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은 평생 동안 좋은 것을 바라며 산다. 좋은 것을 많이 가지고 좋은 느낌을 많이 경험하면 행복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이 좋은 상태가 가끔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이어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좋은 물건이나 좋은 경험을 많이 가진다면 부족한 것 보다는 나을 것이라는 것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문제는 많다는 기준이다. 이것에 절대적인 기준은 없는 것 같다. 다만 자기가 마음속으로 비교하고 있는 사람들 보다 많아야 얻을 수 있는 상대적인 느낌이다. 그래서 이만큼 좋은 것을 얻었으니 나는 행복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뿐만 아니라 좋다고 느끼는 대상도 다양하다. 어떤 사람은 여행을 최고의 경험으로 여긴다. 또 어떤 사람은 새로운 것을 창작하고 만들어 내는 과정에서 긍정적인 체험을 하기도 한다. 드물지만 타인을 도우면서 새로운 세계를 경험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가장 흔한 것은 많은 재물을 가지면 이 모든 것보다 더 나은 명예를 얻고 더 좋은 경험을 오래도록 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다. 동서고금을 통하여 변하지 않는 원칙이긴 하지만 우리 사회는 유독 부(富)에 대한 집착이 강하다고 한다. 역사적으로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가난을 겪으면서 보낸 경험 때문에 결핍에 대한 강한 공포를 가지고 있다고 진단하기도 한다. 더러는 부에 대한 너무 강한 집착을 이렇게 희화화하기도 한다. 세상의 모든 말과 생각에는 처음과 끝, 즉 기승전결이 있어야 하지만 우리 사회의 모든 이야기는 ‘기승전돈’으로 끝난다는 것이다. 그저 웃고 넘길 수만은 없는 진실을 내포하고 있는 씁쓸한 이야기다.
여기에 하나 덧붙이고 싶은 것이 있다. 우리 사회의 성공법칙은 기승전 그리고 결론은 정치로 끝나는 것 같다. 모든 직업에서 정점에 오른 사람들은 마지막으로 정치를 지향한다. 정치가 세상에 존재하는 좋은 것을 더 가치 있는 것으로 드러내는 최고의 원천이라는 생각은 고대 그리스에도 있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이다. 흔히 정치는 아무런 사전 지식이 필요 없는 유일한 직업이라고 한다. 그래서 먹고 사는 일에서 어느 정도 해방된 사람은 너나없이 정치를 하고자 시도한다. 아리스토텔레스도 이러한 무분별한 시도를 염두에 두고 정치를 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자질을 염려했다. 특히 사람들의 지지에만 의존하는 정치를 하류의 정치로 보고 개인의 자질과 공동선을 향한 의지를 정치의 핵심으로 여겼다.
최근 우리 주위에는 벌써 다가올 선거를 겨냥한 후보자들의 벽보 사진이 걸리고 홍보기사가 SNS에서 나돌기 시작했다. 의욕 있는 신인들도 보이지만 정치를 직업으로 선택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오랜 정치적 경험을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 갈 자산으로 내세우는 노(老)정객들의 모습도 보인다. 정치에는 정년이 없으니 은퇴도 없다. 그래도 새 술은 새 포대에 담고 싶은 것이 보통 사람들의 바람이다. 40대가 대기업의 CEO가 되는 세상에서 정치만은 경험이 제일 큰 가치라고 말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100세 시대라는 말과 더불어 나이를 무시하라고 부추기는 격언들이 공적인 방송 매체는 물론이고 사적인 자리에서도 자연스럽게 오고가지만 그 말들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는 말아야 한다.
우리는 스스로 느끼는 만큼만 나이를 먹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 그보다 더 늙게 된다는 것은 누구나 경험하는 사실이다. 한 개인이 감당할 수 있는 어느 정도의 공적인 봉사를 실천하고 나면 좀 더 자유로운 영역에서 남은 시간을 다듬어 가는 것이 바람직한 삶의 태도라고 여기는 이유이다. 나이 들어서도 자신의 지혜와 경륜을 이용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더 좋은 정치를 보여 줄 수 있다고 믿는 것도 가능한 일이고 실제로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혜나 경륜의 수준이 다른 사람들보다 높은 인지도에 불과하다면 이러한 시도는 그리 바람직스러운 판단은 아닐 것이다.
김상곤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