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필수의료 붕괴와 의대정원 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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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시론]필수의료 붕괴와 의대정원 확대
  • 경상일보
  • 승인 2023.10.27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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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재희 CK치과병원 원장

몇 년 전 ‘슬기로운 의사생활’이라는 드라마가 방영되었다. 5명의 의대 동기생들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이다. 주인공들의 전공과목은 일반외과, 흉부외과, 소아청소년과(소아외과), 신경외과, 산부인과였다. 그 중 일반외과에는 각각의 전문 분야에 따른 전문의가 너댓 명 있었지만 전공의(레지던트)는 통틀어 한 명뿐인 기이한 구조였다. 사실 앞서 주인공들의 전공과목들은 지금은 대부분 전공의의 정원을 채우기 힘든 과들임을 알 수 있다. 출산율의 감소로 인해 분만율이 떨어지며 산부인과는 점점 인기를 잃어가고, 소아 환자가 줄어들면서 소아청소년과도 지원율이 떨어져 정원미달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신경외과나 흉부외과, 응급의학과 등 촌각을 다투며 환자의 생사여부와 싸우는 힘든 과들은 기피 대상이 되고 있다.

이러한 필수의료의 붕괴현상은 점점 심해지는 양상이다. 소아청소년과 개업 건수는 2018년 122곳에서 매년 감소해 지난해에는 84곳이었으며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확보율은 2020년 71%에서 올해 25.5%까지 급락했고 중도 포기율은 2017년 6%에서 지난해 23%로 급증했다고 보고됐다. 산부인과는 낮은 저수가 문제로 분만을 기피해 올해 7월까지 전국 산부인과의 82%가 분만 수가를 청구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구급차로 호송된 환자가 치료를 받을 응급실을 찾지 못해 거리를 헤매는 일명 ‘응급실 뺑뺑이’ 현상을 심심찮게 접한다. 얼마 전 대구에서는 건물에서 추락한 10대 환자가 주변 응급의료기관 4곳을 방문했으나 거절당해 구급차 내에서 사망했으며 심지어 서울 아산병원의 간호사는 병원 내에서 뇌출혈 증상으로 쓰러졌으나 수술 가능한 신경외과 의사가 없어 사망한 사건도 있었다.

지역의 필수의료의 붕괴는 더욱 심각하다. 의사의 수도권 집중 현상으로 전국 의사 수(2021년) 10만9937명 중 서울에 3만2045명(전체 의사의 29%)이 거주하고 있으며 23개 진료과목 전공의 모집정원 중 61.6%가 서울, 경기, 인천 등 수도권에 몰려있다고 한다. 지방에서는 연봉 수억원을 내걸어도 의사를 구하기 힘든 상황이다. 강원도 모의료원 응급의학과 전문의 모집에 3차례나 공고를 하고 고액의 연봉을 제시해도 지원자가 없었으며 충북 청주의 모 종합병원에서 심장내과 전문의 모집에 초고액의 연봉을 조건으로 2차례 공고를 냈으나 지원자가 없었다고 한다.

이러다 보니 지방에 거주하면서 서울로 올라와서 진료받는 환자의 수가 급증하고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빅5병원 암 질환 진료로 상경한 중증환자가 100만명에 달하며, 일부는 인근 숙박시설에 머무르는 이른 바 ‘환자촌’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에 대한 대책으로 정부에서는 의대 정원의 확대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 25일 의대 정원이 최소 80명 이상은 돼야 한다는 전문가 의견이 대통령께 보고됐다고 말했다. 지방의 심각한 필수의료 붕괴와 의사·환자들의 ‘서울 쏠림’ 현상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지방 국립대 그리고 정원 50명 이하의 ‘미니 의대’ 중심으로 의대 증원이 이뤄져야 한다고 보고 2025년 입학에서 차질 없이 의대 정원을 확대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의 이러한 의대 정원 확대 방안은 의협과의 마찰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본다. 무작정 정원만 늘린다고 늘어난 의사의 수가 모자란 필수 의료 인력으로 보충된다고 보장할 수 없다. 또한 이 정부의 대입 수능정책에서 킬러 문항 배제와 더불어 의대 정원 확대를 대책 없이 밀어붙일 경우 지금도 의대쏠림 현상이 심한 대입수능시험에서 이 현상을 더욱 부채질 할 수도 있다. 벌써 올해 대입수능시험에서 반수생의 수가 9만명에 달한다고 하며 이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통계를 낸 지난 2011학년도 이후 역대 최고치로 추정된다고 한다. 세심한 대책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도 필수의료를 보는 의사들에게 더 많은 보상이 돌아가고 충분한 인력이 일할 수 있게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며 지역인재 전형 중심의 의대 정원 확대와 지방 국립대병원 의사의 증원 등을 통해 우수한 의사를 지방 국립대 병원으로 모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손재희 CK치과병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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