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드륵 탁- 드르륵 탁탁. 바퀴가 땅에 연달아 걸리며 내는 둔탁한 소리. 5년 만에 다녀온 해외여행지에서 자주 들은 소음이었다. 군데군데 솟아있는 보도 탓에 구두를 신은 발도 아프고 캐리어 바퀴가 걸려서 불편했다. 그즈음 바라본 바닥에는 노란색 정사각형 모양의 점자블록이 줄지어 자리했다.
점자블록은 1967년 일본에서 만들어졌다. 미야케 세이치라는 엔지니어가 친구의 실명을 계기로 발명했으며, 일본의 맹인학교 근처 교차로에 세계 최초로 설치했다. 점자블록을 자세히 보면 두 가지 무늬가 있는데, 선형블록을 통해서 방향을 확인하고, 점형블록으로 위험 요소나 방해물을 인지할 수 있다.
무심코 지나다녔기에 존재조차 인식하지 못한 둔감함이 부끄러웠다. 이 둔감함은 이미 사회 곳곳에 배어 있다. 몇 년 전, 모 광역시는 지하철역의 점자블록 위를 카펫으로 덮어 비판받았다. 우천시에 블록을 밟고 미끄러지는 일이 잦기 때문인데, 편향된 편리의 결과는 결코 매끄럽지 않았다. 한 번쯤 점자블록 위에 전동 자전거나 킥보드가 놓인 모습을 봤을 것이다. 갑자기 길 위에 예상치 못한 벽이 쌓인다면 외출 난이도가 급격히 상승하지 않을까. 2024년 9월15일부터 점자블록에 물건을 쌓는 등 이용을 방해하는 행위가 금지되며, 위반시 50만 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또한, 울산시는 전동 킥보드 불법주차를 단속하기 위한 카카오톡 시민 신고방을 개설해 운영하고 있다.
지금의 학교는 규칙이 있으되 유연하게 반영해 다양성을 존중한다. 뜀틀이 무서워 넘지 못하면 높이를 낮춰주고, 모두가 미술 작품을 완성할 때까지 충분한 시간을 준다. 화장실의 소변기가 복도에 노출되어 있다는 불편이 일자, 학급 회의에서 안건을 제시해 가림막을 설치하기도 했다. 어느 날 불쑥 깁스를 하게 되어도, 학교에 엘리베이터가 있고 기꺼이 책을 들어주는 친구가 있다. 이렇게 우리 아이들은 존재 자체로 수용되는 경험을 한다.
이러한 아이들이 자랄수록 어른들은 “학교는 작은 사회야, 사회는 훨씬 냉정하고 차가워”라며 겁을 준다. 학교가 작은 사회인만큼, 사회도 큰 학교가 되어주면 어떨까? 학교는 개별 맞춤형 교육으로 변화하고 있다. 사회도 이와 함께 가고 있는가. 편의에 대한 수요가 있다면, 사회 제반 시설 확충과 복지 정책 수립 등의 공급이 충분히 이루어져야 한다. 이 과정은, 둔감으로부터의 탈피에서 시작한다. 내 일, 내 가족의 일이 되었을 때도 우리는 모른 채 넘길 수 있을까?
자의로 하기 힘든 일을 타의로 가능케 하고, 편의를 누리도록 선의를 베풀면 생기는 것이 사회의 정의이다. 너의 일을 내 일처럼 여길 때, 조금 더 나은 내일을 꿈꿀 수 있다. 오늘 하루쯤은 땅을 보고 걷는 걸 추천한다. 움푹 파인 보도, 끊어진 점자블록. 널브러진 킥보드…. 우리 모두의 길은 안녕한가?
배상아 연암초등학교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