지 절기로다/ 바람 불고 서리 치고 눈 오고 얼음 언다” 조선시대 실학자 정학유가 지은 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 중 11월령 가사다.

필자가 어렸을 때만 해도 이 맘때가 되면 대청마루와 처마 밑에는 메주가 주렁주렁 매달렸다. 그런데 이제는 메주가 어떻에 만들어지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된장국은 잘 먹으면서도 된장국의 원료가 되는 된장과 메주는 어디서 오는지 모르는 세상이 된 것이다.

예로부터 사대부 가문에는 저마다 된장을 만드는 비법이 있었다. 주로 종부를 통해 이어져 오는 된장 맛의 비결은 바로 이 메주로부터 시작된다. 메주는 보통 콩을 삶을 때는 ‘쑨다’고 표현하지만 담글 때는 ‘띄운다’고 표현한다. 띄우기는 곧 ‘발효’를 의미한다. 바닥에 볏짚을 깔거나 짚으로 묶어 메주를 매다는 것은 바로 그 ‘발효’ 때문이다. 지푸라기에는 ‘고초균’이라는 세균이 많이 묻어 있는데, 이 고초균이 단백질 분해 효소를 분비해 콩단백질을 아미노산으로 바꿔준다. 농촌진흥청이 오랫동안 전국의 맛집과 농가 등을 분석한 결과 장맛의 차이는 곰팡이에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 메주
▲ 메주

오동지 섣달/ 방안에 메주 뜨는 내음 가득하니/ 삶일시고 삶일시고/ 아흔 여섯 살 우리 할머니 정성일시고//…/지난 대설날/ 그 삭정이같은 마른 몸, 반으로 꺽인 허리로/ 어찌어찌 메주 만들어 시렁에 거시더니/ 벌써 교교한 내음 퀘퀘한 줄도 모를세라… ‘메주 뜨는 골방’ 일부(고재종)

골방에 메주 뜨는 냄새가 진동하는 계절이다. 그렇지만 ‘뚝배기 보다는 장맛’이라고, 된장국 없는 세상을 어찌 상상할 수 있겠는가. 겉만 번지르르한 뚝배기 보다는 깊은 장맛이 느껴지는 세상이 기다려진다.

이재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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