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전 전국 규모의 의료관련 컨퍼런스를 참관하고 왔다. 이 컨퍼런스는 경기도의 한 병원에서 십여년 전부터 매년 열려왔었는데 올해는 장소가 서울의 한 대형병원으로 바뀌어 열리게 된 것이다. 이 컨퍼런스의 주된 주제는 ‘환자경험’이다. 환자경험은 환자가 병원에 오기 전, 병원에 온 이후, 그리고 병원을 떠난 뒤까지 경험하고 기억하는 모든 것들이 대상으로, 여기선 이를 긍정적으로 이끌고 개선하는 방법 및 그를 위한 노력들을 주로 논의한다. 매년 참여하다보니 느끼는게 있는데, 예전엔 새롭기만 했던 내용들이 해가 지날수록 익숙해지는 게 그 중 하나다. 시간이 흐른 것도 있지만 필자가 일하는 울산병원이 이 컨퍼런스뿐만 아니라 많은 벤치마킹, 스터디 등에서 배운점들을 병원에 심으려고 한게 더 크다. 즉 이미 하고 있는 것들이 많아진 것이다. 개인적으론 뿌듯한 일이다.
한가지 더는, 매번 느끼지만 특별한 하드웨어, 값비싼 장비들에 대한 내용보다도 전혀 기반이 없는 상태에서 길을 찾아나가는 사례들, 무언가를 이루기 위한 마음과 열정으로 가득찬 사례들이 가장 큰 울림을 준다는 것이다.
전남의 한 공공병원에선 재택환자 케어에 대해 말씀해주셨는데 병원에 올 수 없는 환자들을 위한 사업으로 직접 의사, 간호사 및 행정직이 환자의 집에 방문한다. 발표자가 환자분들의 사진까지 보여주며 어떤 분들에게 어떤 치료를 해왔고 그분들의 현황이 이렇다는걸 자세히 설명했다. 치료를 해보니 현실적으로 이런 것이 힘들었다는 현장경험이 핵심이었는데 인상깊었다. 그분들은 거동이 불편해 병원 방문이 힘들기에 누군가 찾아갈 수 밖에 없다. 필자는 이런 수요는 계속 늘어날 것이라 가까운 미래엔 원격진료로 진료를 할 수 밖에 없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발표자분께서는 그에 대해선 부정적이었다. 해보니 결국 환자를 직접 봐야하더라는게 이유였다. 사실 이건 왕진을 생각하면 된다. 그게 뭐가 어려운가 생각할 수 있지만 이 병원에서 이 사례를 이런자리에서 일부러 발표한 것은 우리나라 의료환경에선 병원들이 이걸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로 발표자분께서는 한번 방문에 반나절 혹은 하루를 잡아먹기도 하는 이 사업에 환자 한명당 14만원 지급이라는, 너무나 힘들게 만들어진 우리나라 의료환경에 대해 쓴소리를 하기도 했다.
서울의 한 대형병원에서는 고령환자대응팀을 만들어 입원하는 고령환자의 취약도를 조사해, 어느 진료과에 있든 취약도가 특정정도 이상에 해당하는 환자에겐 특별관리를 한다. 쓰고 있는 약물 조정, 물리재활치료, 그리고 퇴원 후 가야할 곳을 사회사업부와 연계하는 것까지 자동적으로 이뤄질 수 있게 팀을 구성했는데, 결과는 회복, 퇴원하기까지의 기간이 감소하는 결과로 나타났다. 그걸 큰 병원 내에 전반적으로 정착화시키는 과정을 발표한 것이다. 이 역시 요약한 내용만 들으면 뭐가 그리 특별하냐고 할 수 있지만 관성이 강한 대형병원에서 보장되는 수익도 없이 환자에게 도움이 된다는 이유로 시행착오를 겪어가며 시행한 사례이기에 귀감이 될만 하다.
필자가 일하는 울산병원은 현재 지역책임의료기관이다. 책임의료기관은 주로 공공병원이 맡거나 공공병원이 없는 곳에선 지역의 규모있는 종합병원들이 맡고 있다. 그런만큼 퇴원환자 지역연계 등의 사업은 어느선까지 가능할지 몰라도 이런 사례들에서 현실적인 여건을 포함해 참고할 점이 있었다. 일부 여건이 특수한 환자들은 입원을 벗어난 단계에서도 병원이 어느정도 관여해 케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우리나라의 의료구조는 뭔가 정형화된 틀을 벗어나기가 힘들며 벗어나더라도 정말 아슬아슬하게 운영이 되는게 대부분이다. 그렇지만 여건이 힘들다고 포기하기보다는, 어떻게든 머리를 굴려 제한된 환경에서 장애물들을 피해 방향을 찾아나가는 사례들을 이런 자리들에서 찾게 된다. 전국의 많은 병원들이 하고 있는 노력들에서 올해도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 이런 열정들이 꺼지지 않고 계속 되길 바라본다.
임성현 울산병원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