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게 무슨 그림일까요?”
“음. 보리쌀을 그린 것 같은데요.”
연장자인 장 선생이 보리쌀이라고 하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여자들만 서 있는 앞에서 당당하게 음부라고 말했다. 다산을 기원하는 의미로 새긴 여자의 음부라는 것이었다. 내 생각에는 그가 멋대로 해석을 하는 것 같았다. 여성의 음부라고 하기에는 선이 너무 단순하고 유치했다.
“김성범씨”
그가 내 이름을 불렀다. 갑작스런 부름에 당황스러웠다.
“네에.”
“이걸 무슨 그림이라고 생각하나요?”
나는 그가 이야기한 여성의 성기 같지는 않다고 했다. 둥그스럼한 타원형이 반으로 갈라져 있으니 반 나눔을 의미하는 기호가 아닐까 했다. 수강생들 모두가 내 의견에 공감하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내가 아주 현실적인 감각을 지닌 사람이라고 했다. 그의 말뜻을 해석해 보면 나는 시와는 거리가 아주 먼 사람이었다. 명료한 현실도 안개 속에 감추어 놓고 바라보는 게 시인의 마음가짐이라면 나는 싹수부터 틀려먹은 남자였다.

“콩알을 둘로 쪼갠다는 의미로 보았군요.”
한참동안 그림을 들여다보던 그가 낮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나는 그의 머리를 쳐다보았다. 내가 더 시인의 자질을 갖추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더 현실적이어서 그런지, 그의 말 속에 들어있는 쪼갠다는 단어에서 도끼를 연상했다.
“도끼로 장작을 쪼개다.” “도끼로 머리를 쪼개는 것 같았죠.” 두 번째 문장은 그가 한 말이었다. 나는 어디엔가 감추어져 있는 내 내면의 뼈에 금이 가는 소리를 들었다.
<2부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