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은 작고하신 고 황수관 박사께서 모 프로그램에서 소개한 유명한 일화가 있다. 83세의 아버지와 53세의 아들이 대청마루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까치 한 마리가 그들 앞에 날아와 앉았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저게 뭐냐” 라고 묻자 아들은 까치라고 대답했다. 아버지는 금방 잊어버리고 똑같은 질문으로 또 무엇이냐고 물었다. 아들은 “까치라고 했잖아요” 했다. “그래 고맙다.” 그런데 잠시 후 아버지는 또다시 까치를 보며 “저게 뭐냐”라고 묻자 아들은 짜증스런 말투로 “벌써 몇 번째예요. 까치라고 했잖아요”라고 했다. 그러자 아버지는 조용히 방에 들어가 일기장을 꺼내 왔다. 33살 때의 일기장 안의 일기를 읽어내렸다. 세 살짜리 아들이 “아빠, 저게 뭐예요”하고 물을 때 “저건 까치란다”라고 답했다. 세 살짜리 아이가 또 물었다. “아빠, 저게 뭐예요.” 그렇게 내 아들은 연거푸 23번을 물었다. 나는 23번을 까치라 답하면서 내 마음이 왜 이렇게 즐거운지 아들이 넘 귀여워 꼭 안아주었다. 일기장의 내용을 들은 아들은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이것이 바로 부모의 사랑, 그리고 그것을 이해하는 순간이었다.
얼마 전 필자는 어머니를 저 먼 하늘나라로 떠나 보냈다. “야야 어디고~.” 아직도 귓가에 생생한 퇴근 즈음에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어머니의 목소리다. 당신이 우리 곁을 떠난 지가 한 달이 지났건만 아직도 필자는 출근길에 자연스레 모친의 방으로 발길이 향한다. ‘여느 때와 같이 마치 잠깐 화장실을 가셨나. 동네 산책이라도 나가셨나’라고 생각하다가도 문득 고“아 어머니 이제 안 계시지”하면서 혼잣말을 되뇌인다. 어머니와 함께한 시간이 어느덧 이십여년이 흘렀다. 곱디 고운 마흔살 청춘에 홀로되어 열 남매를 당신 손으로 길러 내었으니 가히 초인이라 부르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백씨(큰 형), 중씨(작은 형)가 일찍 우리 곁을 떠나고 누이마저도 병으로 돌아가셔 어머니는 그들을 가슴에 묻을 수밖에 없었다. 열 손가락 찔러서 어디 안 아픈 손가락이 있으련만 어머니의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으리라. 더구나 요절하신 큰 아들을 당신 손으로 직접 염을 하시던 그 심정은 또 어찌했으랴? 자식을 애지중지하며 무한한 사랑으로 온갖 역경을 헤쳐오신 그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그 아픔을 직접 목도하고 공감해 왔기에, 필자의 슬픔이 더욱 깊어졌다.
비슷한 시기에 아버지를 잃은 한 아우가 아버지를 보내며 ‘다음 생애에 다시 만나자며 그때는 잘 할게요’라며 대성통곡하던 모습을 보니, 그래서 주자(朱子)가 ‘부모 살아계실 때 효도하지 못하면 부모 죽은 후에 후회한다(不孝父母 死後悔)’라고 했던 모양이다. 필자도 그러한 아쉬움에 지금도 가슴이 저민다. ‘爲人子者(위인자자) 曷不爲孝(갈불위효) 欲報深恩(욕보심은) 昊天罔極(호천망극)’이라 사람의 자식된 도리로서 어찌 효도를 하지 않으리오? 그 깊은 은혜를 갚고자 하여도 하늘처럼 다함이 없도다. 옛 성현의 말씀대로 열 남매의 효도를 다하여도 당신 한 분의 사랑에 견줄만할까? 어려운 형편에도 늘 이웃과 나눔을 실천하고 보따리장수라도 집에 들르면 숭늉이라도 함께 하자던 모친에게서 배워서인지 필자도 유니세프를 통해 그 길을 함께 가고 있다.
만일 부모님 살아계신다면 함께 보내는 소중한 시간을 놓치지 말고, 지금 이 순간이라도 부모님을 생각하며 사랑을 전해보는 것을 권한다. 바쁘다는 핑계로 찾아뵙지 못한다해도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또한 자주 찾아뵙는다면 부모님이 더 장수하실지도 모른다. 그렇게 살아계실 때 최선을 다한다면 부모님과 이승에서 이별한 후에도 후회하지 않고, 조금이라도 마음 편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부모님께서는 우리에게 끊임없는 사랑을 주셨다. 그 사랑에 보답하는 한편, 우리의 사랑과 관심을 부모님께 전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함께 보내는 소중한 시간을 소중히 여기고, 부모님과의 소중한 추억을 만들어가시기 바란다.
김형석 유니세프 울산후원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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