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장관 임용 청문회를 달군 여러 사항들 중 갑질문제가 화두가 되었다. 후보자였던 국회의원에 대해 연이어 터져나오는 전직 보좌진들의 갑질 폭로와 이에 대한 후보자의 대처에 대해 많은 비난이 쏟아졌다. 아랫사람에게 업무를 지시함에 공사를 구분하지 못하거나, 그런 일이 드러났을 때 솔직하게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지 못하고 변명에 급급한 후보자나, 그러한 사람을 동료라고 감싸고 오히려 갑질을 폭로한 사람들을 비정상으로 몰고 가는 행태를 보고 많은 사람들은 공감하기 어려웠다.
제자가 쓴 학위 논문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절반 이상이나 표절하여 마치 자기의 연구 성과인양 발표하고서도 학계의 관행이었다는 낯뜨거운 변명을 늘어놓은 장관 후보자도 있었다. 결국 이들의 갑질문제가 장관 임명 지명 철회와 자진 사퇴라는 결과를 불러오고야 말았다.
갑질은 권력이나 지위의 비대칭성, 정보 우위 등을 이용해 상대방에게 부당한 대우나 요구를 강요하는 행위로 이는 상대를 ‘인간’이 아닌 ‘도구’로 간주하며 인격을 무시하는 태도를 보이게 된다. 대학 내에서의 교수와 제자 사이, 직장에서의 상사와 부하 사이, 본사나 지점 사이 등 사회 각처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
갑질을 일으키는 가장 큰 원인은 존비(尊卑)로 대변되는 한국사회의 문화정서적 경향과도 관련 있으며,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라고도 주장한다.
더욱 심각한 것은 우리 사회의 기저에 갑의 강압적인 역할과 을의 저자세가 깔려있으며 개개인은 부지불식간에 그런 문화를 답습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한때는 을이었던 개인이 또 다른 관계에서 갑이 됐을 때, 같은 행동을 거리낌 없이 행하여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이러한 갑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덕목으로 공자의 윤리 사상의 핵심가운데 하나인 ‘충’(忠)과 ‘서’(恕)가 절실히 필요해 보인다.
먼저, ‘충’은 진심에서 우러나는 충실함으로서,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진심을 다해 행동하는 것이라고 했다. 즉 일을 행함에 자기의 역할을 다하고 도덕적으로 헌신하는 태도로 맹목적인 충성이 아니라 윤리적 자기 성찰의 자세로 모든 일에 임해야 한다. 공직자로서의 공과 사의 구분 실패나 문제가 드러났을 때 책임 있는 해명 대신 회피하는 모습은 충에 대한 이해가 현저히 부족하여 성실성과 진정성이 결여됐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핵심 사상인 ‘서’는 자기 입장에서 상대를 헤아리는 마음으로 공정성과 역지사지를 나타낸다. 그렇게 함으로써 다른 사람의 마음을 내 마음에 품는 일이다. 충분한 공감 능력을 가지는 것이 서인 것이다. 공자의 제자인 자공이 한 글자로 종신토록 행할 수 있는 것이 있느냐고 물었을 때 공자은 바로 ‘서’라고 했다. 그러면서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도 하지 말라(己所不欲 勿施於人)”고 했다. 사적인 노동 강요나 자신이 그 위치였다면 받기 원치 않았을 대우를 행한 것은 아랫사람을 인간으로 대하지 않고 도구화한 태도이며 이것이 서의 부재이며 인간 존엄의 무시에 해당한다.
결국 갑질은 타자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은 행위로 서와는 정 반대의 경우인 것이다.
유교 경전인 <대학>(大學)에서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를 설명하면서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느꼈던 싫어하는 바로써 아랫사람을 부리지 말라’(所惡於上 毋以使下)라고 가르치며 이를 혈구지도(絜矩之道)라 했다. 자신을 기준으로 삼아 타인을 대하는 도리로 내가 원하지 않는 일을 남에게도 하지 않고, 내가 받고 싶은 대우를 남에게도 해주는 윤리적 공감의 도리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사회의 문제가 되는 갑질, 직장 내 괴롭힘, 권위주의는 모두 이러한 충, 서의 결여에서 비롯된 비윤리적인 현상이다. 의원의 보좌진에 대한 갑질이나 대학원생의 연구 성과를 교수가 독점하는 상황은 혈구지도의 정신과도 정면으로 배치된다. 내가 받기 싫은 대우를 남에게 하지 않는 이것이 곧 진정한 권위자의 태도이며 윤리적 리더십의 본질일 것이다. 우리가 진정 바라고 존경하는 사회의 지도층에게는 더한층 충과 서, 혈구지도가 절실히 요구되는 시절이다.
손재희 CK치과병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