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붉은 도끼[15]]3부. 하카다 (2) - 글 : 김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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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붉은 도끼[15]]3부. 하카다 (2) - 글 : 김태환
  • 이형중
  • 승인 2024.06.05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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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 위에 돌과 신문을 올려놓고 수저를 들었다. 간밤에 힘을 좀 쓴 탓인지 밥맛이 좋았다. 수저를 부지런히 놀리면서도 곁눈질로 식탁 위에 놓아 둔 홍옥석을 바라보았다. 이상한 기분이 들어 자꾸 시선이 홍옥석으로 쏠렸다. 꼭 누군가 나와 식탁에 마주 앉아있는 기분이었다.

나는 수저를 내려놓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식탁에 놓아둔 두 점의 홍옥석 중에 하나를 집어 들었다. 유촌 마을 냇가에서 쓰러지기 전에 내가 발견한 홍옥석이었다. 얼마 남지 않은 밥그릇을 비울 생각도 잊고 개수대에서 돌을 물로 씻었다. 말랐던 돌이 물기를 머금자 선명한 연녹색으로 바뀌었다.

붉은 색감은 핏빛처럼 선홍색으로 도드라져 보였다. 나는 물에 젖은 돌을 들여다보며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돌 전체의 모양은 사람의 얼굴 모양이었다. 가운데 돌출된 부분은 영락없는 코였다. 코 밑으로 적당한 거리의 인중이 있고 그 아래 가로로 패인 입이 있었다. 코 위 양쪽에는 약간씩 들어간 부분이 틀림없는 눈의 위치였다.

‘아’

내 입에서 가벼운 신음소리가 모르는 사이에 나왔다. 오른쪽 눈 윗부분에 대각선으로 붉은 금이 가 있고 그 금에서 붉은 색이 흘러내리는 듯 했다. 마치 칼이나 도끼로 입은 상처에서 선홍빛 핏물이 흘러내리는 듯했다. 대충 식사를 마무리하고 돌과 신문을 들고 서재로 갔다.

책상 위에는 어제 밤에 읽다 놓아 둔 서류뭉치가 그대로 놓여있고 그 옆에 붉은 홍옥석 돌도끼가 놓여 있었다. 홍옥석 두 점을 돌도끼 옆에 내려놓고 신문을 서류뭉치 옆에 가지런히 놓자 뭔가 완벽하게 조합이 이루어진 기분이었다.

버릇처럼 지방신문을 먼저 펼쳤다. 사회면은 대충 제목만 훑어보고 문화면을 펼쳤다. 가끔씩 울산 시인들의 시가 실리기도 하고 문화계 소식이 실렸다. 문화면에서 눈길을 끈 것은 암각화 발견 50주년 기념 학술대회 소식이었다.

천전리 각석은 1970년에 동국대 문명대 교수팀이 울산지역의 불교유적을 탐사하는 과정에서 발견되었다. 이어서 반구대 암각화도 발견되었고 고래그림 암각화로는 세계에서 유일한 유적으로 유네스코 등재를 앞두고 있었다. 나는 20년 전에 K시인 덕에 반구대 암각화를 처음 접했었다.

살인을 저지르는데 사용했다는 신석기 시대의 붉은 돌도끼와 미호천에서 발견한 두 점의 홍옥석, 그리고 암각화 발견 50주년 기념 학술대회, 그리고 104세나 된 전읍에 살던 노인, 그냥 순서도 없이 책상 위에 올라있는데 모두 우연이 아닌 것 같았다.

물건의 공통점은 대곡천이었다. 반구대 암각화가 있는 대곡천을 따라 올라가면 백련정이 있고 삼정마을이 있고 버드나무에서 이름을 딴 김인후의 집이 있는 유촌 마을이었다. 유촌 마을은 전읍리에 속해 있는 작은 마을이고 거기서 부터가 수석인들에게 알려진 홍옥석산지 미호천이었다. 김인후의 말로는 전읍이라는 지명이 동전을 만들었던 마을이라는 것이었다. 암각화를 새기던 시대가 청동기 시대였다는 점과도 관련이 있는 듯했다.

나는 신문에서 암각화 학술대회 내용을 주의 깊게 읽었다. 다 읽고 난 뒤 즉시 전화를 걸어 사흘 후에 있을 학술대회에 참여 신청을 했다. 책상 위에 놓인 물건들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무엇인가 대단한 이야기의 끈을 잡아 낸 것 같았다. 돌도끼를 들어 얼굴모양의 홍옥석을 내리찍는 시늉을 해보았다. 얼굴 모양의 돌이 실물보다는 작은 주먹만 한 것이어서 실감이 나지는 않았다.

돌도끼를 들어 날이 얼마나 예리한지 손끝으로 만져보았다. 생고기를 썰기는 힘들지만 배추나 무 따위 채소를 써는 것은 무리가 없어 보였다. 숫돌에 오래 갈기만 하면 고기를 써는 것도 가능해 보였다. 도끼로 사람의 두개골을 내려치는 상상을 해보았다. 그러자 K가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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