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정 이불 껍데기는 광목이었다./ 무명 솜이 따뜻하게 속을 채우고 있었지./ 온 식구가 그 이불 하나로 덮었으니/ 방바닥만큼 넓었다.// 차가워지는 겨울이면/ 이불은 방바닥 온기를 지키느라/ 낮에도 바닥을 품고 있었다.// 아랫목은 뚜껑 덮인 밥그릇이/ 온기를 안고 숨어있었다.// 오포 소리가 날즈음,/ 밥알 거죽에 거뭇한 줄이 있는 보리밥,/ 그 뚜껑을 열면 반갑다는 듯/ 주루르 눈물을 흘렸다.…(후략)
‘구들목’ 일부(박남규)
온돌방의 온돌(溫)은 ‘데운 돌()’이란 뜻이고, 구들은 ‘구운 돌’에서 유래됐다는 것이 정설이다. ‘돌’은 본래 굴뚝을 가리킨다. 온돌은 중국에는 없는 한국의 전통적인 난방법이다. 온돌이 언제부터 사용되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다만 중부 지방에 있는 철기 시대 초기의 집터 유적에서 구들이 발견되는 것을 보면, 아주 오래 전부터 널리 보급되었음을 알 수 있다.
온돌을 발전시키고, 가장 널리 사용한 나라는 고구려였다. <구당서>를 보면 고구려에 온돌문화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책에는 ‘겨울에는 모두 기다란 구들을 만들고 그 아래에서 불을 태워 따뜻한 열기로서 난방을 한다’고 기록돼 있다.
아랫목은 아궁이와 가장 가까운 쪽의 방바닥을 말한다. 요즘으로 치면 ‘특석’이라고 할만 하다. 속담 중에 ‘나중에 들어온 놈이 아랫목 차지한다’ ‘남편밥은 아랫목에서 먹고, 아들밥은 윗목에서 먹고, 딸밥은 부엌에서 먹는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아랫목은 특석이었다. 아랫목은 평소 때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자리였다. 그렇지만 삭풍을 맞으며 찾아오는 손님이 있으면 벌떡 일어나 아랫목을 내주는 것이 우리네 예절이었다. 특히 귀여운 손자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제일 먼저 아랫목으로 끌어당겨 몸을 녹여주는 새둥지 같은 곳이었다.
요즘에는 난방이 하도 좋아 어지간한 한파는 이겨낼 수 있다. 그렇지만 코로나로 얼어붙은 마음의 한파는 좀처럼 녹지 않고 있다. 따듯한 마음의 아랫목이 절실한 시기다.
이재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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