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속의 꽃(24·끝) 매화(납매)]엄동설한 온실 속 아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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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 속의 꽃(24·끝) 매화(납매)]엄동설한 온실 속 아가씨
  • 경상일보
  • 승인 2024.12.31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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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순태 울산대 국어국문학부 교수·'알고 보면 반할 꽃시' 저자

어수선한 세밑, 오늘은 마침 음력 12월 첫날이다. 음력 12월은 섣달 혹은 납월(臘月)이라 했다. 납월에 피는 매화를 납매(臘梅)라 한다. 매화는 보통 정월이 되어야 피는데 더 이른 시기, 즉 엄동설한에도 매화가 필까?

노란색 꽃잎의 생김새가 매화와 닮았다고 하여 생강나무꽃을 납매라고도 하고 겨울에도 비교적 따뜻한 남쪽 지방에서 일찍 피는 매화를 납매라고도 한다. 또 일부러 개화 시기를 앞당겨 피워낸 매화를 납매라고도 한다. 어느 것이든 세밑에 피는 매화(혹은 매화와 닮은 꽃)를 다 납매라고 했던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매화의 개화 시기를 어떻게 앞당겼을까? 화분에 심어 실내에 들이고 심지어 감실(龕室), 즉 집 모양의 작은 상자에 매화를 두고 키우던 이들이 적지 않았다. 매화를 위한 감실을 매합(梅閤)이라 했다. 간혹 물을 끓여 매화나무 화분에 주었다는 기록도 있는데 펄펄 끓는 물을 곧바로 꽃나무에 주었다가는 당장 죽을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겨울에 따뜻한 물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물을 끓이는 것이었기에 따뜻한 물을 준 것을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조선 후기 내내 매합에 재배하거나 실내에서 따뜻한 물을 주어 엄동설한에 피어나는 납매를 감상하던 것이 유행이었다. 다음은 18세기 초 조문명(1680~1732)이 매합을 두고 읊은 ‘매합에 드리운 푸른 장막’(梅閤垂靑紗帳)이라는 시다.

나부산에 있던 신세 감실로 집을 삼았으니
세모 전에 가지마다 꽃망울 터뜨리겠네.
이슬 부끄러워하는 아리따움은 아가씨 같아
일부러 앞에다 푸른 장막 치게 했지.

羅浮身世閤爲家(나무신세합위가)
未臘枝枝欲綻花(미랍지지욕탄화)
羞露嬌容如處子(수로교용여처자)
故敎前面障靑紗(고요전면장청사)

▲ 강세황의 ‘무한경루청공지도(無限景樓淸供之圖)’. 선문대 박물관 제공
▲ 강세황의 ‘무한경루청공지도(無限景樓淸供之圖)’. 선문대 박물관 제공

중국 나부산은 매화 산지로 유명한 곳이다. 봄빛이 감돌 때에야 필 매화가 매합 덕분에 일찍 피어 납매가 된 것을 이렇게 읊은 것이다. 매합을 아름답게 꾸미기 위해 앞쪽에 드리운 푸른 비단은 부끄럼 많은 아가씨(매화)가 일부러 친 것이라는 설정이 기발하다.

안순태 울산대 국어국문학부 교수·<알고 보면 반할 꽃시>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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