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는 22일은 동지팥죽을 먹는 동지(冬至)다. 동지는 해가 가장 짧고 밤이 가장 긴 날이다. 때문에 이 날은 음(陰)이 극에 달해 귀신이 성하는 날로 알려져 있다. 귀신을 쫓아내는데는 여러가지 방법이 있지만 가장 흔하게 쓰이는 것은 팥죽을 끓여 집안 곳곳에 발라놓는 것이다.
귀신은 붉은색을 가장 싫어한다고 한다. 붉은색은 양색(陽色)이므로 음귀(陰鬼)를 쫓는 데 효과가 있다고 믿었다. 이사를 하면 붉은색의 시루떡을 만들어 집안에 잡귀와 액운이 깃들지 않도록 하는데, 그것도 다 그런 의미다. 동짓날 귀신이 물러가면 비로소 해는 길어지기 시작한다. 어둠의 터널에서 벗어난 태양이 새 생명의 출발을 알리는 것이다.
중국의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를 보면 귀신과 팥죽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공공씨(共工氏)의 재주 없는 아들이 동짓날에 죽어서 역질(疫疾) 귀신이 되었는데, 그 아들이 생전에 팥을 두려워하여 팥죽을 쑤어 물리친다”는 기록이 이 책에 적혀 있다. 역질은 요즘 말로 하면 코로나19 같은 것일 게다. 또 팥죽을 쑤어 집안 곳곳에 뿌리는 행위는 코로나를 물리치는 화이자, 모더나 백신이라고나 할까. 조상들은 울타리 안, 장독대, 방 안, 헛간 등 집안 여러 곳에 팥죽을 뿌리거나 갖다 놓았다.
그런데 팥죽은 아이러니하게도 사람에게는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팥의 주성분은 탄수화물과 단백질이며 각종 무기질, 비타민과 사포닌을 함유하고 있다. 팥에 들어있는 사포닌은 이뇨작용을 하고, 피부와 모공의 오염물질을 없애줘 예로부터 세안과 미용에 이용돼 왔다. 우리 속담에 ‘씻은 팥 같다’는 말이 있는데, 얼굴빛이 맑다는 뜻이다. 혹 이 팥의 성분과 연관이 있지는 않을까.

홍시 빛 늦가을이 엷게 번지는 하오/ 광장시장 노점에 앉아 엄마와 먹는 팥죽/ 달그락 수저 소리에 잔 그늘이 비껴간다// 젊은 날 속 끓이듯 팥물도 끓었으리/ 이래저래 반을 놓치고 퍼져버린 쌀알 속에/ 헤아려 살아갈 날들이 옹심이로 떠 있다 ‘팥죽’ 전문(이승은)
동지팥죽을 먹으면 또 한살을 먹는다. ‘이래저래 반은 놓치고 퍼져버린’ 인생… 그러나 앞으로 살아갈 날들이 옹심이로 떠 있으니 그 것만으로도 족하다. 코로나로 인해 우울하고 답답한 날들이 이어지고 있지만 동짓날 긴긴 밤을 지새우고 나면 또 새로운 태양이 떠오르리라. ‘노점에 앉아 엄마와 먹는 팥죽’에는 새알심같은 눈부신 해가 떠오르리라.
이재명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