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일기]곱셈구구 암기의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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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곱셈구구 암기의 역설
  • 경상일보
  • 승인 2023.11.01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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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동업 울산 온남초등학교 교사

2학년 곱셈 단원 공부에 들어가기 전인데 몇몇 아이들이 나에게 와서 “저는 곱셈 벌써 다 외웠어요”라고 자랑스럽게 말한다. 그래서 “오~ 대단한데…”라고 반응을 해줄까 고민하다가 그냥 웃어넘긴다.

우리 아이들이 수학을 공부하면서 만나게 되는 첫 고비가 2학년 때 배우는 곱셈이 아닐까 생각한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곱셈식의 원리를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곱셈구구 암기가 난관이다. 부모의 마음으로 우리 아이들이 이 난관을 잘 넘기게 하기 위해 학원도 보내고 집에서 개인적으로 가르치기도 하며 심지어 유치원부터 암기를 시키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국제수학올림피아드에서 항상 상위권에 있는 나라 중에 핀란드와 인도가 있다. 그런데 인도는 수학 곱셈구구를 20단까지 암기하는 반면에 핀란드는 곱셈구구 암기를 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것만을 보고 판단하면 곱셈식의 암기 유무가 수학적 능력을 크게 좌우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고 지금 우리나라의 교육 현실에서 곱셈구구 암기를 안 할 수는 없다.

일선 교사로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곱셈구구 암기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묶어 세기의 원리(3+3+3+3=12)를 알고 난 다음 묶어 세기의 불편한 점을 느끼면서 자연스럽게 곱셈식(3×4=12)의 필요성을 알게 한 후 암기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잘 이해하고 난 다음 암기를 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곱셈구구 안에 숨어 있는 의미도 알게 된다. 하지만 위에서 말한 아이들에게 3×4를 질문을 해 보았더니 12라고는 잘 말하지만, 그 뜻을 말해보라고 하면 머뭇거리며 대답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중요한 것은 3×4=12라는 단순한 암기가 아니라 3씩 4묶음, 3을 4번 더한 것, 3의 4배를 이해하는 것이다.

원리를 이해하지 못한 맹목적인 암기는 아이들에게 수학에 대한 스트레스만 줄 수 있어 긴 여정으로 볼 때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수학은 먼저 개념과 원리를 확실히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가 배드민턴 레슨을 받을 때 먼저 자세를 정확히 안 다음 자세를 몸에 익히기 위해 거울을 보면서 혼자 연습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과 경기를 해 보기도 한다. 배드민턴 기술도 모르는데 경기부터 할 수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요즘 보면 개념과 원리도 잡혀 있지 않은데 문제집부터 풀어내는 경우가 많이 있다. 마치 배드민턴의 기본 기술도 잘 모르면서 연습경기부터 하는 셈이다. 또한 곱셈식 암기를 잘하느냐로 수학적 능력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 아이들이 ‘나는 곱셉구구 암기를 못하니 수학을 못한다’라는 생각을 가지게 해서는 안 된다.

아이들이 곱셈식을 배운다는 것은 덧셈 뺄셈이라는 수학적 해안가에서 놀다가 이제는 곱셈이라는 좀 더 먼 바다로 나간다는 의미이다. 먼바다로 나갈 때는 새로운 항해 기술이 필요하다. 그래서 천천히 바다에 적응하면서 바다(수학)를 좋아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교사와 부모들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서동업 울산 온남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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