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V 프로그램 ‘이혼숙려캠프’는 갈등의 끝자락에 선 부부들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마지막 가능성을 모색하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이 보여주는 것은 단순한 부부싸움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가 겪는 정서적 미성숙과 감정문해력 부족, 자기이해 결핍의 실상을 드러낸다. 이는 한국 사회의 관계 문화가 안고 있는 뿌리 깊은 문제를 비추는 거울이다.
출연자들의 핵심 문제는 자기 자신을 모른다는 것이다. 무엇이 자신을 분노하게 하는지, 왜 그런 반응을 보였는지조차 모른 채, 상대에게 모든 책임을 돌린다. 이는 고대 철학자들이 말한 ‘무지의 죄’를 떠올리게 한다.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고 했다. 자신을 모르면 타인을 이해할 수 없고, 결국 모든 관계는 오해와 단절로 흐른다. 자기 감정을 인식하지 못하면, 사람은 본능적으로 그것을 타인에게 쏟아낸다. 상대가 내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분노하고, 그 감정은 공격으로 표출된다. 출연자들은 자신의 상처를 들여다보지 않고, 모든 문제의 원인을 배우자에게 돌린다. “넌 항상 날 무시해”라는 말은 사실 “나는 존중받고 싶지만, 그럴 자격이 없다고 느낀다”는 고백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감정은 인식되지 못한 채 비난으로 왜곡된다. 갈등이 생기면 대화보다는 고함을 지르거나 자리를 박차고 나간다. 함께 문제를 풀려는 태도보다 도망치거나 싸우는 방식이 반복된다. 이는 어릴 적 가정에서 체득한 잘못된 갈등 대처 방식일 가능성이 크다. 갈등을 성장의 기회가 아닌, 단절의 시작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상대를 인격체로 존중하기보다, 자신의 욕구를 채우는 수단으로 여기는 태도도 문제다. 기대를 충족하지 못하면 ‘무능한 배우자’로 낙인찍는다. 이는 사람을 도구화하는 태도이며, 결국 사랑을 기능적 계약으로 전락시킨다. 이 악순환을 끊기 위해 필요한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성찰이다. “나는 왜 이런 반응을 보였을까?” “진짜 내가 원하는 것은?” “내가 상대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있을까?”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야 한다. 감정을 정확히 표현하고, 상대의 감정을 판단 없이 들어주는 공감의 태도도 필요하다. “너 때문에”가 아니라 “나는 이렇게 느꼈다”는 방식으로 말하는 연습이 중요하다.
무엇보다 부부는 서로를 고치는 존재가 아니라, 함께 성장하는 동반자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싸우지 않는 부부가 아니라, 갈등을 조율할 줄 아는 부부가 진정한 관계를 만든다.
이혼숙려캠프는 단지 몇몇 부부의 문제가 아니다. 이 프로그램은 우리 모두가 안고 있는 정서적 미숙함, 관계의 서툰 태도, 성찰의 결핍을 드러내는 사회적 진단서다. 철학과 심리학은 말한다. 관계는 기술이 아니라 태도이며, 진정한 변화는 자기 자신을 직면하는 데서 시작된다고.
결국 사랑이란 완성된 상태가 아니라, 서로를 알아가고 실망하고 다시 이해하는 과정을 반복하는 긴 여정이다. 그리고 그 여정의 시작은 언제나 ‘나 자신을 이해하는 일’이다.
정안태 '오늘하루 행복수업' 저자·울산안전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