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림색 간판과 진회색 벽돌로 외관을 꾸민 열다섯 평 남짓의 저가형 프랜차이즈 카페. 이곳에서 새해를 맞는 것도 벌써 세 번째입니다. 공단 초입에 위치해 매출이 나쁘지 않았는데, 올겨울 들어선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더 바빠졌습니다. 맞은편 지식산업센터가 정부 보조금 대상으로 선정되면서 공단에 상주인구가 많아졌거든요. 매달 청년 창업 대출금 상환에 허덕이지만, 그동안 아르바이트 비와 월급을 착실히 모아 카페를 차린 게 헛일은 아닌 거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장사라는 게 매출이 늘수록 고되어지는 거더라고요. 팔린다는 건 그만큼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고, 그건 그만큼의 재료를 준비하고 인력을 관리해야 한다는 뜻이니까요. 새벽마다 카페 앞으로 쌓이는 한 트럭 분량의 물류를 정리하는 데 두세 명이 붙어도 한 시간 가까이 걸립니다. 알바 면접도 거의 매일 보다시피 해요. 성심껏 가르치고 마음 써서 대한다고 해도 그만두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생기기 마련이고, 사람을 미리 걸러낸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니까요. 어디든 좋은 사람들만 함께 하는 건 쉽지 않지요. 사람 관리가 제일 힘들다던 한숨 섞인 말씀을 요새 실감하곤 합니다.
근태 관리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출근 직전에 못 나오겠다고 하는 경우도 부지기수입니다. 아픈데 어떡해요. 그럼, 이라고 메신저로 되묻는 알바생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하긴, 그런 거짓말조차 안 하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언니 죄송해요, 여행 때문에 다음 주는 못 나와요, 하고 통보하기도 하죠. 어쩌겠어요. 제가 최대한 메워보는 수밖에요.
모든 게 팀장님과 일할 때 같지는 않아요. 고작 칠 년 전인데요. 정말 그때 같지는 않습니다. 아니, 어쩌면 그때도 지금과 같았을까요.
매주 금요일마다 안산에 있는 병원에 들렀다가 오후 늦게 출근합니다. 병원이라는 게, 특히 정신과라는 게 그렇잖아요. 약도 상담도 정말 효과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병원에 다니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나를 포기하지 않는 기분이 든달까요. 아직은 버텨보자는 마음 같은 것 말입니다. 어쩌면 병원은 저에게는 종교에 가까운 곳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잠깐의 푸념과 한 줌의 알약으로 빚어지는 자기 위로. 어쩌면 할 수 있는 게 그것뿐이라는 생각도요.
병원을 나서며 동그란 알약 두 개를 입에 털어 넣었는데, 알약이 목 중간에 걸린 듯 답답했습니다. 쓴맛이 계속 올라왔어요. 전화가 울린 건 물을 재차 넘겨도 알약의 이물감이 가시지 않아 곤혹스럽던 때였습니다.
아직도 전화를 받을 때면 마른침을 꿀꺽 삼키고 입술을 축이곤 합니다. 전화는 대개 불길함을 몰고 오니까요. 제가 살아왔던 동안은 거의 그랬습니다. 더군다나 그 시간에 알바생에게 연락이 온다는 건 열에 아홉은 카페에 문제가 생긴 경우일 테고요.
그 사람이 죽었어요.
불행은 언제나 예상보다 크게 덮쳐온다는 것. 파르르 떨리던 알바생의 목소리를 들었을 때 다시금 그걸 상기했습니다. 그 사람이 죽었다는 말만 남기고 알바생은 입을 다물었고, 제게 무슨 말이라도 해달라는 듯 침 넘기는 소리만 수화기를 타고 넘어왔습니다.
알바생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는 떠오르지 않았지만, 신기하게도 죽었다는 사람이 누군지는 알 것 같았습니다. 알바생의 말을 듣자마자 그 여자가 떠오른 건 왜였을까요. 매일 테이블에 엎드려 있던 노란 머리의 여자가요. 마치 그 여자가 죽을 걸 제가 미리 알고 있기라도 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급하게 카페 앞에 차를 댔을 때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성기게 쳐 놓은 폴리스라인이었습니다. 여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다행히 출근 시간이 지난 때라 본 사람이 많지는 않았을 테지만, 마음은 착잡했습니다.
카페에 들어서자 커피 빨대를 입에 문 경찰이 다가왔습니다. 순찰 때마다 커피를 사 마시던 젊은 경찰이었습니다. 장사하는 곳이라 빠르게 정리해 줬다는 그의 말에 저는 고개를 꾸벅이고는 테이블을 바로 치워도 되는지부터 물었습니다. 경찰이 한쪽 입꼬리를 씰룩대며 오후에 라인을 걷으면요, 라고 답했습니다. 경찰의 표정은 싸늘해 보였습니다. 사람이 죽었는데 그런 걸 묻냐고, 너무 비정하다고 생각했을까요. 경찰은 죽은 여자를 아는지 물었고 저는 고개만 가로저었습니다.
죽은 여자는 아침마다 카페에 오던 사람이었습니다. 매일 여덟 시면 쪽문으로 들어와, 지름 육십 센티미터짜리 하얀색 원형 테이블에 엎드려서 잠을 잤습니다. 제법 추워진 날씨에도 항상 얇은 패딩만을 걸치고 있었어요. 체구가 작은 편이어서 양 팔꿈치 끝이 테이블 가장자리에 꼭 맞춘 듯했습니다. 엉덩이까지 끈을 늘어뜨린 청록색 백팩과 화장기 없는 창백한 얼굴. 이미 염색할 시기를 지난 듯 부스스한 탈색 머리는 두피부터 손가락 길이 정도가 검은색이었습니다. 여자는 자리에 앉아 멍하니 밖을 보다가 에어팟을 끼고 엎드렸습니다. 몸을 한껏 둥글게 말고, 날개뼈 부근까지 내려오는 머리카락을 이불처럼 얼굴에 덮은 채로요.
오래는 아니었습니다, 길어야 십오 분 남짓이었을까요. 한번은, 깨워야 할까요, 하고 묻던 알바생에게 그냥 놔두라고 말했습니다. 얼마나 피곤하면, 오죽 출근하기 싫으면 그럴까. 그 마음 저도 전혀 모르지는 않으니까요. 아침 시간에는 테이크아웃 손님이 대부분이라 자리도 여유 있었고, 깨워서 내보낼 정도로 피해 되는 건 없기도 했으니까요.
이미 염색할 시기를 지난 듯 부스스한 탈색 머리는 두피부터 손가락 길이 정도가 검은색이었습니다. 여자는 자리에 앉아 멍하니 밖을 보다가 에어팟을 끼고 엎드렸습니다. 몸을 한껏 둥글게 말고, 날개뼈 부근까지 내려오는 머리카락을 이불처럼 얼굴에 덮은 채로요.
경찰의 말에 따르면, 죽은 여자는 공단에서 화장품 포장을 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유명 뷰티스토어 체인의 위탁업체에서 일했는데, 새벽 배송 서비스를 시작하자 물량이 엄청났다고 했죠. 여자는 보통 밤에 출근하고 아침에 퇴근했지만, 최근에는 일이 너무 많아 오후부터 출근했다고 합니다. 매일 거의 열세 시간 가까이 하루도 쉬지 않고 일을 했다는데, 무슨 일이 그렇게나 많았을까요. 아니, 무슨 일을 그렇게까지 해야 했을까요. 출근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집에 갈 힘이 없어 카페에서 잠깐 쉬었던 걸까요. 제 몸만 한 테이블에 엎드려 여자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오후에 폴리스라인을 걷자마자 테이블을 건물 창고로 옮겼습니다. 버려진 이면지 뭉치와 녹이 슨 사무실용 책상, 해가 지나 폐기된 소화기 등이 너저분하게 쌓여 있는 건물 창고 구석으로요. 테이블을 두고 나오는 길에 담배를 피우고 있는 알바생이 보였습니다. 탁한 연기로 둘러싸인 알바생의 얼굴을 보면서 걱정보다 먼저 그 생각이 들었습니다. 죽은 여자의 얼굴을 내가 직접 보지 않아서, 그래서 참 다행이라고요.
알바생에게 전화를 받고 나서 카페로 오는 내내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그 여자는 어쩌다 죽었을까, 라는 생각도 잠시, 이럴 땐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급하게 나오느라 다음 진료 예약도 못 하고 나왔구나, 오늘까지 내야 하는 공과금이 뭐였더라, 같은 생각들이 무섭게 따라붙었습니다. 그중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사실 이것이었습니다. 그 테이블부터 치워버려야겠다는 생각이요.
입소문을 걱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조금만 안 좋은 소문이 나도 매출이 뚝뚝 떨어지는데, 사람이 죽은 카페라니요. 공단 내 경쟁 카페도 꾸준히 늘던 터라 그런 꼬리표만은 정말이지 피하고 싶었습니다. 테이블만이라도 빨리 치워버려야 마음이 편할 것 같았어요. 힘들게 모은 돈으로 차린 카페여서 더 그랬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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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이든 닥치는 대로 하기 시작한 건 칠 년 전 공무원 시험에 떨어진 직후였습니다. 삼 년 동안의 수험 기간,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본 시험이었는데, 우습게도 모르는 문제가 너무 많았습니다. 작은 책상에 갇힌 채 몸 안부터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어요. 그때의 타종 소리와 수험장을 빠져나가는 사람들의 발소리가 지금도 종종 환청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혼자만의 싸움. 처절한 적막 속으로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무슨 일이든 해야 마음이 편했어요. 그때 들어간 곳이 우리가 일했던 고객센터였습니다.
한때 사람들이 많이 찾던 부천시 소재의 쇼핑몰. 거의 망하다시피 해 사무실 임대용으로 주로 쓰이던 건물 오 층에 고객센터가 있었습니다. 작은 옷 가게들과 소품 가게들이 몇 개 남아 있던 사 층까지만 에스컬레이터가 작동했고, 한 층은 걸어 올라가야 했죠.
사 층까지는 정말 조용했습니다. 손님도 활기도 사라진 곳, 익숙한 적막에 마음이 답답해지곤 했습니다. 과거의 향수에 기생하는 낡은 쇼핑몰 내부, 누수로 누렇게 뜬 자국들이 여기저기 남아 있었고, 뜯어진 천장과 칠이 벗겨진 벽면들이 방치된 채였죠.
그 사이를 지나 오 층에 다다를 때쯤이면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팀장님도 잊지 못하셨겠죠. 저에겐 지금도 가끔 들리곤 하니까요. 수백 명의 상담원이 정제된 톤으로 쏟아내는 기계적 멘트, 상담 내용을 실시간으로 입력하는 키보드음, 홈쇼핑 방송의 음성,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한숨이 뒤섞인 소리의 덩어리가요. 단 한 순간도 소리가 멈추지 않는 고객센터는 압도적이기까지 했습니다.
독서실 책상처럼 양옆으로 칸막이가 있는 하얗고 네모난 공간. 그 안에는 듀얼모니터와 키보드, 마우스, 헤드셋, 그리고 손가락 한 마디 두께의 고객 응대 매뉴얼이 놓여 있었습니다. 머리 위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에 홈쇼핑 상품 소개 화면이 시작될 때면 전화는 말 그대로 쏟아졌죠. 그땐 홈쇼핑의 힘이 제법 셌잖아요. 백화점과 면세점을 운영하는 대기업에서 런칭한 채널이라 화제성도 엄청났고요. 세 장에 삼만 원도 안 하는 기능성 티셔츠나 특가로 나온 장가계 여행 상품, 북유럽 브랜드의 접시 등을 판매할 때면 식사는커녕 화장실 갈 시간도 없었습니다. 인기 상품 방송 십 분 전엔 ‘한 시간 동안 상담원 전원 화장실 사용 금지’라는 공지가 뜨기도 했으니까요.
숨 막히던 독서실의 정적보단 낫다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생각은 아주 잠시뿐이었습니다. 상처를 주는 게 본래의 목적인 것 같은 거친 말들을 종일 듣고 있으면 돈 몇 푼에 사람이 이렇게까지 모질어질 수 있나 싶었으니까요.
팀장님과 미진이 그리고 저, 여자 셋이 함께 일했던 관리팀은 그중에서도 가장 악성인 고객들만 상대하던 팀이었잖아요. 반년간 쓰던 가전제품, 거의 다 먹어 국물만 남은 여수갓김치, 비행기 이륙 세 시간 전의 여행 상품. 당연히 안 될법한 것들에 대해서도 무조건 환불을 요구하는 고객들은 물론이고, 보상 포인트를 얻기 위해 상담원의 말투 하나까지 트집을 잡는 고객들까지. 고객의 요구는 선을 넘은 지 오래인데 매뉴얼에 적힌 대응은 그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그 간극이 갖은 욕설과 폭언으로 돌아와도 우리는 기계처럼 말을 내뱉을 뿐이었어요.
카페에도 진상 손님이 있긴 하지만 그때를 생각하면 견딜만합니다. 손님 때문에 힘들다는 알바생의 푸념을 들을 때면 외려 의아해지기도 하고요. 그때의 시간이 저를 단련시켰던 건 아닐까, 이렇게 꼰대로 늙어가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진상 손님을 상대하기 싫다며 그만두는 알바생들이 원망스럽기도 하니까요. 가뜩이나 사람 구하기 힘든 시기라서 그런다고 에둘러 말하지 않더라도 팀장님은 이해하시겠지요.
관리팀도 항상 사람이 부족했으니까요. 대부분 두 달을 버티지 못하고 다른 팀으로 이동을 요청하거나 그만두었잖아요. 저와 미진이가 그만둘까, 수시로 부센터장이 눈치를 살피고 몇만 원이나마 인센티브라며 찔러주기도 했죠.
관리팀에 있으면서 항상 든 생각은 팀장님이 정말 대단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누구보다 많은 고객을 상대하고 가장 늦게 퇴근을 하면서도 언제나 평온해 보이셨어요. 깔끔하게 뒤로 묶은 검고 긴 머리칼처럼, 흐트러짐을 모르는 사람 같았습니다. 항상 바른 자세로 앉아 전화를 받는 모습뿐이어서, 어릴 적 소아마비를 앓아 다리를 심하게 절뚝인다는 것도 대다수의 직원이 모를 정도였으니까요.
가장 심한 수준의 악성 고객들을 상대하던 팀장님은 대체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우박처럼 쏟아지는 모진 말들에도 회사의 매뉴얼대로 묵묵히 업무를 수행하던 팀장님은요. 어떻게 견뎌내셨던 건가요. 그 흔한 담배도 안 하셨는데요. 한동안은 존경의 마음도 들었습니다. 하루에도 수십 번 무너지던 제 마음이 품은 동경이었을까요. 대체 어떤 마음으로 견뎌낸 건지 그때 물었다면 팀장님은 뭐라고 하셨을까요. 그냥 버티는 거야. 나도 너랑 같아. 그렇게 대답하셨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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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처럼 하얀 눈이 길거리마다 무덤처럼 쌓여가던 날, 냉동만두를 먹고 배탈이 났다는 고객에게 하루 종일 시달렸던 저에게 미진이가 술 한 잔을 제안했습니다. 처음 단둘이 가진 술자리였지만 지루할 틈이 없었어요. 대학을 졸업하고 공무원 준비만 내리 했던 저에게 미진이의 얘기는 새롭기만 했으니까요.
정당 서포터즈 활동을 열심히 해서 야당 대표의 눈에 들어 선거운동 사무실에서 일했던 이야기, 전주의 미술관에서 열린 전시에 인권을 주제로 한 그림을 걸었는데 그게 꽤 고가에 팔렸다는 이야기. 그 돈으로 몽골 여행을 가 석 달이나 쏟아질 듯한 별을 보다 돌아왔다는 이야기. 미진이는 저보다도 세 살이 어렸지만 다양한 경험을 거쳐왔고, 그걸 SNS에 차곡차곡 담아두고 있었습니다. 저는 미진이가 부러웠습니다. 왼쪽 골반께부터 귀밑까지 이어진 문신들 때문에 더 그렇게 느껴졌는지 몰라도, 저보다는 훨씬 어른스럽고 단단한 사람 같았습니다.
피드 속 정장을 입은 자기 모습을 보며, 미진이는 구로의 노무사 사무실에서 사무보조로 일했을 당시 이야기를 푸념처럼 늘어놓았습니다. 근로기준법을 위반하고도 뭐가 문제냐며 큰소리를 치는 업주들부터, 일하다가 다친 척하며 산재 신고를 빌미로 돈을 뜯어내는 근로자들, 법의 허점을 이용해 외국인 근로자를 부려 먹기만 하다가 해고하는 사람들까지. 노무사에게 털어놓는 이야기를 옆에서 들을 때면 고개가 절로 저어졌다고 했습니다. 그중 가장 답답해했던 건 불합리한 대우를 받는 걸 알면서도 시키는 대로만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심지어는 자신이 부족해서 그런 거라고 자책하는 경우도 많았다고요. 미진이는 그런 사람들을 보면 콜롬비아 사람들이 떠오른다고 했습니다.
콜롬비아에는 이런 속담이 있습니다.
No hay mal que por bien no venga.
어떤 불행도 해가 되는 것은 없다는 의미입니다. 언뜻 보기엔 좋은 말 같지만, 부당하게 피해를 당하고 그냥 넘길 때도 사람들은 이 말을 썼다고 해요. 미진이가 스무 살이 되자마자 코이카 봉사 활동을 하느라 일 년간 지냈던 콜롬비아는 수십 년 동안 내전으로 얼룩진 곳이었고, 기반 시설이 거의 무너져 집도 가족도 잃은 사람들이 길거리 곳곳에서 죽어가던 곳이었습니다. 난민들을 위해 설치된 메데인 시의 한 보호소에서, 미진이는 아이들을 돌보고 가르쳤습니다. 미진이가 거기서 느낀 건 사람들의 마음가짐을 바꾸는 게 가장 힘들다는 것이었습니다.
카르타헤나의 카카오 농장에서 착취당하던 아이 하나는 구출되어 보호소로 온 후에도 카카오를 돌보러 가야 한다며 떼를 썼습니다. 일을 안 하는 것에 도리어 불안해하면서요. 초콜릿을 맛보기는커녕 초콜릿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카카오를 재배하던 아이는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것에 길들여졌던 것입니다. 옳은 건지 따져보지도 못하고 시키는 대로만 하는 사람들이 콜롬비아에도 한국에도 너무나 많다고 미진이는 말했습니다.
미진이의 몸에 새겨진 수많은 문신은 기억하고 싶은 장면들을 잊지 않도록 적어둔 것입니다. 자기의 벗은 몸을 볼 때마다 그 순간들을 하나씩 되새기고 싶었다고요. 미진이의 몸에는 그 말도 새겨져 있었습니다. No hay mal que por bien no venga.
메데인 시의 보호소에서, 또 구로의 사무실에서 미진이가 내린 결론은 이거였습니다. 부당한 행동을 일삼는 사람들은 그래도 되니까 그러는 거라고요. 그래도 되니까, 그렇게 해도 통하니까 선을 넘어 계속 요구해 보는 거라고요.
미진이는 회사의 매뉴얼에도 불만이 많았습니다. 무리한 요구를 하고 욕지거리를 해도 친절하게 다 들어주라는 매뉴얼 때문에 선을 모르고 끝도 없이 요구하는 거라고. 매뉴얼 때문에 악성 고객들은 점점 더 늘어날 거라고. 우리는 회사도 고객들도 생각해주지 않는다고. 가만히 있으면 양쪽에서 선을 계속 넘어올 거라고. 미진이와 맥주를 홀짝이며 했던 많은 이야기들. 그중 유독 그 말이 계속 입에 맴돌았습니다. 사람들은 그래도 되니까 하는 거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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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이라 약속이라도 많은지 알바생들의 지각이 더 잦습니다. 오 분 십 분씩 늦는 건 이제 당연하고 버스를 놓쳤다며 삼십 분씩 늦기도 합니다. 시간 손해를 조금이라도 보지 않으려는 건지, 일찍 도착해도 밖에서 핸드폰을 보다가 일이 분이라도 늦게 들어오기도 하고요. 지각하는 게 한두 명도 아닌 데다 빈도도 잦아서, 매번 말하기도 지칩니다. 조금 늦어도 별문제 삼지 않으니까, 그래도 되니까 다들 그러는 걸까요. 미진이의 얘기처럼 말입니다.
연말이 다가올수록 가불 부탁도 점점 늘어납니다. 성실히 일해준 알바생을 챙겨주고 싶은 마음에 한 번 해주었던 가불이었는데, 이제 너나 할 것 없이, 심지어는 지각을 일삼는 알바생도 가불을 얘기하곤 합니다. 제가 대답을 망설이자 마감 알바는 가불해주셨다면서요, 하고 말을 덧붙이더군요. 묘하게 독촉당하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사람과 돈에 관련된 일일수록 엄격해야 한다는 팀장님의 말씀, 그게 다 이런 것들 때문이었을까요.
그 여자가 죽은 테이블이 빠진 자리에는 이제 크리스마스트리가 빛나고 있습니다. 그 옆으로 크리스마스 시즌을 맞이해 출시된 신제품의 시식 공간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슈톨렌이라고 독일에서 성탄절에 먹는다는 반구형의 빵인데, 눈처럼 소복하게 슈가파우더로 덮여서인지 이맘때면 인기가 제법 많다고 해요. 시식해 보려는 사람들이 어느새 그곳을 둘러싸고 있습니다.
그날 아침 전화했던 알바생 말입니다. 성실하게 일해주던 친구였는데 그 일이 있고 며칠 안 돼서 그만둔다고 했습니다. 이유를 물을 필요는 없었습니다. 그럴 만한 일이었으니까요. 그마저 사라졌으니 이제 누가 기억을 하겠습니까. 사람들이 즐겁게 슈톨렌을 맛보는 그곳이 여자가 죽었던 자리라는 것을요. 사람들은 뭐든 금세 잊어버립니다. 누군가의 죽음이라고 할지라도요. 그게 저에겐 다행인 일이라는 게 날이 추워질수록 마음에 더 걸립니다.
언젠가 회식 때 하셨던 말씀이 기억에 남습니다. 훌륭한 수비수가 되고 싶다는 팀장님의 말씀이요. 악성 고객들의 무리한 요구로부터 십오 년간 회사의 곳간을 지키던 수비수. 숱한 욕설과 성희롱을 견뎌내면서 기꺼이 헌신하던 것들이 회사의 구성원으로서 당연한 일이라고, 월급을 받을 때 한 번도 부끄러운 적이 없다고 말씀하셨잖아요. 진심을 담은 노력에 대해 응당 받아야 하는 대가를 받는 거라고요. 그 모든 불쾌함을 기꺼이 버텨낸 건 자부심을 넘어서는 어떤 신성한 마음처럼 느껴졌습니다. 가르치거나 뻗대려는 말투도, 인정을 구하려는 말투도 아니었습니다. 뭐랄까요. 담담하게 고백하는 목소리 같았달까요.
그 말을 같이 듣고 있던 미진이의 얼굴은 시종 굳어 있었습니다. 내내 미간을 찡그리고 입술을 오므리다가, 그래도 답답했는지 담배를 피우러 나갔습니다. 그 자리에 팀장님의 말을 귀 기울여 듣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어쩌면 당시에는 저도 그 얘기를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고요.
아마 기억 못 하실 겁니다. 회식이 끝나고 술에 취한 팀장님을 택시로 모셔다드리며 들었던 말을요. 여기서 밀려나면 더 이상 갈 곳이 없다던 그 말 말입니다. 절뚝이는 다리 때문에 에스컬레이터가 작동하지 않는 한 층을 오르는 것도 버거운 사십 대 여자. 자기를 받아주던 곳도, 자기가 빛을 낼 수 있는 곳도 여기밖에 없었다고요. 꼬인 혀로 늘어놓던 자조 섞인 말이 요즘 들어 머릿속에 맴돌곤 합니다. 좋든 싫든 자신에겐 여기밖에 없다고 말하면서 부서지듯 웃던 팀장님의 얼굴도요. 조금 억울해도 조금 불합리하다는 걸 알면서도 지켜내야 하는 곳이었겠지요. 이제는 조금 이해가 될 것도 같습니다. 누구에게나 그런 곳은 있기 마련이니까요.
※
미진이가 떠난 그날도 여느 날처럼 고객센터 안은 소란스러웠습니다. 저는 연단 통화에 지친 채로 홈쇼핑 화면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주황빛이 도는 블러드오렌지가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지요. 쇼호스트가 잘 익은 블러드오렌지 하나를 집어 카메라 앞에서 반으로 갈라내자 붉은 과즙이 뚝뚝 떨어졌습니다. 쇼호스트의 손이 순식간에 붉게 물들었고, 짜내도 짜내도 과즙은 끊임없이 흘러나왔습니다. 그 순간 옆자리에 고객센터의 공기를 가르는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아니, 알겠다고, 이 씨발아!
무수한 소리 사이로 그 말이 또렷하게 들려왔습니다. 성실하게 말을 실어 나르던 상담원들의 입이 순간 모두 멈춘 것 같았습니다. 그 사이로 붉게 물든 미진이의 얼굴이 보였습니다. 창백해진 팀장님의 얼굴도요.
배 두 박스를 받은 지 세 달이 지나서 환불을 요구하던 고객과 미진이가 아침부터 네 번에 걸쳐 통화한 시간은 도합 한 시간 사십칠 분이었습니다. 미진이는 전화를 먼저 끊을 수도, 환불을 해줄 수도 없었습니다. 그건 매뉴얼에 맞지 않았으니까요. 누군가는 중간에 끊어낼 수도 있었을 겁니다. 고작 사만 원이 좀 넘는 배 두 박스 때문에 이렇게 될 게 아니었을 테죠.
칠 년 전, 그때는 고객의 전화를 먼저 끊어버리는 것만으로도 문제가 되던 때였습니다. 보고를 받은 본사는 예민하게 반응했습니다. 미진이는 본사에서 파견된 조사관에게 외려 매뉴얼의 잘못된 부분들을 따지고 들었습니다. 조사관이 그걸 곧이곧대로 들을 거라 생각했을까요.
그때 저도 조사를 받은 걸 아시겠죠. 뭐가 맞고 뭐가 틀린지 잘 몰랐습니다. 저도 어렸으니까요. 그때 뭐라고 말했는지 기억이 안 난다면 비겁한 걸까요. 제가 다르게 말했다면 상황이 조금은 변했을까요.
결국 모든 책임은 팀장님의 몫이었습니다. 미진이는 조사 중에 회사 문을 박차고 나가버렸고,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했습니다. 애석하게도 책임을 질 만한 사람은 팀장님뿐이었습니다. 수많은 악성 고객의 욕설을 견뎌내던 팀장님은 책임이라는 말 앞에 무력하게 사라졌습니다. 십오 년 넘게 몸담았던 직장, 그곳에서 그렇게 쫓겨나게 될 거라고는 전혀 생각 못 하셨을 테죠.
언젠가 팀장님의 책상에서 무수한 빨간 줄이 그어져 있는 종이를 본 적이 있습니다. 팀장님보다 먼저 출근했던 아침이었습니다. 책상 위에 슬쩍 커피를 올려놓고 가려는데 그 종이가 눈에 들어왔어요. 악성 고객들의 명단 말입니다. 고객들의 이름마다 난도질하듯이 수십 번씩 그어진 붉은 펜 자국과, 찢어져 너덜거리는 명단을 보고서야 알았습니다. 팀장님도 겨우 버텨내고 있었다는 사실을요. 그게 떠오를 때마다 무너진 제 마음 틈으로 무겁게 밀려 들어오곤 합니다. 나도 너랑 같아. 나도 너처럼 버텨내고 있는 거야. 그렇게 말하는 팀장님의 목소리가요.
고객들의 이름마다 난도질하듯이 수십 번씩 그어진 붉은 펜 자국과, 찢어져 너덜거리는 명단을 보고서야 알았습니다.
팀장님도 겨우 버텨내고 있었다는 사실을요. 그게 떠오를 때마다 무너진 제 마음 틈으로 무겁게 밀려 들어오곤 합니다.
그날 밤의 고객센터는 고요했습니다. 에스컬레이터가 작동하지 않을 시간이라 미진이와 숨을 헉헉대며 쇼핑몰을 걸어 올라갔습니다. 짐을 찾으러 같이 가달라는 미진이에게 묻고 싶은 말들을 잠시 묻어두고, 짐을 찾은 후에 같이 술 한잔을 해야겠다는 마음이었습니다.
쇼핑몰은 그대로였습니다. 누렇게 뜬 누수 자국은 여전했고, 칠이 군데군데 벗겨진 벽면도 변함없었습니다. 좀 더 낡은 것도 같았지만 처음과 별 차이가 없어 보였습니다. 어쩌면 칠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곳은 그대로겠죠.
바닥을 울리는 발소리와 천장에서 울리는 규칙적인 기계음이 생경하게 들렸습니다. 항상 목소리가 가득 차 있던 곳이라 다른 소리들은 끼어들 틈이 없었으니까요. 제 숨소리가 들릴 만큼 호젓한 적막은 불길하기까지 했습니다. 저는 앞장서서 관리팀 쪽으로 걸어갔습니다. 정적 속에 빼곡하게 놓인 하얀 책상들의 실루엣이 보였습니다. 그게 마치 묘지에 촘촘히 박힌 비석들 같아서 기괴하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한겨울의 새벽 공기가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어서 더 그랬을까요. 스산함을 뚫고 관리팀에 다다랐을 때 저는 그대로 얼어붙고 말았습니다. 블라인드 사이로 비집고 들어오는 얇은 네온사인 불빛들. 거기에 비친 팀장님의 얼굴을 보자 순간 숨이 멎었습니다. 붉게, 노랗게, 또 파랗게 번쩍이는 팀장님의 얼굴이 낯설게만 느껴졌습니다.
미진이가 불을 켰는지 순간 사위가 밝아졌고, 어둠이 하얗게 부서지며 팀장님의 얼굴이 선명해졌습니다. 하루 종일 분주히 움직이던 혀를 하염없이 바닥을 향해 늘어뜨린 채 눈을 감고 있던 팀장님의 얼굴이요. 턱이 떨렸습니다. 몸이 얼어붙은 듯 시선을 거둘 수 없었습니다. 뒤따라오던 발소리가 멎었습니다. 거기엔 미진이가 서 있었습니다. 무수하게 눈을 깜빡이다 이내 무표정하게, 마치 팀장님과 같은 표정을 한 채로요.
팀장님의 목에 감긴 전화선을 풀어내느라 소방대원이 꽤나 애를 먹었습니다. 전화선이 살 사이로 얽히고설키게 파고 들어가 결국 풀어내지 못하고 하나하나 잘라내야 했습니다. 실핏줄이 터져 나오는 팀장님의 목에서 전화선을 뜯어내는 그 장면이 떠오를 때면 아직도 숨쉬기가 힘들어지곤 합니다. 팀장님 책상 주변으로, 그간 작은 글씨로 빽빽하게 작성한 상담일지가 쓰다만 유서처럼 나뒹굴고 있었습니다. 가족도 없이 혼자였던 팀장님은 무얼 위해 그 작은 책상에 박혀서 그렇게 열심히셨을까요.
반나절도 되지 않아 본사 고객관리팀에서 급파된 젊은 남자와 오십 대 후반의 신입 직원이 팀장님과 미진이의 자리를 채웠습니다. 밤사이 두 사람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아침을 맞은 센터는 전과 다름없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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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새해가 다가오면 두려움이 앞섭니다. 이맘때면 더욱 혹독하게 불어오는 겨울바람 때문일까요. 아니면 무엇이든 나아지리라는 기대감이 무너지기 때문일까요.
금요일이라 병원에 가던 길 중간에 차를 돌려 카페로 향했습니다. 새로 온 알바생에게 급하게 전화가 왔거든요. 오픈 알바가 오지 않은 것 같다고. 막 도착했는데 카페가 닫혀 있고, 물류도 밖에 쌓여 있다고요. 오픈 시간 전에 미리 물류를 정리하고 영업을 준비해야 출근 시간대에 몰아치는 손님들을 받아낼 수 있는데, 아무 준비도 안 되었다는 거였죠. 잠시 후면 손님들이 몰려올 텐데요. 벌써 출근하는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는 거 같습니다.
사라진 그 알바, 어제 오후에 가불금을 받은 친구였습니다. 학원비를 내야 한다고 간곡하게 부탁하기에 돈을 보내줬었죠. 포스기에 있던 돈들도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비상금 조로 이십만 원 정도를 포스기에 두었는데, 그것마저 가져간 모양이었습니다. 어이가 없어서 아무 말도 나오지 않습니다.
불 꺼진 카페에 크리스마스트리만이 반짝이며 빛나고 있습니다. 멍하니 앉아 있다가 창고로 가 먼지 쌓인 테이블을 가져와 그 위에 반구 모양의 슈톨렌을 하나 올려두었어요. 여자가 엎드린 채 죽어가던 그 테이블 말입니다. 슈톨렌을 바라보며 저도 모르게 뱉은 한숨에 수북하게 쌓인 슈가파우더가 공중으로 날립니다. 희부윰하게 떠가는 가루들이 그동안 저를 괴롭혀 온 것들을 씻어내듯 스쳐 지나갑니다.
날이 밝으면 사람들은 여자가 죽었던 테이블을 둘러싼 채 그 위에 둥글게 솟아 있는 슈톨렌을 구경하겠지요. 옆에 있는 작은 선물상자 모형이 비석처럼도 느껴집니다. 이젠 기억하는 사람은 저밖에 없겠네요. 저라도 기억해야겠죠. 테이블 위에 그 여자도, 고요하던 그 밤의 팀장님도요.
콜롬비아 카르타헤나 어딘가에서 색색깔의 옷을 입은 아이들을 껴안은 채 SNS 속 미진이가 웃고 있습니다. 하얗던 피부는 햇볕에 그을려 옅은 갈색빛이 돌았고, 검은 머리카락은 쨍한 햇살을 반사하며 빛나고 있네요. 미진이는 행복하게 지내고 있는 걸까요. 문신이 전보다 눈에 띄게 늘었습니다.
미진이의 SNS 피드를 죽 내리다 낯익은 사진에서 멈췄습니다. 미진이가 상담원용 헤드폰을 쓰고 밝게 웃고 있는 사진에서요. 미진이는 왜 말도 없이 사라졌을까요. 팀장님을 홀로 두고 고객센터를 뛰쳐나와 정신없이 119에 신고하고 나니 미진이는 감쪽같이 사라져 있었습니다. 무언가를 냉정히 셈하듯 반쯤 주먹을 쥔 왼손의 엄지와 중지를 발작하듯 붙였다 뗐다 하는 모습만을 제 기억 속에 남긴 채로요.
그 나이에 감당하기엔 너무 큰 일이었을까요. 미진이는 어떤 시간을 보내다가 콜롬비아로 다시 돌아가게 되었을까요. 연락을 해볼까, 한참을 망설이다가 그만뒀습니다. 미진이의 몸에 새겨진 문신처럼, SNS 피드의 사진만이 미진이가 기억하고 싶어 하는 모습이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피드 밖의 세상은, 어쩌면 아무도 기억하고 싶어 하지 않는 부분들일 테니까요.
아직까진 제가 잘 해내고 있는 거겠죠? 새해가 올 때마다 그렇게 묻곤 했는데 매번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올해도 어느덧 끝나 가네요. 새해에도 지난날들과 속절없이 같을까요. 지금 있는 거기는 좀 어떠신가요. 죽어서도 떠나지 못하셨던 그 지겨운 곳에서 이제는 벗어나셨을까요. 저는 바보 같이 아직도 그때에 머무는 것 같은데 어디에도 이야기할 곳이 없네요. 더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이만 줄여야겠습니다. 새해에도 헤쳐 나가야 할 일들이 끊임없이 몰려올 테고 저 역시 더 이상 밀려날 곳이 없으니까요.
팀장님, 어디 계시든 복 많이 받으세요. 어김없이 찾아오는 새해에는 말이에요.
■ 당선소감 - 지영현/ 다시 시작하는 모든 이들이 힘내어 함께 나아가 주길
말이 사라져가는 세상이다. 서로의 이야기를 듣지도, 서로를 이해하려 하지도 않는 세상이다. 서로 눈을 맞추고, 서로의 입장에 귀 기울여 봤다면 달랐을 일들이 많았을 것이다.
누군가의 내막을 구태여 들여다보고, 강요받은 침묵에 귀를 기울여 보는 것. 글을 쓴다는 건 어쩌면 그런 작업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그러려고 노력하는 것만 해도 가치가 있겠다는 생각도.
부족한 작품을 세심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보듬어 주신 예·본심 심사위원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아울러 한 해 동안 엉망이었던 글을 성심으로 깎아주고 더해주신 김이설 선생님과 조언을 아끼지 않았던 문우들에게도 감사의 말씀을 전해본다. 사랑하는 나의 가족, 경아, 윤영, 예은, 덧붙일 것 없이 항상 감사하다. 가까이서 열렬히 응원을 보내던 J에게도 늘 고맙다.
생각해 보면 시작이 아닌 끝은 없었다. 바라던 끝에 막상 서보니 안도감보단 무거운 책임감이 앞선다.
과분한 당선의 기쁨을 뒤로 한 채, 더 나은 글을 써야 한다는 부담감을 기꺼이 짊어지고 가야 하기에. 끝에서 더 나은 끝으로 다시 향할 시간이다. 끝에서 다시 시작하는 모든 이들이 힘내어 함께 나아가 주었으면 한다. 어김없이 다시 찾아온 새해에는 말이다.
■약력
-인천 출생
-2025년 평사리문학대상 수상
■ 심사평- 이순원/ 문장과 구성, 완결도와 공감 요소까지 모든 면에서 뛰어나
예심을 통과해 올라온 작품 가운데 ‘Z의 시간’, ‘어떤 안부’, ‘새해에는’, 세 편을 결선 작품으로 골랐다. 이만한 수준의 작품이 결선에 오른 것만으로도 올해 소설 부분의 전체 응모작 수준이 상당히 높다고 할 것이다.
‘새해에는’은 열다섯 평 남짓한 저가형 프렌차이즈 카페를 운영한 지 3년쯤 되는 젊은 여성화자가 누구에겐가 조곤조곤 자신의 현재와 지난 삶을 고백하듯 말하는 1인칭 시점의 소설이다.
1인칭 고백체의 대화 상대는 지금은 어느 곳에서 무얼 하는지 궁금하여도 안부를 모르는 옛 직장의 멘토와 같았던 상사다. 안 좋은 일의 모든 책임을 다 지고 떠났던 사람을 그리워하며 새해에는 그 선배를 포함하여 세상의 모든 일들이 다 잘 풀리기를 바라는 화자의 마음이 독자의 마음을 오히려 적시듯 위로한다.
어치피 신춘문예란 수많은 작품이 응모되어도 거기에서 단 한 작품만 가려내는 일이라 심사하는 입장에서는 작품마다 장점과 단점을 동시에 지적할 수밖에 없다. 그만큼 가혹한 잣대를 들이댈 수밖에 없는 심사 현실을 감안하더라도 전체 작품을 이루는 문장과 구성, 완결도와 공감 요소까지 모든 면에서 가장 뛰어난 ‘새해에는’을 올해의 당선작으로 올린다.
■ 약력
-1985년 강원일보 신춘문예 당선
-1988년 문학사상 신인상 수상
-이효석문학상, 동리문학상, 황순원 작가상 등 수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