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월이면 골목 한 쪽이나 담벼락과 장독대 아래 한창 피는 접시꽃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접시꽃은 한 번 심으면 저절로 번식하기에 사방에서 보이는 여름의 상징 같은 꽃이다. 어른의 키를 훌쩍 넘은 긴 줄기에 큰 꽃잎이 접시처럼 활짝 벌어진 모양으로, 붉은색·분홍색·흰색·자홍색 등 다양한 색깔의 꽃들이 여름 내내 피어 있다. 그런데 이 꽃들은 사실 한 꽃이 계속 피어 있는 것이 아니라, 한 송이 한 송이는 금방 떨어지지만 이를 이어 곧장 다른 꽃이 피기에 여름 내내 끊임없이 피는 것처럼 보인다.
접시꽃은 태양의 움직임을 따라 다니며 핀다. 이에 접시꽃의 한자 이름 ‘규화(葵花)’에서 따온 ‘규심(葵心)’이라는 말은, 신하가 임금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해를 따라 다니는 규화와 같다고 하여 ‘충심(忠心)’을 뜻한다. 이 때문에 옛 문인들은 접시꽃을 통해 자신의 충성심을 드러내고자 하였다.
<지봉유설>의 저자 이수광 또한 멀리 함경도 안변의 부사로 재임하던 시설에 지은 ‘객관 옛터에 접시꽃이 활짝 피다(客館舊基有葵花正開)’에서 그렇게 변치 않는 마음을 노래하였다.

가시덤불 곁에 풍기는 한 떨기 꽃향기
먼 지역의 외로운 자태 어여쁘기도 해라.
그러나 뭇 화초와 같지 않으려 하니
태양을 향한 한 가지 마음만은 늘 품고 있구나.
荊棘叢邊一朶香(형극총변일타향)
可憐孤艶在遐荒(가련고염재하황)
雖然未肯同凡卉(수연미긍동범훼)
猶有丹心向大陽(유유단심향대양)
시인은 먼 지역으로 와서 고고하게 피어난 접시꽃을 만나고는, 매년 여름이면 고향집 어디서나 한창 피던 풍경을 떠올렸을 것이다. 가시덤불처럼 힘든 상황 속에 홀로 떨어져 있지만 태양을 향한 뜨거운 마음만은 여전하다는 구절은, 반드시 임금에 대한 충성심만을 말하지는 않는다. 고향에 사는 가족과 벗들에 대한 그리움 또한 그토록 간절함을 담은 구절로도 아울러 해석할 수 있으리라.
노경희 울산대 국어국문학부 교수ㆍ<알고 보면 반할 꽃시>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