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영동 전 국정홍보처장이 지난 2월 의논할 일이 있다고 해 울산에서 만났다. 부산일보 편집국장을 지낸 후 노무현 대통령 시절 초대 국정홍보처장을 역임한 조씨는 현재 부산에 살고 있는데, 내가 추전 김홍조 일대기를 신문에 연재할 때 전화로 통화한 적은 있지만 직접 만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가 울산에 온 이유는 그의 외증조부 추전 김홍조 묘지 관리비를 협의하기 위해서였다.
일제강점기 추전은 민족 계몽차원에서 학교를 세우고 젊은 청년을 뽑아 일본에 유학을 보내는 등 교육 사업을 많이 벌였다. 이 외에도 이시영이 이끌었던 신흥무관학교 설립에 많은 군자금을 내었고 백산 안희제를 통해 상해임시정부에도 적지 않은 군자금을 보내었다.
그는 1922년 55세로 영면한 후 자신 소유였던 학성공원에 묻혔다가 해방 후 울산의 한 공원묘지로 이장했다.
추전은 본부인 김씨 사이에 아들 딸 각 한명씩을 두었지만 딸은 양산으로 시집간 후 곧 타계했다. 해방 직후 울산경찰서장과 울산에서 2대 국회의원을 지냈던 김택천이 그의 외동 아들이다. 김씨 역시 외동딸 김숙밖에 낳지 못해 추전은 사실상 손자대가 되면 손이 끊긴다. 조영동은 추전의 손녀인 김숙의 아들이다.
추전이 학성공원에서 공원묘지로 이장한 것은 공원묘지 측 권유 때문이었다. 공원묘지는 묘지 조성 후 분양 문제를 고심하다 공원 묘터가 명당이라는 소문이 나면 분양이 수월할 것으로 판단해 명문가 산소를 이전키로 결심했다. 이렇게 해 선정한 산소가 일제강점기 울산 최고 부자로 당시 학성공원에 있었던 추전 산소였다. 처음에는 문중이 이장을 강력히 반대해 공원묘지 측에서 문중을 설득하느라고 공을 많이 들였다고 한다.
이장 후 산소를 돌보는 이가 없다 보니 관리비가 늘어났다. 조 씨에 따르면 지난 20여년 동안 밀린 관리비와 앞으로 30여년 더 사용하려면 수천만원을 지급해야 한다는 영수증을 받았는데 자신으로서는 쉽게 납득되지 않는 액수였다고 한다.
추전은 교육사업과 독립운동 자금은 차치하고라도 육영사업 차원에서 자신 소유의 학성공원과 언양 작괘천 일대를 아들 김택천과 소실 이호경을 통해 울산군과 언양면사무소에 기증했다.
학성공원은 1913년 추전이 구입 후 가꾸다가 해방 후 아들 택천이 울산군에 기증했다. 이에 앞서 추전은 일제강점기 언양 부자 오병선 소유였던 작괘천을 구입한 후 그의 소실 구소 이호경을 통해 언양면에 희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추전과 조씨는 직계가 아닌 것은 물론이고 족보상으로도 가까운 관계가 아니다. 그런데 어쩌다 외증손이 할아버지 묘지 관리비를 걱정하게 되었는지 알 수 없다. 그렇다고 우리 모두가 추전 산소관리비를 그의 외증손인 조영동 혼자 고민토록 하기에는 일제강점기 이 나라와 울산이 추전으로부터 진 빚이 너무 많았던 것 같다.
장성운 울주문화원 지역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