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화는 대표적인 가을꽃이다. ‘매화·난초·국화·대나무’라 하는 사군자의 하나로서 옛 문인들이 가장 사랑한 꽃이다. 원래 꽃의 계절은 봄이다. 많은 꽃들이 봄이 되면 잎보다 먼저 피어 봄소식을 전한다. 그러나 국화는 꽃들이 모두 지고 잎도 떨어지기 시작하는 가을에 핀다. 양기가 사라지고 음기가 소슬한 계절에 힘들게 핀 꽃이기에, 서리도 두려워하지 않고 그리 굳건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또한 바로 그 때문에 문인들에게 ‘은일’과 ‘절조’를 상징하는 존재가 되었다.
국화는 누구보다 술을 좋아하는 문인들의 아낌을 한 몸에 받았는데, 중국의 유명한 애주가였던 도연명(陶潛, 365~427)은 국화를 사랑하는 시인의 대명사로 꼽힌다. 한해가 저물어갈 무렵 마지막 자연의 기운을 모아 피어나는 국화꽃을 감상하면서 옛날 문인들은 마음이 맞는 벗을 만나 함께 술과 시를 나누었다.
담장 아래 보랏빛 국화 비 맞아 처음 피니
문득 고향집 울 밑에 심은 꽃 떠오르네.
또한 동쪽에 이웃한 옛날 시 친구 있었으니
혼자서는 막걸리 잔 들지도 못하겠네.
墻根紫菊雨初開(장근자국우초개)
忽憶故園籬下栽(홀억고원리하재)
更有東舊詩伴(갱유동린구시반)
還應不放濁醪盃(환응불방탁료배)

17세기 문인 장유의 ‘비 그친 뒤 자주빛 국화 바라보며 고향집 뜰 생각하네(雨後紫菊花開 有懷故園)’라는 작품이다. 시인은 홀로 객지에 머물던 중 차갑게 내리던 가을비가 멎자 자주빛 국화가 피어난 풍경을 보고는, 문득 고향집 울타리에 심어 놓았던 국화를 떠올린다. 지금쯤이면 고향에도 국화꽃이 피었으리라.
그런데 시인이 진정 그리워 한 것은 그저 꽃만이 아니었다. 고향에는 국화꽃이 피면 함께 시를 주고받으며 막걸리 잔을 기울였던 동쪽 이웃의 마음이 통하는 친구가 있었다. 내가 없으니 벗님 또한 시와 술을 함께 나눌 이가 없겠구나. 이 가을이 다 가기 전 그리운 친구에게 소식 한 자락 전하고픈 마음이 들게 하는 작품이다.
노경희 울산대 국어문화원 원장ㆍ<알고 보면 반할 꽃시>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