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안태의 인생수업(13)]공감, 타인의 아픔을 느낀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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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안태의 인생수업(13)]공감, 타인의 아픔을 느낀다는 것
  • 경상일보
  • 승인 2025.09.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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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안태 '오늘하루 행복수업' 저자·울산안전 대표이사

우리는 종종 누군가의 고통 앞에서 멈칫한다. 무슨 말을 건네야 할지,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몰라 서툴게 침묵하거나, 덜컥 내뱉은 위로가 오히려 상처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진정 중요한 것은 완벽한 말이 아니라, “함께 아파하려는 마음” 그 자체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신의 고통에 더 민감하다. 손톱 밑 가시 하나에도 크게 괴로워하면서도, 이웃이 겪는 암 투병이나 실직, 사고, 실연의 아픔에는 쉽게 무뎌진다. 타인의 고통은 직접 경험하지 않으면 피부에 와 닿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로 이때 필요한 것이 ‘공감’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을 ‘사회적 동물’이라 불렀다.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 함께 살아가며, 서로의 기쁨에 웃고, 슬픔에 눈물짓는 존재다. 공감은 타인의 고통을 단순히 바라보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내 안으로 끌어안는 행위다. 그 순간 우리는 고립된 개체가 아니라 관계망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임을 확인한다. 철학적으로 말하자면, 공감은 인간됨의 본질이자 우리를 성숙하게 이끄는 미덕이다.

심리학은 이를 과학적으로 설명한다. 뇌 속 거울 뉴런은 타인의 고통을 보며 마치 내 몸이 반응하듯 작동한다. 누군가 넘어지면 덩달아 움찔하고, 친구가 울면 가슴이 무겁게 내려앉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공감은 감상적인 나약함이 아니라, 공동체가 서로를 지켜내며 살아남게 한 진화적 생존 전략이다.

인문학과 예술은 오래 전부터 이 진실을 이야기해왔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소설 속 인물들의 내면적 고통을 통해 독자가 타인의 내면적 고통을 생생하게 느끼게 했고, 불교의 자비와 기독교의 이웃 사랑은 결국 “네 아픔이 곧 나의 아픔”이라는 메시지로 귀결된다. 동서양의 수많은 예술작품도 인간의 삶을 잇는 가장 큰 힘이 공감임을 말한다. 문화의 뿌리는 결국 타인의 고통을 함께 짊어지는 능력 위에 서 있다.

공감은 결코 거창한 것이 아니다. 불필요한 충고 대신 조용히 곁에 있어주기, 상대의 감정을 옳고 그름으로 재단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그리고 작은 손길을 내미는 실천. 바로 이런 작은 행위들이 타인의 상처를 덜어주는 가장 깊은 위로가 된다.

노년학적 관점에서 보자면, 공감은 단순히 타인을 위한 덕목이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한 삶의 자산이기도 하다. 나이가 들수록 사회적 관계망은 줄어들고 고립의 위험은 커진다. 그러나 공감을 베풀 줄 아는 노인은 오히려 더 많은 사랑과 지지를 받으며 존중 속에서 노년을 보낸다. 인문학은 이를 ‘상호적 지지 관계’라고 부른다. 결국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는 능력은 노년의 외로움을 막아주는 가장 확실한 방패이자, 행복한 노후를 만드는 핵심 조건이 된다.

타인의 아픔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은 우리가 인간으로서 지닌 가장 숭고한 선물이다. 그 선물을 잃지 않고 살아갈 때 세상은 덜 차갑고, 삶은 더 따뜻해진다. 누군가의 고통 앞에서 함께 울어줄 수 있는 마음,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서로에게 건네줄 수 있는 가장 인간적인 사랑일 것이다.

정안태 '오늘하루 행복수업' 저자·울산안전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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