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부부가 한 몸으로 사는 일을
바짓단 줄이는 일을 구경하였다
서로 퉁바리를 주며 손을 모아 사이좋게
내 다리를 줄여주는 일을
(중략)
저이의 한때가 등뼈 마디마디에
음각과 양각으로서
살 없는 활로서
시위를 버티는 삶의 탄성을
늘 등을 굽히는 노동을
제 몸을 표적으로 박는 노동을
저이들의 솔기를 다시 뜯어
다시 옷을 짓는다면
어떤 누에가 되어 푸른 실을 쏟을까
부라더미싱,
부부가 형제가 되도록
늙는 일이여
달팽이처럼 느려터진 밥벌이여
삼천 원 받는 바짓단 줄이기가
이십 분 만에 끝났다
공손히 줄어든 몸을 받았다

노부부의 노동에 대한 존경심과 경외심
옷 수선집에 가면 대개 맡겨 놓고 언제 찾으러 오시라고 하기 십상인데, 그 자리에서 바짓단 줄이는 걸 구경하다니 일감이 밀리지 않고 한가한 수선집인 모양이다.
서로 티격태격 ‘퉁바리’를 주며 하는 늙은 부부의 노동을 시인은 다양하게 변주한다. ‘한 몸으로 사는 일’ ‘제 몸을 표적으로 박는 노동’ ‘달팽이처럼 느려터진 밥벌이’ 등. 이러한 구절은 ‘부라더미싱’이란 상품명에서 착안한 ‘부부가 형제가 되도록’이란 말처럼, 일을 하며 함께 늙어가다 서로 닮아버린 부부의 모습과 아울러, 바늘에 손을, 아니 온몸을 찔려가며 하는 밥벌이의 고달픔을, 그리고 노후한 수선집의 변변찮은 소득까지를 짐작하게 하는 표현들이다.
이 시의 백미는 마지막 연이다. ‘줄어든 몸’은 줄어든 바짓단이자, ‘공손히’와 더불어 노부부의 노동에 대한 시인의 존중과 경외심을 나타낸다.
세상에 하찮은 노동은 없다. 예수도 목수였으니, 제 손으로 하는 밥벌이, 오래된 노동은 모두 위대하다.
송은숙 시인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