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장인물: 정훈, 석진, 윤아, 부모, 노인
●때: 세차게 바람은 불지 않으나 한기에 몸이 무거워지는 오후이다.
●곳: 무대 한가운데엔 침대 매트리스만 덩그러니 놓여 있다.
프롤로그
부와 모는 침대 매트리스를 밀며 무대 중앙까지 들어온다.
모: 이렇게까지 해야 해?
부: 자식이 침대 위에서 살다가 죽는 꼴 보고 싶어?
모가 침대 매트리스를 당긴다.
모: 이게 최선이야?
부는 침대 매트리스를 밀어낸다. 둘 다 동시에 허리를 펴며,
부: 어. 이건 침대가 아니라, 섬이야. 같은 세상 같은 집에 있어도 어떻게…뱃길 막힌 거처럼 대화가 막혀서, 어? 배로 식량 보내 주듯이…식판에 음식을 담고는 정훈이 방문 앞에 매일 두는 날들이 쌓여만 가는데, 정말 아무도 없는 기분이었다고.
모: 알겠어. 여기 맞지? 벨 누를게.
부: 빨리. 최대한 빨리 눌러. 생존 버튼 마냥.
모: 침대가 뭔 잘못이 있겠어. 제 자리에 멈춰 무엇도 하지 못하게 한게 잘못이지.
부: 이 침대를 찾는 건, 사막에서 바늘 찾는 일이야. 사막은 어디를 가도 사막이고.
모, 몸을 옆으로 살짝 돌려서 조심스럽게 휴대 전화를 꺼내 부의 눈치를 보며 천천히 휴대 전화 화면을 누른다.
- 1장
정훈은 아파트 공용 복도에 서 있다. 벨마저 고장인지 눌러도 아무 대답이 없다. 어지러운지 몸을 휘청거리는 정훈. 눈앞에 아지랑이가 피어오른다. 다급히 몸을 숙인다. 숨이 고르지 못하다. 무릎을 세게 쥔다. 무릎을 쥔 손을 풀고 상체를 일으켜 세워 문을 힘없이 두드린다.
정훈: 내 침대 내놔!
집안, 방에선 석진이가 침대 매트리스 위에서 가부좌를 틀고 있다. 꽁지 머리를 한 석진은 가부좌를 풀고 일어난다. 휘청거린다. 다시, 자세를 바르게 하고 웃옷을 잘 여민 뒤, 멈춰 서서 왼쪽 손으로 왼쪽 귀에 꽂힌 에어팟을 가볍게 누른다.
석진: 아드님이 오셨군요.
반복된 동작으로 계속 문을 두드리는 정훈과 그에게로 가 멈춰 서는 석진. 석진은 오른쪽 눈에다 오른손을 가져다 댄다. 현관문 외시경을 통해 정훈을 바라본다. 그리고 손을 내려 문고리를 잡는다. 문이 열린다.
정훈: 내 침대..
거울 보듯이 반사적으로.
석진: 안 해요.
정훈, 열린 문틈으로 손을 집어넣어 문을 잡는다.
정훈: 아버지가 그쪽한테 침대 판 거 다 알아요. 당근에서 봤거든요. 제가…
석진: 그래서요?
정훈: 그 침대, 오래되어서 편하지도 않아요! 제 몸 형태로 파여있고요.
석진: 듣던 중 반가운 소리네요. 편하면 안 됩니다. 전, 불편함이 필요해서요.
정훈: 아니요! 그 침대 편해요. 세상에서 제일 편해요!
석진: 안 합니다. 가세요.
석진이 문을 닫으려 하자, 정훈은 힘겹게 다음 말을 선택한다.
정훈: 제발…한번만…봐주세요.
석진: 뭐라고요?
정훈: 한번만 봐주세요. 제발 주세요. 죄송합니다.
정훈과 석진의 얼굴이 현관문으로 인해 반쯤 가려진다. 둘은 하나의 얼굴 같다. 정훈의 입 또한 반쯤 열린 채로 숨을 떠듬거리며 말을 내뱉는다.
정훈: 제 과거의 영광입니다… 침대요. 첫 월급 탄 기념으로…각인을 했거든요. 침대 상부에…몸이 편하면 공부도 되지 않고, 성공하지 못한다는…아버지의 지침 때문에 평생을 바닥에 이불을 깔고 잤거든요. 성공하면 침대부터 사리라 다짐했고, 드디어…그런데…사람에 치이고 손대는 족족 실패를 하다가, 모든 걸 잃고…우울증이 와서 하염없이 걷고 와서 방에 들어오니까 유일하게 날 기다려 준게 얘입니다. 누으면 얼마나 편하게요? 침대에 몸을 던지다시피 누우면 포근함과 평온함이 몸을 전부 덮을 정도로 가라앉게 하는데…유일한 낙인 거죠. 단지, 누워있는 게 행복했습니다.
사이
찾아서 그 위에서 가부좌를 틀고 수행하자! 그러면, 그러면…
정훈: 침대란 행복입니다. 세상에는 반겨줄 사람도 많고
기회도 널려 있어요. 애써 자신을 괴롭히지 말아요.
석진: 그렇게 잘 아는 당신은 왜?
석진은 정훈의 말을 듣고도 담담하다. 뒤돌아 집으로 들어가려는 찰나, 정훈은 집 안으로 몸을 밀어 넣는다. 정훈과 함께 떠밀리듯이 집 안에 들어온 석진. 소스라치게 놀라며 서로 몸을 밀어내지만 좁은 현관에서 둘은 위태롭게 대치하며 서 있다. 마치, 부표 위에 떠있듯이.
석진: 뭐해요, 지금!
정훈: 죄송합니다! 침대만 가져갈게요. 제가 좋은 아니 안 좋은, 진짜 불편한 침대를 가져다드릴게요.
석진: 필요없어요.
정훈: 그럼, 사례라도 하겠습니다.
석진: 돈 필요 없다고!
정훈: 왜 이렇게까지 하시는데요?
석진: 저도 저 침대가 필요해요! 저도 세상 탓만 했죠. 이 세상이 날 몰라주는 거다, 세상이 잘못된 거다. 그러면서 어디에 있는 줄 아세요? 침대 위요. 침대 위! 저도 맨날 천장 보면서 과거의 영광 막 회상하고 영상으로 틀어지는 것처럼 보고. 뒹굴뒹굴하고. 그러다가 어느 날 말로 표현하기 힘든 뭔가 찝찝한 기분이 밀려오더라고요. 소름이 돋았죠! 아…이 모든 원인이 나였구나. 나로부터 발생한 거구나. 수행하자. 성찰하자. 내 침대 말고 누군가에게 악한 존재가 된 침대를 찾아서 그 위에서 가부좌 틀고 수행하자! 그러면, 그러면…
정훈: 침대란 행복입니다. 세상에는 반겨줄 사람도 많고 기회도 널려 있어요. 애써 자신을 괴롭히지 말아요.
석진: 그렇게 잘 아는 당신은 왜?
사이
석진이 한숨 쉬며 정훈에게서 등을 돌리자, 정훈은 평소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빠른 움직임으로 석진을 밀치고 집 안으로 들어간다. 석진은 자리에 풀썩 주저앉는다. 어안이 벙벙한 표정. 정훈, 두리번거리다 방문을 연다.
정훈: 어디 갔어!
자리에서 일어난 석진이 정훈에게 달려든다. 둘, 실랑이를 벌인다.
암전
- 2장
둘은 서서히 몸을 일으킨다.
정훈: 프레임, 프레임은 어디 갔어?
석진: 내 침대야, 내 마음이지!
정훈: 내 침대 내놓으라고!
석진: 지금 당장 내 집에서 나가지 않는다면 주거침입으로 경찰에 신고하겠어.
정훈: 프레임에…내 이름이 각인되어 있는데…첫 월급 탄 기념으로 샀는데…유일한 과거의 영광의 증표인데…
석진은 정훈을 밀치고 자기 방으로 들어가 문을 잠근다. 그러곤 침대 매트리스 위에 올라가 가부좌를 튼다.
석진: 수행하자, 수행하자.
정훈: 꼭, 내 침대 아니어도 되잖아! 다른 사람의 침대 찾아! 제발…
정훈은 고개를 떨군 채 우두커니 서 있다. 윤아, 귀신처럼 조용히 다가와서 출입문 앞에 선다.
윤아: 문이 열려있네요. 계속.
정훈은 소스라치게 놀란다. 윤아는 허탈한지 힘없게 캐리어를 끌고 집 안으로 들어온다.
윤아: 내가 그렇게 열어달라고 할 땐 맨날 무슨 수행 중이라고 문을 열어주지도 않더니, 심지어 드론까지 띄워서 문이 언제 열리나 본적도 있다니까요. 근데 하필 오늘 화장실 갔을 때. 아무튼!
윤아, 정훈에게 악수를 청한다.
윤아: 반가워요. 같이 여기서 서로의 목적을 위해 잠시 지내는 거 어때요?
정훈: 누구세요?
석진은 가부좌를 풀고 방문 쪽으로 슬그머니 다가와 귀를 가져다댄다.
윤아: 석진의 전 여자 친구이자 현 구출하고자 하는 자라고 해두죠. 방 안에서 밖으로 구출이니까. 근데 구출을 못 하고 있으니.
정훈: 지금 당장 문을 부서서라도 데리고 나오시죠? 저는 제 침대를 가지고 나오겠습니다.
윤아: 사랑하는데 어떻게 짐짝처럼 끄집어내요. 기다려줘야죠. 아니면, 대화나, 어쩌면 다른 방법도 많죠!
정훈: 아까, 전 여친이라고 하셨는데…왜?
윤아: 맞아요. 지금은 아니죠. 석진이가 이별 통보를 했어요. 수행을 위함이라나? 어이가 없어서 진짜. 이 집에 들어오는 데 1년 걸렸네요. 그 이후로 얼굴도 못 봤고요.
정훈: 그 정도면 그냥 떠나시면 안 되나요?
윤아는 정훈을 뚫어지게 쳐다본다. 정훈은 시선을 피한다.
윤아: 고마워서요. 슬프기도 하고…
윤아는 정훈의 손을 잡고 방 옆으로 간다. 조용히 속삭인다.
윤아: 그래서 말인데 부탁이 있어요.
정훈: 부탁이요? 제가 누구 부탁을 들어줄 처지가 안돼서요.
윤아: 침대 안 가지고 싶으세요?
정훈: 그렇긴 한데…프레임이 없어요.
윤아: 프레임도 같이 찾아 드릴게요. 석진이가 뭐 부쉈겠어요?
정훈: 부탁이 뭔데요?
윤아: 우리 같이 행복을 연기해요!
정훈: 행복을 연기한다고요?
윤아: 우리 둘이 친해진 척, 행복한 척을 하면 복장이 뒤집어져서 석진이가 나오지 않겠어요? 제가 석진이랑 집 밖에서 얘기할 동안 그때 아저씨는 침대를 들고나오세요.
정훈: 집 밖으로 나와서 저분이 뭐 얘기하겠어요? 그리고요. 저 아저씨 아니에요.
윤아: 아…죄송해요. 혹시, 나이가?
정훈: 나이는 스물 다섯. 이름은 안정훈이요.
윤아: 동갑…이었구나.
정훈: 알겠고요. 어떻게 데리고 집 밖으로 나갈 건데요?
윤아: 다 방법이 있어요! 같이 해주실 거죠?
정훈: 침대만 다시 가질 수 있다면야.
석진은 헛기침한다.
윤아: 데이트해요! 우리.
정훈: 데이트 가자고요? 제가 지금 수중에 돈이 없어요.
윤아: 아니요! 여기서요. 척 만.
정훈: 어떻게?
윤아: 뭐, 카페인 척하고, 보드게임도 하고, 넷플릭스도 보고.
정훈: 여기 아무것도 없는데?
윤아: 다 챙겨왔죠! 이 캐리어 안에. 심지어 5단 찬합 도시락까지!
정훈: 부럽다.
윤아: 네? 뭐가?
정훈: 아니에요…저분은 다 가졌잖아요. 도시락에, 침대에…
윤아: 일단 우리 인생 네 컷처럼 사진도 찍고 서로 편지 써주고 읽어주기 그런 거라도 하면.
정훈: 편지는 좀 설레네요.
윤아: 그러면 석진의 질투심이 유발돼서 다시 방문이 열릴 거예요!
정훈은 쭈뼛거리다 고개를 끄덕인다. 윤아, 자연스럽게 팔을 걷으며
윤아: 첫 번째로는 밥부터 먹죠. 제가 미슐랭 셰프 밑에서 설거지했었거든요. 맨날 방에 계셨으면 이런 음식은 오래간만이시겠죠?
윤아는 캐리어에서 도시락을 꺼내 방문 앞에 나열한다. 정훈은 석진의 방문으로 시선을 돌린다.
정훈: 저기요. 제 침대 주세요. 그쪽도 배고프시잖아요. 다시, 나오시죠?
석진, 입을 열진 않으나,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난다.
정훈: 좀 나오세요. 이제. 애도 아니고.
석진: 전, 생식만 먹습니다. 근데 그쪽이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집에 가세요. 빨리. 그쪽을 사랑하는 분들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정훈은 고개를 숙이고 음식을 입에 넣는다. 윤아, 숟가락을 세게 내려놓으며,
윤아: 나도 기다리고 있어! 적당히 좀 해!
쉽사리 화가 가라앉지 않는 듯 이마를 짚은 채 거친 숨을 내쉰다.
정훈: 죄송합니다. 제가 항상 문제네요.
윤아는 다시 자리에 앉아, 캐리어에서 맥주를 꺼낸다. 맥주 뚜껑을 따자, 거품이 쏟아진다. 급하게 입을 댄다. 웃는다. 윤아는 정훈에게도 또 다른 맥주를 건넨다. 정훈, 손사래 친다.
윤아: 두 번째 계획! 한잔해요…저도 사실 은둔형 외톨이었어요. 그런 저를 매일 매 순간 챙겨주면서 세상으로 데리고 나와준 게 석진이에요. 아이러니하죠. 이제 둘이 처지가 바뀌어서. 고맙고 미안하니까. 이제 제가 석진이를 데리고 나와줘야죠.
정훈, 고개를 연신 끄덕이며 술을 받는다.
윤아: 러브샷!
정훈: 진짜요?
윤아: 척!
방 안에 있는 석진이 가부좌를 틀고 일어나 방문 앞까지 온다. 손잡이를 잡았다가 놓는다. 손톱을 물어뜯으며 자리에서 서성거린다. 바닥의 부산스러운 울림이 이들에게도 전해진다.
윤아: 세 번째 계획도 클리어. 어머! 벌써, 시간이…여기서 자고.. 갈래요?
석진, 윤아의 말을 듣고 침대를 내려친다.
정훈: 전, 제 침대 위에서만 잘 수 있는걸요.
암전
- 3장
그날 밤, 방문을 사이에 두고 윤아는 석진의 방문을 향해, 정훈은 윤아를 향해 모로 누워있다. 석진의 방문이 살짝 열린다. 둘의 광경을 보고 깊은 한숨을 쉬는 석진. 방으로 다시 들어간다. 매트리스를 바라보고 있는 석진, 손으로 쉼 없이 내려친다. 자신의 화를 감당하지 못하는 듯하다. 둔중한 소음과 울림에 잠에서 깬 윤아와 정훈. 자리에서 부자연스럽게 일어나, 문고리를 잡는다. 문이 열린다.
윤아: 석진아, 뭐해?
석진: 수행은 개뿔. 복장 터져서 이러다 죽겠어.
정훈: 내.. 침대…꿈인가?
석진: 너 뭐야? 은둔형 외톨이 아니지? 밖에 잘만 나오고 여자랑 대화도 하고 할 거 다 하는데 무슨.
정훈: 그러면 너는, 은둔형 외톨이가 뭔 수행을 한다는 거냐? 그리고 잘 있는 남의 침대 매트리스는 왜 때리고, 지랄이야!
윤아: 석진아, 일단 그만해.
석진: 너…정말.
윤아: 이제 나가자. 네 잘못 아니야.
석진: 다 내 탓이야.
윤아: 이런 다고 지나간 시간이 돌아오는 것도 아니잖아.
정훈: 해피엔딩 인건가?
석진: 해피엔딩?
석진은 화가 나는 듯 정훈에게 달려들어 멱살을 잡는다.
석진: 내가 미쳤지. 단단히 미쳤지. 이 침대로 무슨 반성을 하고 수행한다고.
정훈: 네가 선택한 걸 왜 나한테 난리냐?
윤아: 둘 다 그만해. 제발.
석진: 다른 방식으로 수행해야겠어.
윤아: 나도 너랑 같이 수행할래. 같이 있을래.
석진: 제발, 그만해. 너도 이제 나 말고 좋은 사람 만나.
윤아: 너 없이 안돼.
석진: 나도 그렇긴 해. 그래도 이러면 안 돼.
윤아: 이 침대 저 사람한테 주고 나랑 있자. 응?
석진: 이러면 안 돼, 이러면…
정훈, 서둘러 매트리스 위로 올라온다.
정훈: 침대야, 잘 있었어? 미칠 노릇이다. 세 시간이나 떨어져 있었다니. 이건 최초이자 최대 기간이야.
석진: 윤아야, 잠시만 밖에 있어. 제발 날 믿고 나가 있어.
윤아: 싫어.
석진: 자기야, 이 사람, 침대 위에서 떨어지게 하고 일단 얘기하자.
윤아: 정말이야?
석진: 믿어줘.
정훈, 둘을 번갈아 보다 몸을 뒤집어 매트리스를 세게 붙잡는다.
정훈: 안돼! 미쳤어? 나 죽어 진짜로.
윤아: 미안해요.
석진과 윤아, 정훈의 허리춤을 붙잡고 매트리스에서 분리하려고 힘을 준다.
석진: 힘 빼. 왜 이렇게 말을 안 듣지?
정훈: 제발…살려줘…제발 나 잘할게.
석진: 우리한테 잘하고 싶으면 이 침대에서 떨어져!
정훈: 나도 여기 있고 싶어.
정훈: 나…두고 떠나세요.
윤아: 안 돼요. 그냥 포기하는 말이잖아요.
정훈: 여기 있는 게 포기면, 밖에 나가면 뭐죠?
밖은 침대도 없는데. 자신이 없어요.
윤아: 이러지 마세요. 부탁이에요.
정훈: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요?
이들은 흡사 바다 위에서 생존을 위해 나무판자를 붙잡고 있는 것 같다.
윤아: 잠깐! 우리 원하던 걸 이룬 건가?
석진: 뭐?
정훈: 예?
윤아: 난 너를 만났고, 그쪽은 침대를 만났고. 넌 이 사람을 침대에서 떨어트리려고 노력하는 것도 일종의 수행 아냐?
정훈과 석진은 동작을 멈춘다.
윤아: 우리 이럴 거면 차라리 같이 이 위에 있어요. 죽을 때까지.
석진: 그게 무슨 말이야? 말이 된다고 생각해?
정훈: 맞아. 우린 여기서 벗어날 수 없어.
석진: 아니야! 이러면 수행도, 실험도 실패야.
윤아: 실험?
석진은 자리에 서서 흔들리는 눈빛과 함께 손톱을 물어뜯는다.
석진: 침대 실험. 이건 일종의 수행이자, 실험이었지. 자신을 고립 은둔형 외톨이로 만든 존재를 없앤다면, 자신을 묶어두는 존재를 없애면 해방할 것인가. 과연, 외톨이가 외톨이에서 탈출할 수 있을지 말이야. 사이트에 글을 올렸는데, 당신 아버지가 연락했어.
정훈: 아빠가?
석진: 아들을 구출해달라고.
정훈: 난 침대 위에서 생활이 행복했는데?
석진: 너만 행복하면 뭐해? 주위에 모든 사람이 불행한데.
정훈: 이제 와서 이런다고 달라지는 게 있을까? 삼 년 동안 방에만 있었어. 난 침대 말고 모든 걸 잃었다고.
윤아: 달라질 거예요. 사랑하는 사람이 외톨이가 되면요. 그 외톨이를 사랑하는 사람들도 외톨이가 돼요. 석진아, 너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면서…너무하네.. 진짜.
석진: 누구보다 잘 아니까. 이러면 너 말대로 내 시간이 돌아올 줄 알았어. 보상심리가 잘못된건가.
윤아: 정신 차려! 잃어버린 시간은 돌아오지 않아. 둘 다 그만하고 빨리 가요. 가족들이 기다려요.
정훈: 무슨 소리야. 이 세상엔 우리만 있는데.
석진: 뭐?
셋은 매트리스 위에 올라와 있다. 마치, 외딴섬에 조난된 사람들처럼.
정훈: 여긴 섬이야. 그것도 무인도지. 탈출할 수 있을까? 섬이 사라진다고 해서 탈출이 될까? 또 다른 섬으로 갈 뿐이야. 하염없이. 그러니까, 지금 이 섬이라도 붙잡아 그래야 살 수 있어.
윤아: 분명히 방에서 밖으로 네가 날 데리고 나왔는데. 석진아, 다시, 우린 방에만 있네.
석진: 수행하고 반성하면 달라질 줄 알았는데,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을 구하면 세상이 달라질줄 알았는데, 아니라고?
정훈: 세상이 바뀌지 않으니까, 우리도 똑같지. 구조선은 더 이상 오지 않아. 여긴 방이야. 그 누구도 오지 않아. 이젠.
윤아: 웃기다. 저 손잡이만 잡으면 되는 건데
석진: 그렇네. 잡아볼까?
정훈: 침대는 섬. 섬은 편해. 편하면 침대
윤아: 정말이지. 나가는 거지?
석진: 나가서 뭐 해?
윤아: 그때 가서 생각하자.
석진: 그 말이 참 무책임할 순 있는데 어쩌면 지금보단 나을 수 있겠네.
정훈: 그러지 마.
석진: 미안. 아니, 미안해요. 진짜 외톨이가 외톨이를 구한다는 게 이상이었나 봐요.
정훈: 나를 두고 떠난다고?
윤아: 아니요, 같이 나가요.
정훈: 이 침대는 어떻게 되는 거야?
석진: 좀! 묻지 말고, 스스로 판단해요. 어떻게 되겠어요. 무거운데 그냥 놔두고 가는 거죠.
윤아: 평생을 이 위에서 살 순 없어요, 같이 나가요.
정훈: 제발 그러지 마요…
석진과 윤아는 침대 매트리스에서 일어난다.
정훈은 석진과 윤아 앞을 막아서며 거칠게 숨을 몰아쉰다. 침대가 흔들린다. 셋의 다리도 휘청거린다.
정훈: 지금, 뭐하는 거에요?…그냥, 그냥 해본 말 아니었어요?
윤아: 이러면 안 돼요. 부모님도 생각하셔야죠. 여기서 아무것도 변하지 않으면, 또다시…또다시 모두가 무너져요.
석진: 마지막 기회에요. 같이 갈 거예요?, 안 갈 거예요?
정훈은 고개를 숙여서 침대를 본다.
정훈: 나…두고 떠나세요.
윤아: 안 돼요. 그냥 포기하는 말이잖아요.
정훈: 여기 있는 게 포기면, 밖에 나가면 뭐죠? 밖은 침대도 없는데. 자신이 없어요.
석진은 한숨을 길게 내쉰다.
석진: 이러면 더 늦어져요. 끝없이 인생이 더 가라앉는다고요.
정훈: 더 가라앉는다…
윤아: 마지막이에요. 같이 나가요…
정훈: 괜찮아요. 전, 여기 있을게요. 먼저 나가세요.
윤아: 부모님을 뵙게 된다면 여기 있다고, 곧 나갈 거라고 말씀드릴게요.
석진: 모르겠어요.. 저도.. 이젠
석진과 윤아는 정훈을 두고 뒤돌아선다. 천천히, 천천히 집 밖으로 나간다. 현관문이 철컥 닫힌다. 정훈은 그 소리에 움찔한다. 마치, 무언가 끊어진 것처럼. 적막만이 맴돈다.
정훈: 찾았다. 내 침대.
정훈의 발치에는 그토록 원하던 침대가 있다. 쭈뼛거리며 침대에 누워본다. 뒤척거린다. 침대가 삐걱거린다. 모로 누웠다가 정면으로 향한다. 천장을 본다. 하염없이 천장을 본다.
정훈: 이상하다…분명 여기가 가장 편했는데…내가…내가 이 침대에 눕지 않았을 때가 어땠지? 뭘 하고, 뭘보고, 누구랑 얘기했지? 내가…뭐였지?
정훈은 다급히 휴대 전화를 찾는다. 휴대 전화로 침대 주변을 다각도로 사진을 찍고는 휴대 전화 화면을 누른다.
무대 벽면에 글씨가 하나둘씩 적힌다.
정훈: 세상에서 가장 편한 침대를 팝니다. 대신, 저와 함께 살 은둔형 외톨이만 연락주세요. 등록.
짧은 진동음. 알림음.
정훈은 매트리스를 힘겹게 둘러업는다. 바닥에 매트리스가 질질 끌린다.
정훈: 또 다른 섬으로 가아해.
정훈은 침대 매트리스를 끌고 문을 향해 걸어간다. 현관문 손잡이에 손을 가져다 대는 순간, 그의 숨소리가 아주 조금은 가벼워진다.
암전
- 에필로그
문이 열린다. 그의 피부는 하얗게 일어나 있다. 말없이 비켜서는 그가 아닌 노인. 노인의 반쯤 빈 얼굴에 정훈의 얼굴이 채워졌다.
노인: 자네 침대가 이건가? 저건가? 다 똑같아서 누워봐야 알 수 있어. 굴곡이 다르거든.
현관 너머, 닮은 형태로 움푹 파인 채 겹겹이 쌓여서 반쯤 잠긴 고요한 침대의 끄트머리가 보인다.
정훈: 많네요. 매일 세셨겠죠?
노인: 그치. 멈추길 바라면서.
정훈: 저랑 같이 나가실래요?
정훈은 노인의 팔에 손을 얹었다. 노인은 정훈의 팔에 손을 얹었다. 둘은 동시에 문을 같이 열었다. 알 수 없는 허기가 밀려와 등을 구부렸다. 노인은 굽었던 허리를 폈다. 아무도 없던 것처럼. 막
■ 당선소감-김인규/올해 목표 전부 달성…치열하게 극작가로 살아갈 것
모르는 전화번호의 전화가 왔습니다. 이유 없이 그냥 받고 싶었습니다.
제 이름을 말했습니다.
어젯밤에 꿈을 뭘 꿨더라? 생각하게 됐습니다. 신춘문예 담당자라고 하시면서 제 작품이 당선됐다고 말씀하셨거든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창문으로 가 블라인드를 올리고 밖을 보며 당선 소식을 마저 들었습니다.
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전, 아이러니하게도 연극을 처음 시작했을 때부터 공연이 잘될 때면 비가 내렸습니다.
책상에 앉아 컴퓨터를 켜 파일에 적어 뒀던 올해의 목표를 바라보다가, 마지막 목표에도 줄을 그었습니다. 이젠 전부 줄이 생겼네요.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습니다.
전 제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드디어 찾았습니다. 제 시간이 부정당하지 않게 치열하고 성실히 이 마음을 지키며 ‘극작가’로 살아가겠습니다. 부족한 제게 기회를 주신 경상일보 심사위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장성희 교수님, 성기웅 교수님, 김옥미 선생님, 절 극작의 길로 이끌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항상 절 웃게 해주는 하비, 극작 전공분들과 이 기쁨을 나누고 싶습니다. 어머니, 아버지 이제 작가란 직업이 생겼으니 효도하겠습니다!
■ 약력
-경남 진주 출생
-서울예술대학교 문예창작전공 재학 중
■ 심사평-선욱현/은둔형 외톨이 문제를 넘어 오늘날 청년문제 고민하게 해
일상 속에서 극적인 요소를 찾아내고 그걸 극화한 작품들을 본심에서 만났다.
한 편 한 편 나름의 흥미와 문제의식을 제시했고 하지만 냉정하게 그 중 한 편을 골라야 했다. 최근 AI시대의 도래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산업혁명 이후 또 하나의 인간소외를 가져오리라 걱정해본다.
최종적으론 세 편을 놓고 고민했다. ‘나비와 거미’는 불륜이지만 이제는 흔한 일상이 아닌가? 할 정도로 세상은 혼돈이라 느끼는데 그 현실이 고스란히 제시됐다.
도발적이고 냉소로도 느껴졌다. ‘한 근의 추모’는 고시공부 하다 사라진 동생이 돼지가 됐다? 돼지도축장에서 ‘사람은 죽어도 쓸모가 없어요’라는 대사가 울림이 있다. AI 앞에 인간은? 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베드 아일랜드’는 은둔형 외톨이 문제를 침대라는 오브제를 두고 입장이 다른 인물들을 충돌시키며 보여준다.
단순히 외톨이의 문제가 아닌 오늘의 청년문제를 총체적으로 고민하게 했다. 연극적 유희가 읽혀지고 마지막을 궁금하게 여기며 극을 쫓아가게 만들었다. 조금 더 극적 구조가 안정적인 ‘베드 아일랜드’를 당선작으로 추천한다.
■ 약력
-주요 발표작 ‘절대사절’ ‘돌아온다’ ‘황야의 물고기’ 등
-저서 <선욱현 희곡집 1~5> <허난설헌> 등
-대한민국 극작가상 수상
-현 가천대학교 연기예술학과 초빙교수
