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3일 국회 본회의에서 가결된 상법 일부개정법률안이 15일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22일 공포되었다. 이 가운데 이사의 주주 충실의무는 현재 시행되고 있으며, 사외이사를 독립이사로 명칭을 변경하는 것과 감사위원 선출 시 3%룰을 사외이사 선출 시에 확대 적용하는 것은 공포 후 1년이 경과한 내년 7월23일 시행된다. 상장회사의 전자 주주총회 의무규정 등은 부칙에 따라 2027년부터 시행 예정이다.
이 가운데 많은 이해 관계인들이 주목하는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는 회사 및 지배주주와 소수 주주의 이익이 상충할 경우, 소수 주주 보호 관점에서 실제 사례들이 구성될 것으로 예상된다. 중대재해처벌법과 같이 새로운 법제가 시행되는 경우, 그 의미를 구체화하는 사례들과 해당 법을 적용한 유권 해석인 판례가 축적되어야 수규자(受規者)인 회사·임원들이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하면 안 되는지 알 수 있게 되는데, 이에는 수년의 시간이 소요될 것이므로 오늘은 유관 법제를 우리보다 앞서 운영 중인 미국의 판례를 소개하여 대비에 참고가 되고자 한다.
회사의 최고 의결기구가 이사회임을 전제로, 주주간 이해 상충을 포함하여 이사들의 모든 경영 관련 의사결정의 정당성을 판단하는 기본이 되는 기준은 경영판단의 원칙(Business Judgement Rule)이다. 이사들이 충분한 정보를 바탕으로 성실하게 결정했다면 그와 같은 결정은 가급적 존중되어야 한다는 원칙인데, 미국 판례는 이사의 법적 책임에 대한 판단에 있어 일반적 상황에서는 경영판단의 원칙을 적용하되, 적대적 기업 인수·합병의 경우와 같이 지배주주와 소수 주주의 이해가 상충할 수 있는 사안에서는 경영판단의 원칙을 수정하여 지배주주의 경영권 유지가 아니라 주주의 이익을 보호한다는 합리적 근거를 요구하는 강화된 주의의무(enhanced or intermediate scrutiny)를 기준으로 판단하며, 회사 분할이나 자사주 처분과 같이 주주간 이해상충이 더 커지는 사안에서는 해당 의사 결정에 있어 이사가 거래의 절차적 정당성 및 실체적 정당성이 구비 되었음을 입증할 책임을 지우는 가장 엄격한 기준(entire fairness standard)을 적용해 왔다.
엄격 기준인 완전한 공정성 기준에 의거 이사가 한 경영 판단의 공정성 여부는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까. 미국에서 가장 진보된 회사법 체계를 가진 것으로 평가되는 델라웨어주 판례는 이사회가 독립적인 특별위원회의 승인을 거치고, 지배주주를 제외한 주주들의 다수결 결의(majority of minority shareholder approval)를 모두 거친 경우, 절차적 정당성이 구비되었다고 판단한다. 이 판례 법리는 지난해 초, 테슬라 정기주주총회에서 CEO인 일론 머스크에게 558억달러(한화 약 74조원)를 지급하는 내용의 임원 보수 지급안에 대한 이사회 의결에 대해 소수주주가 제기한 소송에서 테슬라의 설립지로서 관할권을 갖는 델라웨어 주 형평 법원(Court of Chancery)이 해당 의사 결정을 한 이사들이 독립적이지 않음을 이유로 해서 원고의 청구를 인용한 판례를 통해 다시 한번 확인된 바 있다. 실제로 해당 의결에 참여한 이사들은 당시 머스크의 회사인 스페이스 엑스의 이사였거나 그의 다른 여러 회사들에 투자해 온 이들이었기 때문에 관련 판단에 대한 독립성을 인정받기 어려웠고, 해당 의안의 당사자인 머스크와 의결 전 긴밀히 협의한 사실이 밝혀짐으로써 이해상충 문제가 해소되었다고 보기 어려울 만한 사정이 있었다.
기업의 의사결정 구조에 관심을 갖고 공부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이사회 중심 경영’이라는 말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이번 개정 상법이 궁극적으로 의도하는 경영의 모습도 바로 이 이사회 중심 경영이다. 기업이 의사 결정 및 전략 계획을 수립할 때 리스크를 고려한 집단적 의사결정을 하라는 말로 풀어 설명할 수 있다. 세계적 기조들과 시차를 두고 있는 한국의 경영이, 시장이 관철시킨 이번 제도 변화에 더 이상 경영활동 위축이 우려된다는 오래된 변명 뒤에 숨지 말고 현재보다 더 많은 투자자들을 초대할 수 있도록 문이 넓어지고 품이 깊어지길 바라고 기대한다.
이준희 미국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