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년 넘게 고분벽화를 탐구하고 살펴온 연구자가 예술가의 마음으로 고분벽화를 돌에 옮겨낸 전각 작품을 선보이는 전시가 마련한다.
전호태 울산대 역사문화학과 교수는 오는 13일부터 28일까지 서울 무우수 갤러리 초대전으로 전시 ‘고구려, 신화의 시대-돌에 새긴 고분벽화’를 연다.
전시에서는 녹색의 전각석에 새긴 작품 40점을 선보인다. 해와 달, 농사와 불, 쇠부리, 숫돌의 신을 옮긴 작품을 비롯해 거문고와 비파, 학을 타는 선인, 소머리·토끼머리를 한 새 등 기이한 새와 동물을 담은 작품들이다.
이와 함께 전각 탁본 11점과 광개토대왕비문 일부를 옮긴 서예 작품 2점도 소개한다.
전 교수는 3년전 전각을 접한 이후 오랫동안 연구해 왔던 벽화를 돌에 옮기고 싶다는 마음을 가져왔다. 하지만 막상 전각으로 옮겨내려 하니 세월의 흔적을 품은 벽화가 온전치 않다는 점이 아쉬움으로 다가왔다. 실제 눈으로 보기에는 투박하지만, 기개 넘치는 고구려 벽화의 매력이 그대로 느껴지지만, 보이는 대로 표현하면 고구려 벽화를 단순한 그림으로 오해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에 전 교수는 이목구비가 또렷하지 않은 인물은 상상을 가미해 그려 넣고, 옷이나 악기에는 세밀한 표현을 더 했다.
전 교수는 이번 전각 작업을 하면서 그동안 연구의 대상으로 봐 왔던 벽화를 새롭게 인식하게 됐다. 오랫동안 새겨넣는 과정을 통해 미묘한 선의 흐름, 세밀한 색의 변화 등 제대로 보지 못했던 벽화의 모습을 자세히 들여다보게 됐다.
그는 “고분벽화를 연구하면서 벽화를 주문한 사람의 입장에서 이해하며 글을 쓰려고 하니 그림을 그린 ‘고구려 화가’의 마음은 어땠을지 생각해 보게 됐다”면서 “실제로 돌에 새기면서 고구려 사람, 고구려 화가, 고구려 벽화의 주인공이 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또 이번 전시도록에는 작품과 직접 쓴 시·에세이 등 작품과 어울리는 글을 더해 고구려 벽화를 쉽게 접할 수 있도록 도록을 제작했다.
이번 전시에 이어 전 교수는 회화작품으로 벽화를 펼쳐내는 작업도 구상 중이다.
뭉그러지는 코끝, 희미해지는 눈썹 등 시간이 흐르며 계속 변화하는 벽화의 모습을 채색을 더 해 더욱 세밀하게 담고 싶은 마음이다.
전 교수는 “연구자에게는 복원과 창작도 연구의 한 분야이기에 앞으로도 고분벽화를 미술의 다양한 장르로 표현해 보고 싶다”면서 “한류 출발점이기도 한 고구려 문화 산물을 통해 K-콘텐츠를 풍부하게 하는데도 보탬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한편 전호태 교수는 한국미술사의 출발점인 암각화와 고분벽화가 독립적인 연구 장르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기초 자료를 정리하고 연구 시각과 방법을 정립했다. 국내외 미술관에서 여러 차례 고구려 고분벽화를 주제로 한 특별전을 기획·감독하기도 했다. 문의 02·732·3690.
서정혜기자 sjh3783@ks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