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모임에 갔다가 최근 일자리를 찾아 울산으로 전입한 사람을 만났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어떻게 울산으로 오게 되었느냐고 물어봤다. 이유는 간명했다. 울산에는 그래도 먹고 살게 있지 않느냐는 답이다. 일자리가 있으면 그것을 찾아오게 된다는 것이었다. 인구가 늘고, 도시가 살기 위해서는 좋은 일자리만큼 좋은 만병통치약이 없다는 것이 새삼 확인된 셈이다.
그렇다. 울산은 지난 60여 년간 산업수도로서 대한민국 경제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해왔다.
울산은 1962년 특정공업지구로 지정된 이후 인구 8만명의 조그만 어촌도시에 불과했지만, 황무지 백사장에 조선소가 들어서고, 자동차와 석유화학 기업이 세워지면서 1000억불 수출을 달성한 대한민국 수출 전진기지로 변모했다.
소위 ‘한강의 기적’에 이은 ‘태화강의 기적’이 시작된 것이다.
울산하면 항상 동전의 양면처럼 따라다니는 도시가 있다. 미국의 디트로이트다.
디트로이트는 19세기 말에 자동차 도시로 떠오른다. 1900년 올스모빌, 1902년 캐딜락, 1903년 포드, 1908년 GM이 각각 출범했다. 1950년 디트로이트는 자동차산업 덕분에 인구 185만으로 미국 4대 도시였다.
그러나 디트로이트는 20세기 후반에 쇠락하기 시작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GM과 크라이슬러는 정부의 구제 금융까지 받았지만 결국 도산했다.
지역경제를 떠받치던 자동차가 쇠락하자 시 자체도 2013년에 185억 달러 부채를 안고 파산했다가 2014년에 회생했다. 현재 인구는 약 63만으로 1950년의 3분의 1이다. 다운타운에는 여기저기 버려진 빌딩들이 있고 관광에는 별로 적합지 않은 도시가 되었다. 자동차도시였던 디트로이트는 이제 운송과 물류 도시로 변신 중이다.
디트로이트 전성시대의 가장 큰 원인은 바로 역사적 우연이라는 요인이다. 헨리 포드라는 인물이 다른 곳이 아닌 디트로이트에 살았다. 기업인 한 사람의 탁월한 능력이 지역과 국가 전체의 발전을 이끈 것이다. 이는 울산도 비슷하다.
국가와 울산 경제발전에 기여한 기업인들의 유전자가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울산을 견고하게 견인하고 있다.
민선 8기 이후 지금까지 기업으로부터 투자 유치한 금액은 15조 8000억원이다. 전기차 산업과 이차전지산업 관련 투자가 크게 증가한 영향이다.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는 중견 및 중소기업들의 투자가 많아진 것도 달라진 특징이다.
여기에 조선업까지 살아나면서 지난 2016년 5월부터 줄어들기 시작한 인구가 88개월 만에 증가세로 돌아섰다. 특히, 동구의 경우 외국인 22개월, 내국인은 4개월 연속 증가세를 보였다.
울산의 자동차, 조선, 석유화학 등 3대 주력업종을 기반으로 경제적 다각화에 힘을 쏟은 것이 주효했다.
여기에 대학 등 인재 양성 시설, 산업 협력지구(클러스터)내 기반 시설 계획, 입주기업 인센티브 및 우수 기업 육성(인큐베이팅) 등 여건이 박차를 가하게 된다면 울산은 ‘산업수도’의 명성을 되찾고 세계적 산업도시로의 더 높이 비상할 것이다.
어릴 적 두꺼비집 짓기 놀이를 하면서 즐겁게 놀았던 추억을 떠올려 본다.
물기가 있는 흙이나 모래를 한쪽 손등 위에 둥그렇게 모아 올려서 단단하게 다져지도록 다른 쪽 손으로 두드린다.
두드린 흙이나 모래가 단단해졌을 때 손을 조심스럽게 빼내면 동굴 같은 집이 생긴다. 손을 빼낼 때 조심해서 살며시 빼지 않으면 집에 금이 가거나 무너지기 때문에 집중력 또한 필요하다.
손등의 흙을 두드릴 때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집 다오’라는 노래를 많이 부르기 때문에 두꺼비집 짓기라고 했다.
민선 8기를 맞아 불고 있는 경제적 훈풍이 두꺼비 집 노래처럼 울산의 위상이 더욱 여물어지고 단단해지는 계기가 될 것으로 확신한다.
김종대 울산시 대외협력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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